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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의학은 악덕 자본주의의 산물입니다”

 

▲ 과의연에서는 주로 해외논문과 서적을 연구하여 한의학에 대한 학술적인 비판을 하고 있다.

과학중심의학연구원 황의원 원장 인터뷰

 

여의도 국회의사당 근처에 위치한 오피스텔 앞. 경찰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경계를 하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분주히 어디론가 가고 있고, 도로에서 차들은 신나게 달리기 바빴다. 그 분주한 사람들 속에서 편한 복장에 백팩을 멘 황의원 원장이 나타났다. 인사를 나눈 후 올라간 사무실에선 함께 일하는 인터넷신문 기자들이 바쁘게 기사를 치고 있고, 창밖으로 대로를 달리는 차들과 한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어찌 보면 사무적이면서도 개방적인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황 원장이 가방에서 여러 논문들과 보도자료들을 꺼내며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 먼저 과학중심의학연구원에서 하는 일은 어떤건가요?
우리는 한의학과 대체의학을 학술적인 관점에서 비판하고 있어요. 이 문제는 워낙 오래 묵었고 깊이 박혀있는 보건의료영역의 사이비과학의 문제라 상시적으로, 그리고 오랫동안 고발해야 할 사항입니다. 예전부터 사이비과학에 관심이 많았고 무신론 등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황 원장은 리처드 도킨스의 전투적 무신론을 지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체의학, 특히 우리나라 풍토에서 한의학은 상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이에요.

 

- 그런데 그 일은 의협의 의료일원화특별위원회(한방대책특별위원회)가 맡고 있지 않나요?
그렇죠. 하지만 한방대책특별위원회에서의 활동은 한계가 있어요. 의협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법적으로 보건복지부와 연결되어 있죠. 거기서 근본적인 한계가 생겨요. 보건복지부는 결국 한의사협회들과도 관련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번에 새로 만든 것이 과학중심의학연구원(이하 과의연)입니다.

 

- 일산에서 열린 젊은의사포럼에서 부스 설치도 하셨습니다.
저희에겐 좀 아쉬운 부분인데요, 저희 부스가 행사장 입구에서 너무 먼 곳에 위치해서 생각보다 홍보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요. 도와주신 분들 덕분에 150명 정도 후원신청을 받긴 했지만 처음에 예상했던 것에 비해서는 좀 아쉽네요. 다음 포럼에선 좀 더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아 저희 연구원 홍보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할 생각입니다.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 EBM)과 과학중심의학(Science-based medicine, SBM)

 

- 과의연의 ‘과학중심의학’은 어떤 것인가요?
과학중심의학을 설명하려면 먼저 근거중심의학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데요. 근거중심의학은 1990년대부터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임상의학의 새로운 방법론입니다. 근거중심의학은 근거로서의 가치가 크지 않은 비체계적, 단편적 경험에 근거한 임상적 판단에 대한 반성적 태도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신뢰성 있는 연구결과를 위해 무작위배정 임상시험과 메타 분석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 요즘 한의사들도 EBM 한방(근거중심한의학)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게 근거중심의학의 한계에요. 근거중심의학의 문제점은 애초에 치료법이 과학적 개연성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좌우간 임상시험, 특히 메타분석이나 체계적 문헌고찰과 같은 고급 연구과정을 거치면, 결과의 질을 떠나 그 연구를 다른 믿을만한 과학적 연구들과 다 동급으로 여겨지게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간단하게 말해서, 근거중심의학은 초기 가설의 과학적 개연성이 0%라도 제대로 된 연구과정을 거쳐 결과가 나온다면 옳다고 이야기하죠.

 

- 그럼 과학중심의학은 어떻게 다르죠?
과학중심의학에선 가설이 엉터리라면 그걸 기반으로 나오는 결과도 무의미하다고 합니다. 가설이 최소한의 과학적 개연성은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종요법처럼 물이 기억력을 갖고 있다는 가설이나, 침술에서 이야기하는 막혀있는 기를 뚫는 것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는 가설에서 나오는 결과는 누가 봐도 아니란 걸 알 수 있겠죠? 근거중심의학에서는 근거 그 자체도 문제입니다. 사실 대체의학 치료법은 임상시험을 해보면 아주 애매모호한 수준의 근거가 많이 나와요. 여기서 근거중심의학은 딱 그 수준의 입장 표명, 그 이상 그 이하도 하지 않지만, 과학중심의학은 그냥 엉터리라고 가혹하게 얘기해버리죠. 명백하고 구체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 앞에서, 미묘하고 애매모호한 근거의 치료법이 설 자리는 없으니까요.

 

침술은 용납되지 않는 것인가?

 

- 외국에서 침술을 대체의학으로 인정하는 사례는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가 침술을 일단 대체의학으로는 인정하고 있긴 하지만 그 자체를 정상적인 의학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일종의 언더문화라는 것이죠. 그리고 환자의 강력한 요구라는 전제하에 의사가, 혹은 의사의 감독 하에서 침술사가 시술을 하는 형태입니다. 부작용 대응 측면에선 양호한 편이지만 일단 효과가 없기 때문에 논란이 계속 되고 있어요. 최근 영국에서도 구역질이나 두통, 관절염 정도의 질환 이외에 대한 침술의 치료효과를 광고하면 법적제재를 받도록 하는 강력한 조치가 나왔죠.

 

- 그런데 한의사들은 여러 논문들을 가지고 침술의 효과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게 참 웃긴 거죠. 여기에 대한 재미있는 논문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나온 침술 논문들을 분석한 논문인데요, 논문들을 분석해보니 결과들이 모두 한쪽으로 치우쳐져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효과가 없다는 논문은 없고 하나같이 침술이 어느 질환에 대해서 효과가 있다는 논문만 있다는 거죠. 실제 현대의학에서는 (황 원장은 서양의학이란 용어는 한의학의 반의어일 뿐, 정확하게는 현대의학이 옳은 표현이라 말했다.) 양쪽으로 비교적 고르게 균형이 맞춰진 결과가 나옵니다. 유의하다는 결과도 나오는 반면 유의하지 않다는 결과도 나오는 것이죠. 그런데 침술 관련 논문들을 분석해보니 그렇지 않더라는 거죠. 분명 조작이나 윗선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결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많은 논문을 가져와봐야 의미가 없죠. 그리고 저희도 한의학, 대체의학이 효과가 없다는 논문들 또한 충분히 확보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한의학를 믿는 사람들

 

-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한의원을 많이 갑니다.
워낙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제 생각 중 하나를 말씀드리면 이 문제는 왜 사람들이 절에, 교회에, 성당에 가느냐는 문제와도 상당부분 맞닿아있습니다. 사람들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뭔가 초월적이고 마법적인 것을 갈구하는 집단적 욕망과 관계된 문제죠. 치료(curing)와 치유(healing)는 구분됩니다. 후자는 의학이 쉽게 해결하기 힘들어요. 단지 엔터테인먼트 성격의 자본주의 시장만이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 있을 뿐이죠. 대중예술, 대체의학 뭐 그런 것들입니다. 대중예술은 인정하지만, 대체의학은 사악한 악덕 자본주의의 산물이라 봐요.

 

- 약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술, 담배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한의학과 대체의학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선택권이 있지 않을까요?
사실 저 자신도 한의학 치료법의 위험성이 과연 술, 담배의 위험성보다 객관적으로 더 심각한 것인지 의문이 있긴 하지만 술, 담배는 일종의 공갈빵형 위로(정신적인 힐링) 이상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습니다. 캠페인을 통해서도 그 위험성이 충분히 공표되고 있어요. 반면 한의학 치료법은 술, 담배와는 달리 위험성과 부작용이 경고되는 정도가 아니라 효과가 있는 의료행위로까지 격상되어있다는 것이 심각한 겁니다. 제정신을 가진 의사 중에서 술, 담배와 같은 것을 기호품으로 추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한의학은 일반 의사들로부터 추천되는 일까지 있습니다. 기가 막힌 일이죠. 전 사람들이 침술을 최소한 담배 정도로만 인식해주길 바랍니다. 선택을 하더라도 백해무익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선택하라는 거죠.

 

한의학, 타협은 없다

 

- 과의연도 대한의사협회와 마찬가지로 의사들의 이해관계를 변호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과의연은 의사를 변호하는 게 아니라 의학, 그중에서도 과학중심의학만을 변호합니다. 대한의사협회는 ‘직업인’으로서의 이해관계를 변호해야 하는 것이 정관상 목적이지만, 과의연은 의사가 아니라 의학자로서의 영혼만을 변호합니다. 욕을 더 먹을 수도 있는 입장이지만, 세속적인 이해관계와는 거리를 둔다는 점에서 속편하죠.

 

- 한의사들과 대화를 할 여지는 없습니까? 혹은 과학적 검증을 받아들인다면요?
수도 없이 고민해봤습니다만, 도저히 타협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그들에게 과학적 검증의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자신들의 밥벌이 수단을 완전 포기한다는 의미니까요. 한의학 문제는 제도권에서의 퇴출 외엔 그 어떤 답도 없습니다. 저항이 있겠지만 이건 한의사-의사간의 양자 게임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의료소비자까지 포함하는 3자 게임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사이비의학을 하는 사람의 생계를 유지시켜 주기위해 의료소비자가 기만당하는 상황을 연장시켜야 할 하등의 도덕이나 논리가 나올 여지가 없습니다. 의사들도 나중에 역사적 문책을 당하지 않으려면 무조건 원칙적 입장, 과학적 입장을 표명해야합니다. 의대생들도 자신들이 졸업할 즈음에 더 나은 의료환경을 원한다면 이 문제와 관련해서 의료계 어르신들보다 더 원칙적이고 과학적인 입장을 표명해야 할 것입니다.

 

장진기 기자/울산
<showbu@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