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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포폴, 치명적인 유혹에 빠지다

 

- 향정신성의약품의 오남용 사례 총망라

 

지난 8월, 강남의 한 산부인과 의사가 프로포폴(Propofol)을 한 여성에게 투여한 뒤에 사망하자 그 시체를 유기하다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흔히 우유주사라 불리는 프로포폴이 한동안 언론사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프로포폴은 페놀계 화합물로 흔히 수면마취제라고 불리는 정맥마취제로서 수술시 전신마취의 유도, 유지 또는 인공호흡 중인 중환자의 진정을 위해 쓰인다. 수면내시경 등을 할 때에도 사용되는 프로포폴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향정신성의약품(이하 향정)으로 지정된 약물이다.
그렇다면 향정은 무엇일까? 향정은 환각, 각성 및 습관성과 중독성이 있는 의약품으로 정의내릴 수 있으며 의학적 유용성과 인체 유해성의 정도에 따라 4가지 군(숫자가 작을수록 유해성이 큼)으로 나뉜다. 향정은 심리적 의존성 및 남용 가능성은 있으나 보건당국의 적절한 지도감독과 전문가의 성실한 처방관리 하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흔히들 이 차이를 비약하여 ‘향정=마약’이라는 선정적인 보도가 만연해 있는 실정이다. 물론 ‘적절한’ 지도감독이 따르지 않을 경우 향정도 마약과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앞서 언급했듯이 몇몇 향정신정의약품들이 오·남용되어서 피해사례가 속출되고 있다. 몇 가지 향정신성의약품들의 본연의 기능을 알아보고 어떤 오남용 사례들이 있었는지 더 파헤쳐보자.

 

덱스트로메토르판제제(러미라정 등)

 

모르핀 등 아편계 알칼로이드의 합성화합물로서 감기와 상기도염, 급성·만성 기관지염, 폐결핵, 기관지확장증, 폐렴 등에 의한 기침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하는 비마약성 진해제로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10월 1일부로 덱스트로메토르판제제가 4군 향정으로 분류되었다.
권고용량의 25배 이상 복용하는 경우에 환시·환청·환취 등 현실을 왜곡하는 정신병적 증상을 보이며 판단력과 자제력이 흐려지고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한편 미국에서 덱스트로메토르판제제 성분이 함유된 소아용 OTC 기침·감기약이 가격이 저렴하고, 간편하게 구매가 가능해서 10대 청소년들에 의해 오·남용되는 대표적인 약으로 꼽혔다. 실제로 캘리포니아 마약퇴치운동본부(CPCS)에서 보고한 자료에서 최근 10년 동안 17세 이하 소아들의 덱스트로메토르판제제 오·남용이 850%나 급증했음을 밝혔다. 결국 2011년에 미국에서는 최초로 캘리포니아 주에서 덱스트로메토르판이 함유된 소아용 OTC 기침·감기약 판매를 중지했으며, 올해 7월에는 미국 상원에서도 이 제제를 함유한 감기약의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페노바르비탈제제(루미날 등)

 

백색 분말로 냄새가 없으며, 중추신경억제제·최면제·진정제·진경제로서 불면증·간질·백일해·고혈압 등에 쓰인다. 최면제로서의 작용은 6시간 이상 지속되며 대표적인 숙면제 또는 지속성 최면제로 3군 향정으로 분류되었다.
페노바르비탈제제의 오·남용 사례로 1996년에 일어난 수면제를 탄 감기약 복용한 어린이들이 집단으로 부작용이 발생했던 사건을 들 수 있다.
어느 병원의 약사(당시에는 의약분업이 시행되지 않았음)가 실수로 해열제 대신에 페노바르비탈이 함유된 진정제 성분을 섞어서 만들었는데, 이는 체중이 10㎏인 아동의 경우 하루 평균 허용치인 40㎎의 10∼15배에 달하는 500∼600㎎의 약을 투여한 셈이다. 결국 성분이 뒤바뀐 약을 복용한 어린이들은 구토와 탈진, 붉은 반점 형성, 심한 졸음 등 각종 부작용을 나타냈다.


케타민

 

케타민은 전신마취제로써, 수술하기 위해 마취를 유도하고 통증의 경감을 위해 이용되는 약물로 우리나라에서는 2006년에 2군 향정으로 분류되었다. 흰색의 결정 또는 결정성 가루로 냄새가 없으며, 페니실린계 유도체로 물에 잘 녹는다. 중추신경계의 특정 부위에 작용하여 탁월한 진통 작용을 하지만 환각과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연구 결과 케타민은 우울증 환자의 과활성화된 안와전두피질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증상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부작용으로 가벼운 두통과 졸림이 발생할 수 있고, 혈압이 상승하며 시야가 흐려지거나 사고가 명료하지 않게 될 수 있으며 어지러움, 메스꺼움을 경험할 수도 있다.
2009년 5월에 한참 많은 인기를 누리던 배우 주모씨와 윤모씨가 모델로 활동한 예모씨의 집에서 함께 케타민을 투약한 혐의를 검찰 조사에서 시인하여 매스컴을 들썩이게 한 적이 있었다. 이 세 명은 결국 법의 심판을 받아 주모씨는 징역 6월에 집행 유예 1년, 사회봉사 120시간, 추징금 36만원을 선고 받았고 윤모씨와 예모씨는 각각 징역 3년과 징역 2년 6개월과 집행유예 4년, 보호관찰 2년, 사회봉사 200시간을 선고받았다.

 

디아제팜 (바리움 등)

 

진정제로 사용되는 백색 혹은 연한 황색의 결정성 분말로 냄새는 없고 쓴맛이 약간 나며 약한 정신안정제로 이용된다. 불안과 긴장을 억제하고 동물의 공격적 행동을 특이적으로 억제한다. 이 이외에도 디아제팜은 최면제, 골격근 이완제, 항경련약으로도 사용된다. 디아제팜의 이상반응에는 의존성, 금단증상, 반동적 불안 등이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4군 향정으로 분류되었다.
2008년 경남의 모 병원 의사인 A씨가 당해 2월에 급성 췌장염 환자에게 투약하고 남은 디아제팜 10ml 가량을 스스로 주사해 투약한 뒤에 환각 상태에서 환자를 진료했던 사건이 있었다.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A씨가 당시에 스트레스와 독감 등으로 피곤하여 투약했음을  자백했다고 한다. 같은 병원의 원장인 B씨와 약사 C씨는 디아제팜 등의 향정을 소홀히 한 혐의를 물어 A씨와 함께 불구속 입건했다.

 

강상준 기자/서남
<myidealis@e-mednew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