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우리가 <네이처>에 논문을 내려고 하는 이유는?

애런 슈워츠의 죽음으로 생각해보는 학술정보 독점권

 

한 청년의 자살
지난 1월 11일, 26세 청년 애런 슈워츠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일부 사람들은 그의 죽음이 명백한 타살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는 건장한 청년이었으며, 특별한 병을 앓고 있지는 않았다.
2년 전인 2011년, 슈워츠는 MIT 네트워크를 통하여 480만 건의 학술자료를 다운받아 배포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는 100만 달러의 벌금과 최대 35년의 감금을 선고받을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슈워츠는 2012년 법원 청문회에서 유죄 인정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2013년 1월 11일, 뉴욕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한 구의 싸늘한 주검이 발견되었다.
애런 슈워츠는 14세의 나이로 RSS1.0이라는 웹컨텐츠 배포를 위한 언어를 개발한 유능한 해커였다. 그는 인터넷 공간은 자유롭고 개방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청년이었다. 그 신념을 바탕으로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라이센스(Creative Commons License)에 기술적으로 기여하였으며, 인터넷 검열을 반대하는 DemandProgress를 공동 설립하였다. 그는 한 마디로 ‘정보의 자유를 위한 투사’였다.

 

학술계의 거대한 공룡
저작권법 제 1조에서는 저작권법의 목적을 명시하고 있다. <이 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저작권이라는 개념의 등장으로 무형의 지식들이 상품화되고 거래 가능한 존재가 되었다.
문제는 정보라는 존재가 공공재적 성격과 사유재적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데 있다. 특히 학술정보의 경우 많은 학술지에서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들에 대한 독점적 출판권을 주장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네이처> 지의 경우 “네이처 출판 그룹에서 발간하는 저널들은 저자에게 저작권을 요구하지 않지만, 독점적 출판권을 위해 저자들의 동의를 받고 있습니다.”라고 출판 정책을 명시하고 있다.
<네이처>를 비롯한 다국적 출판그룹에서 발행되는 잡지들은 학계에서 상당한 권위를 지니고 있다. 그 때문에 세계 각국의 여러 학술지들은 자매지가 되기를 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11년 대한생화학분자생물학회의 학술지 EMM(Experimental and Molecular Medicine)이 대한민국 최초로 네이처 출판그룹과 출판계약을 맺어 네이처 자매지가 되었다. EMM의 경우 <네이처> 지의 자매지가 됨으로써 피인용횟수(Impact factor)가 급격하게 올라갈 것으로 기대되어 <네이처> 자매지가 된 것을 환영하는 입장이다.
한편 다국적 출판기업의 학술지 가격은 해마다 상승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의학도서관장을 맡고 있는 서정욱 교수는 20년 전과 비교해 단행본 구입비는 1.8배 오른 반면, 학술지 구입비는 4.7배나 올랐다고 회고했다. 다국적 출판기업이 구독 가격을 무리하게 올려도, 도서관 입장에서는 이들 학술지를 구비해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학술지를 구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대체 출판 모델의 등장과 한계
이와 같이 정보의 저작권이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2005년에 대한민국에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 이하 CC)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되었다. CC는 자발적 공유의 표시방식인 CCL을 통하여 창작자에게 자동으로 부여되는 저작자의 권리를 최소화하여 자신이 창작물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개념이다. CCL은 자발적 공유의 표시방식으로서 창작자가 자신이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범위를 명시하는 것이다.
CCL은 저작권법에 근거하여 만들어졌다. 저작권법 제 46조에 따르면 저작재산권자는 다른 사람에게 그 저작물의 이용을 허락할 수 있고, 이용허락을 받은 자는 “허락 받은 이용방법 및 조건의 범위 안에서”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 CCL은 특정인에게만 이용을 허락하지 않고 원칙적으로 모든 이의 자유이용을 허락하되 몇 가지 이용 방법과 조건을 부가하는 허락 방식이다.
학술계의 경우에는 오픈 액세스(Open Access, 이하 OA)가 실험 중에 있다. OA는 심층 검토를 마친 논문들을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하려는 프로젝트로, 다양한 방식에서 논의되고 있다. OA는 현재 투고자에게 출판에 필요한 금액을 부담하게 하는 방식과 후원금을 받아서 운영하는 방식 두 가지로 진행되고 있다. <네이처>를 비롯한 다국적 출판기업 역시 이러한 대체 출판 모델을 일부 저널에서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체 출판 모델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비평가들은 대체 출판 모델이 출판비가 출판기업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바뀐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무료 오픈 액세스 저널들을 출판하고 관리하는 것은 대부분 국가 기관이기 때문에 그 운영비가 바로 세금이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출판 그룹들에서 출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논문에 대한 엄정한 심사를 하는 역할도 하고 있으므로, 논문의 질 유지에도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허기영 기자/서울
<zealot648@e-mednews.org>

※ Impact factor : 어떤 저널에 게재된 논문들이 SCI급 저널에 실린 다른 논문들에 얼마나 많이 인용되었는가를 나타내는 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