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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인류의 과제, 의대생의 목표

 

 

의과대학 생활을 하다보면 엄청난 학습량에 비례하여 잊혀 지는 정보량도 어마어마 하다는 것을 몸소 느끼곤 한다. 밤샘에 대한 허무함도 잠시, 이미 지난 학기 마지막 시험의 문제조차 전혀 생각나지 않는 자신을 보면 스스로의 망각속도에 놀라곤 한다. 적절한 망각은 인간 진화의 소산이라지만 끝도 없는 암기량 앞에선 이마저도 거스르고픈 게 의대생의 솔직한 심정. 그래서 준비했다! 기억의 신이 될 묘안이 들어있는, 기억과 망각에 관한 심리학 이론들을 소개한다.

 

1. 기억이란

기억은 어떤 자극을 받아들였을 때 그것을 부호화하고 저장함으로써 이루어지고 이것을 인출하는 과정을 통해 기억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기억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각 단계가 유동적으로 잘 이루어질 때 기억의 효용성이 최대가 될 수 있다. 기억은 감각기억으로 인간에게 입력이 되어 단기기억의 과정을 거쳐 장기기억으로 넘어가게 된다. 단기기억이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기억이라고 한다면, 장기기억은 우리가 의식할 수는 없으나 거의 영구적으로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기억력이 좋다, 두뇌가 뛰어나다고 하는 사람들은 바로 장기기억으로 전환된 기억들이 많은 사람들이다. 감각기억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신체 감각기관을 통해 쉴새없이 들어오고 있으며, 이 중 주의를 기울이고 기억으로 전환하고자 선택된 것들이 단기기억으로 의식 속에 존재하게 된다. 장기기억과 단기기억의 관계는 서재에서 책장에 꽃혀진 책들과 자신이 보기 위해 책상위에 꺼내둔 책들의 관계와 같다. 즉, 장기기억은 책장의 책들처럼 이미 자신의 저장창고에 남아있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것들이고 그 중 자신이 필요에 의해 꺼낸 책은 의식속으로 들어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점화된 것들이 단기기억인 것이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장기기억의 양은 최대한 늘리고, 그러한 장기기억을 필요한 어느 때나 단기기억으로 불러낼 수 있도록 스스로를 트레이닝 하는 것이다.

 

2.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하기

단기기억의 지속시간과 용량은 매우 제한적이다. 심리학자 조지 밀러의 연구에 따르면 단기기억의 용량은 처리 단위가 7개에서 더하기 빼기 2개 정도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즉 숫자를 외울때도 7±2자리를, 단어를 외울 때도 7±2단어를 단기기억상에서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많은 정보를 단시간에 외우고자 할 때에는 chunking, 즉 묶음화 하기를 통해 용량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조선시대 왕 계보를 외울 때에도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과 같이 7글자 단위로 끊어서 외우는 것도 마법의 숫자 7법칙을 응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단기기억을 용량이 거의 무제한인 장기기억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단기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암송을 하는 것이다. 시험 직전에 벼락치기 할 때 많은 학생들이 외우기 위해서 같은 단어를 빠르게 반복적으로 말하곤 한다. 바로 장기 기억속에 남기기 위함이다.
심리학자 크레이크와 록하트의 연구에 따르면 기억은 연속적인 처리수준상에 있으며 깊은 수준으로 정보를 처리할수록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깊은 수준으로 처리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정보들을 일관성을 가진 정보단위로 묶어서 조직화 하거나 낮은 수준의 여러 정보들을 상위 개념으로 묶어서 저장하는 것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처리 방식에 있어서 조금 더 효과적이라고 밝혀진 것은 심리학자 로저스에 의해 발표된 자기 중심적 정보 처리이다. 그의 연구에서 피험자들에게 40개의 형용사를 제시하고 기억을 인출하도록하는 질문을 던졌을 때, “이 형용사가 자신을 설명하는 형용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가장 회상률이 높았다. 이는 즉 우리가 어떤 정보를 입력할 때 자신과 관련시켜 처리할 때 그 기억이 오래가고 정확도도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임상 공부를 할 때 본인이나 지인들이 겪었던 증상이나 질병에 대해서는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쉽게 기억에 남긴 경험들이 있다. 따라서 무작정 학습내용을 외우려하기 보다는 본인과 관련된 단서들을 충분히 활용하여 기억에 남기도록 해보자.

 

3. 망각

망각은 심리학적으로 “경험으로 인한 행동의 변화가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심리학자 에빙하우스의 연구는 망각에 있어서 재학습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를 보여준다. 에빙하우스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것을 암기하고 20분만 지나도 그 회상율이 50%대로 떨어지며 하루만 지나도 30%대로 급속하게 떨어진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시간이 흘러서 망각이 진행되었다기보다는 우리가 암기하고 난 이후 반복하지 않으면 인출할 때 까지 다른 많은 자극들이 들어와 기존의 기억된 내용을 밀어내고 새로운 정보들이 대체하기 때문이다.
망각을 일으키는 요인에는 학습의 정도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사전에 학습한 내용도 그 중 하나이다. 배우는 양이 많아질수록 연관된 사전 학습의 양도 늘어나 나중에 새로 들어온 정보들이 헷갈리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반대로 사후 학습이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다. 젠킨스와 달렌바흐의 연구에서 10개의 무의미한 철자 목록을 학습한 후 그룹을 나누어 한 그룹은 잠을 자도록 하고 다른 그룹은 깨어있도록 하였는데 그 결과 잠을 잤던 그룹의 회상률이 더 높았으며 회상률의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졌다. 시험공부를 하면서 밤을 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연구 결과를 본다면 오히려 선택과 집중을 한 후 잠을 자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맥락도 망각의 변인 중 하나이다. 시험 공부를 할 때 시험을 볼 교실에서 공부했을 때, 집에서 공부했을 때 보다 더 생각이 잘 나는 경우가 바로 이 예이다. 실제로 심리학자 고든과 배들리의 연구에서 다이버들을 육지와 해저에서 36개의 3음절 단어를 학습하도록 하고 각각 육지와 해저에서 다시 회상을 하도록 했을 때, 자신들이 학습을 했던 곳에서 회상을 유도했을 때 훨씬 더 회상을 한 개수가 높다는 것이 밝혀졌다.

 

4. 기억의 왕도

기억을 잘 하는데 있어서 이것이 절대적으로 최고라고 밝혀진 연구는 아직 없으나 몇 가지 효과적이라고 밝혀진 방법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 기억술을 사용하기
구글에 mnemonics라고 검색을 하면 각 분야에서 내놓은 재미있고 다양한 기억술들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의학의 경우 대다수가 영어 단어이기 때문에 외국 의과대학 학생들은 이러한 기억술들을 매우 잘 활용하고 있다. 기억술에는 단순하게 앞글자를 따서 외우는 경우와 이야기를 만들어서 외우는 경우가 대표적인데 이야기를 만들어서 외울 때 훨씬 더 지속시간이 길다고 한다. 예를 들면 손에 있는 8개의 뼈 이름을 외울 때, 그냥 무조건 앞글자만 따서 외우기보다는 그 앞글자로 "Some Lovers Try Position That They Cannot Handle"과 같이 이야기를 만들어 외우면 훨씬 더 오래 잘 기억할 수 있다. 학창시절 학교나 학원 선생님들이 일부러 욕을 섞어가며 자극적인 이야기로 외우도록 시킨 것들은 아직도 기억나는 것을 보면 이미 어느 정도는 우리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는 방법이다.

② 인출 단서를 만들기
아무리 외우기를 잘 했다고 하더라도 필요할 때 꺼내어 쓰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 언제 어디서든 꺼낼 수 있도록 학습할 때 인출 단서를 꼭 연결시키도록 하자. 많이 알려진 방법중 하나는 ‘장소법’이다. 머릿속에 가장 익숙한 공간을 하나 만들어 놓고 그 공간속의 소품과 외울 것들을 연결시키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공간으로 설정한다면 약의 메커니즘 순서를 본인이 아침을 준비하는 순서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나중에 시험에서 생각해 내야 할 때 본인이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고, 커피를 내리고, 신을 신는 순서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메커니즘이 생각날 것이다.

③ 검사하기
심리학의 한 연구에서 자연현상에 관한 지문을 7분간 학습하도록 한 후, 2분 후에 한 팀은 7분간 다시 학습하도록 하고, 다른 한 팀은 7분간 시험을 보도록 하였다. 이 후 5분 후, 2일 후, 1주일 후에 회상 검사를 시도하였을 때 학습 후 시험을 보도록 한 팀의 회상율이 시간이 지날수록 학습 후 다시 학습을 하도록 한 그룹보다 높게 나왔다. 이미 우리도 이런 경험이 있다. 공부 하고나서 시험을 본 내용에 대해서는 시험을 보지 않은 내용보다 더 잘 기억이 난다. 책으로 공부를 하기 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중간 중간 서로 테스트를 해 주면 훨씬 더 기억하기 쉬울 것이다.

④ 몸으로 배우기
자전거 타기, 운전하기, 라면끓이기. 이 세가지의 공통점은? 바로 굳이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았지만 한 번 익힌 후에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신체를 이용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를 응용하여 공부를 할 때 몸을 이용하여 공부를 한다면 훨씬 오래 기억할 수 있다. 학창 시절에 머리를 맞아가며 공부한 내용은 잊혀지지 않는다. 머리를 잊었을망정 몸이 그 상황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며 공부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조을아 기자/을지
<lovelyeac@e-mednew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