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폭행으로 ‘멍’든 병원, ‘법’으로 치료될까

 

지난 7월 18일. 일산의 피부과 의원에서 진료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의사를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해 세간에 충격을 안겨줬다. 이 사건이 회자된 지 채 한 달 도 되기 전에 부산지역의 응급실에서 근무하던 전공의가 환자가 던진 의자에 가격 당해 이마가 찢어지는  상해를 입었다. 또 다른 병원에서는 인턴이 술 취해 다쳐서 온 환자를 치료하려다 배를 가격 당하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계속되는 의료기관 내 폭행,
의료인들…‘가중처벌 하라’

 

위의 사건들은 응급실의 고질적인 주취 폭력 문제에 더해 응급실 외의 진료환경에서도 비일비재한 의료인 폭행의 실태를 보여준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의료인을 폭행으로부터 보호하는 내용의 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따라서 지난 해 민주당 이학영 의원은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해 의료인 폭행을 처벌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진료 중인 의료인을 폭행하거나 협박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내의 벌금에 처할 수 있고, 피해자가 원치 않아도 처벌토록 하는 내용이다. 응급실에서 발생한 폭력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의해 가중처벌 받게 되어있다. 그러나 응급실 외의 폭행사건이 빈번하고, 중소병원에서 발생하는 폭행을 처벌할 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개정안 발의의 취지다.


의료법 개정안 발의에 환자단체와
의료계는 엇갈린 반응

 

환자단체는 이 법안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현행 형법상 처벌이 가능한데 의료법 개정안으로 범죄 예방 효과가 더 있을지 의문이고 ▲응급실 폭행은 이미 가중처벌 가능하며 ▲반의사불벌죄 반의사불벌죄: 형법에서 피해자가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는 의사 표시를 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 가 아니며 ▲개정안에서 규정하는 형량이 너무 과도하다는 것이다.
반면 의료계에서는 ▲법을 제정하는 것 자체에 대한 전시효과를 노릴 수 있고 ▲응급실 외에서도 폭행사건이 빈번하며 ▲ 다른 환자의 건강권을 해칠 수 있음을 이유로 반박한다. 버스기사를 폭행하는 경우 다른 승객의 목숨에도 위협을 가할 수 있어 가중 처벌 받는데, 의료인을 폭행하는 것은 버스기사를 폭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므로 가중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병원과 사법당국의 미온적 대응
앞에 무용지물인 법…실효성 빵점

 

한편,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로 응급실 내의 폭력행위가 가중처벌 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응급실 내의 폭력은 반복되고 있다. 실제로 응급실 폭행의 가해자 중 응급의학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처벌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이면에는 병원 운영자 측과 사법부의 미온적 대응이 한 몫을 하고 있다. 병원 측에서는 이미지 타격과 소송으로 이어졌을 때 발생하는 인력공백을 이유로 폭행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법당국도 ‘환자가 오죽했으면 그랬겠냐’라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어 사건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 따라서 법이 있더라도 현재로선 실효성이 크지 않아 그 외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법이 아닌 다른 해법은…?

 

응급실 내 폭력에 대한 대책으로 가장 많이 꼽는 것이 공권력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는 것이다. 단순히 폭행이 발생하면 신고를 하는 형태에서 벗어나, 지역경찰서와 협력관계를 맺는 것이 도움이 된다. 서울성모병원은 서초경찰서와 양해각서를 체결해 과거보다 폭행사건에 대해 신속한 업무협조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보라매병원에서는 주취폭력이 심한 시간대인 저녁8시부터 오전8시까지 경찰이 상주하고 있어 폭력 감소 효과를 보고 있다.
그 밖에도 응급실 내의 출입통제를 강화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일본, 미국 등에서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응급실에 보호자가 들어갈 수 없게 규정하고 있다. 그런 규제가 가능한 것은 응급실 내에서 안전한 진료를 받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형병원이 아닌 1차 의료기관의 경우에는 어떤 대안이 있을까? 소위 말하는 ‘동네병원’에서는 응급실처럼 폭행사건 보다는 ‘진료방해’가 더 많이 발생한다. 환자들이 치료 결과에 불만을 품고 병원을 점거하거나 수시로 방문해서 협박하는 등의 일들이다. 이런 일에 대비해 대한의사협회는 의료배상공제 경호특약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연간 10만원의 비용을 지불하며 1회 호출 시 3명의 경호원이 7일간 경호업무를 지원해준다.

 

의사와 환자, “대화가 필요해”

 

잇따라 발생한 의료기관 내 폭행 사태에 대해 한 의대생은 “앞으로 내가 당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두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환자와 의사소통하려는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한 것 같다.”며 의견을 밝혔다. 실제로 환자나 보호자가 환자의 현재 상태, 필요한 검사와 그 내용, 예상대기 시간 등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을수록 의료기관 이용 만족도가 높아진다. 또한 응급실 폭행 동기 중 1위는 진료지연(38.5%) 2위는 설명부족과 불친절(26.1%)이라는 사실은 의사-환자 간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최혜란 기자/조선
<hr0616@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