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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만 씻어주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합니다.

컨테이젼, 신종플루, 그리고 방역 시스템

 

“부는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

 

저서 ‘위험 사회’ 로 유명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와 같이 말하며 앞으로 인류사회가 겪게 될 위기는 지역이나 계층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다가 올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대기오염, 오존층 파괴, 핵무장, 대륙간 탄도미사일 등으로 대표되는 현대 사회의 위험은 피해 대상이 특정하지 않고 광범위 할 뿐만 아니라 그 대책 또한 쉽게 마련할 수 없다는 성격을 갖고 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영화 컨테이젼을 통해 인류를 위협하는 전염병이 가져 올 ‘평등한 위험’을 군더더기 없이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사실 혜성 충돌을 소재로 한 ‘딥 임팩트’나 기상이변을 다뤘던 ‘투모로우’ 와 같은 기존 재난영화에 익숙했던 관객이라면 마치 의도적으로 관객의 감정이입을 거부하는 듯 한 냉소적인 내용 전개에 쉽게 지칠 수 있다. 감독은 영화에 출연한 케이트 윈슬릿, 기네스 펠트로, 맷 데이먼, 주 드로와 같은 유명 배우들에게 영웅적이거나 주인공다운 모습이 아닌, 혼란한 세상에서 실제로 있을 법한 다양한 사람들을 연기하도록 함으로써 그 누구도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현실적인 공포를 연출했다.
영화 컨테이젼에서는 미국 질병관리본부(이하 CDC)가 바이러스 확산 및 백신 개발을 위해 고군분투 하는 모습이 큰 줄거리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는 어떨까?
영화에서 보여준 격리를 비롯한 ‘방역 대책’, ‘R-0 수치의 중요성’, 그리고 ‘바이러스 실험실’ 을 중심으로 2009년에 겪었던 신종플루 사태를 되돌아보자.
 
■ “네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이 뭐지?” “환자들과 바이러스에 노출된 이들을 격리시키는 거요.”
 
CDC국장인 치버박사가 메어스 박사에게 현장 책임을 맡기면서 오고간 대화이다. 2009년 4월 24일 WHO가 멕시코에서 돼지 인플루엔자가 발생하였으며, 이 바이러스는 과거 돼지나 사람에서 확인된 바이러스와 성격이 다른 바이러스라고 발표하였다. 이에따라 우리나라 정부는 곧바로 멕시코 전역을 여행제한지역으로 지정한 바 있다. 또 입국자의 검역을 강화 및 환자 격리를 통해 해외 유입을 차단하고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전파 차단 조치’를 실시하였다. 이에 확진 환자로 확인된 승객과 동일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에 대한 추적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추정·확진 환자에 대해 의료 기관 격리를 실시하고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였다. 동시에 각종 언론 매체를 활용하여 신종플루 예방 수칙을 홍보하였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 감염사례가 지속적으로 확인되자 정부는 국가 위기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경계’에서 ‘심각’으로 단계적으로 조정해 나갔다. 이에 행정안전부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하는 동시에 각 시·도 및 시·군·구에도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를 설치하여 범정부적 총 대응체제를 가동하였다. 급성열성호흡기질환자에게 진단검사 없이 의사의 임상적 판단만으로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도록 지침을 개정하였고, 효과적인 신종플루 환자 치료를 위해 거점병원을 지정, 운영하는 등 앞선 조치에 비해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하였다.

 

■ 이 질환은 표면을 통해 전달된다고 봐야해요. 호흡성이죠. 보통 사람은 하루에 2~3000번 얼굴을 만져요. 깨어났을 땐 1분에 3~5번 만지죠. 그런 상황에서 손잡이를 만지거나 식수대, 엘리베이터 버튼, 그리고 서로를 만지죠. 그렇게 전염된다고 볼 수 있을 거예요.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병에 걸릴 수 있다면, 한명의 감염병 환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을지를 알아야 해요. 이걸 R-0 라고 하죠. R-0를 통해 필요한 백신의 수를 확인하고 더 나아가 어떤 대책을 세울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거예요.
R-0는 basic reproduction number의 준말로 ‘모든 인구가 감수성이 있다고 가정할 때 한명의 감염병 환자가 감염가능 기간 동안 직접 감염시키는 평균 인원수’를 말한다. R-0값을 통해 바이러스의 규모와 필요한 백신 수를 추측할 수 있다. R-0수치가 1보다 크면 질병의 유행이 시작되고, 1보다 작으면 유행을 예방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R-0값이 10인 유행병이 있다면, 한 사람의 감염자에 의해 10명의 추가 감염자가 생길 수 있다. 이 경우에 총 국민의 90%이상이 백신을 맞아야 10명중 1명 이하의 비율로 감염되어 R-0가 1이하가 되고 유행을 종식시킬 수 있다. 역학조사를 통해 R-0값을 비롯하여 질병의 빈도, 전파 방법, 예후, 관리 방법의 효과를 평가 할 수 있으므로 감염병 유행 시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영화에서도 메어스 박사와 오랑테스 박사가 각각 미국과 홍콩에서 집요하게 역학조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피해자의 동선과 접촉했던 사람들을 파악함으로써 바이러스가 미칠 영향과, 그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유럽 CDC는 신종플루의 R-0를 1.6 정도로 추정하였고 우리나라도 그와 비슷하게 예상하여 전국민의 35%에게 예방접종을 시행하였다.  

 

■ “우리는 아직 바이러스를 배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집어넣은 세포를 모두 죽이거든요. 돼지, 닭, 모든 것을요. 바이러스를 배양하지 못하면 실험도 불가능하고, 백신도 만들지 못합니다. ”
(CDC의 엘리 헥스톨 박사가 대책회의 중에 바이러스 연구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대사)
“미국의 질병관리본부와 스위스의 세계보건기구는 오늘 샌프란시스코의 서스만박사가 실험실에서 MEV-1 바이러스를 배양하는데 성공했음을 밝혔습니다. 질병관리본부 임원이 말하길 이것은 백신 개발의 시작점이고, 인체에 적용하려면 수개월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보면 CDC국장인 치버박사는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깨닫고 최고 위험도의 바이러스를 다룰수 있게 설계된 BSL-4 실험실에서만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한다. 하지만 그 아래 단계인 BSL-3 등급 실험실에 있던 서스만 박사는 마지막 데이터를 확인하면서 바이러스 배양에 성공하여 백신 개발의 문을 연다.
BSL은 생물 안정등급(Biosafety level)을 말하며 위험도에 따라 1에서 4까지 분류한다. 해마다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경우 BSL-2등급 실험실에서 다룰 수 있으며, 신종플루나 조류인플루엔자의 경우에는 BSL-3등급 이상부터 취급 가능하다. 2009년 신종플루가 유행했을 당시 서울, 경기, 전북, 광주 4 곳의 질병관리본부 산하 연구실 포함, 총 10 곳의 BSL-3 등급 실험실이 있었고, 강아지 신장세포(MDCK cell)를 이용해 신종플루를 배양·실험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BSL-4 등급의 실험실이 없지만 2009년 이후 지속적으로 설립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정리를 위해 영화 대사를 일부 축소, 생략 및 수정 하였습니다. )

 

조원민 수습기자/경희
<science501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