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변화하는 의료환경, Health 2.0 시대의 도래

1991년 OO 의과대학 강의실

강의실엔 교수님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노트 필기소리와 OHP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교수님이 강의하시는 내용을 다 받아 적고 싶지만, 필기속도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다. 할 수 없다. 오늘도 맨 앞줄에 앉아서 열심히 필기를 하는 여학생의 노트를 빌리는 수 밖에. 교수님의 강의를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다 받아 적은 필기소녀는 우리학번의 여신이자 천사이다. 공부는 당연히 도서관에서 하는 것이다.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책을 찾아서 무슨 내용인지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2011년 OO 의과대학 강의실

강의실엔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오는 교수님의 조곤조곤한 목소리와 몇몇 동기들이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뿔사, 교수님이 설명하시는 내용을 놓쳤다. 할 수 없다. 수고스럽지만 오후에 올라오는 동영상 강의를 다시 들어야겠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지루해져서 밖으로 나와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의대생도 코피스 족이 될 수 있다. 모르는 내용이 나와도 상관없다. 구글과 위키디피아가 있다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

1991년 어느 날

광화문 근처에서 회계사 일을 하고 있는 XX는 2~3일전부터 옆쪽 옆구리가 아파왔다. 열도 나는 것 같고 만지면 아프다. 주변 지인들에게 이게 무슨 증상이냐고 물어보았지만 누구도 속시원히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다. 바쁜 업무 와중에 시간을 내어 병원을 찾았고, 여러 과를 돌아 신우신염이라는 진단을 받을 수 있었다.

2011년 어느날

중소기업 비서업무를 맞고 있는 XX는 2~3일전부터 옆쪽 옆구리가 아파왔다. 열도 나는 게 단순한 근육통은 아닌 것 같아서 인터넷을 검색했다. 신장 쪽에 이상이 있으면 옆구리가 아플 수 있다고 한다. 좀더 정확한 진단을 얻기 위해 포털 사이트 지식인에 질문을 올렸다. 하루만에 답글이 달렸는데, 신우신염일 수 있으니 빨리 병원을 찾으라는 내용이었다. 병원을 찾은 XX는 신장내과를 방문, 의사를 만나 “인터넷을 검색해보니까 신우신염 같던데 항생제 처방을 받아야 하나요?”고 말했다.

급격한 인터넷의 발달은 환자뿐만 아니라 의대생의 일상마저도 바꾸어놓았다. 환자는 자신의 증상을 검색 창에 간략하게 기입하면 가장 비슷한 병을 찾을 수 있고, 진단 알고리즘을 이용하면 자가진단이 가능한 사이트까지 있다. 의사 평가 사이트도 있기 때문에 의심되는 병에 대한 전문가도 검색해 별점이 높은 의사를 골라 찾아간다. 의사에게 진단을 받은 이후엔 환우회 까페에 가입해 내가 받는 치료법이 일반적인 치료법과 어떻게 다른지, 앞으로의 병의 경과는 어떨지 세세히 알아 본다. 이렇게 누구나 원하면 쉽게 의학정보를 얻는 것이 가능해진 현재, 정보화는 의사-환자의 관계마저 바꿔놓고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보면 이러한 내용이 있다. “내 아들과 스승의 아들, 그리고 의료 관습에 따라 선서하고 계약한 학생에게만 교범과 강의와 다른 모든 가르침을 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하지 않겠습니다” 과거에 의료는 일종의 성역이었다. 서적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에게나 배움을 전수하는 것도 아니었다 .의사는 특별한 존재였고 환자에겐 아버지이자 지도자였다. 의사를 찾은 사람은 의사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환자의 의견을 묵살하고 마음대로 하려고 했다간 고소를 당할지도 모른다. 환자도 이제는 알만큼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터넷의 발달이 의료정보에 대한 접근성은 높였을지 모르나, 부정확한 정보도 함께 통용되어 환자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의료쇼핑이 일상화되어 치료할 시기를 놓쳐 병을 악화시키거나 목숨을 잃는 사례도 있다.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환자의 건강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새로운 의료환경,
Heath 2.0 시대

여기에 대해 요즘 떠오르는 개념 중 하나가 헬스 2.0이다. 2007년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 개념으로써, 지난 9월 미국 센프란시스코에서 4번째 총회가 열린바 있다. 헬스 2.0의 정의는 “소비자와 의료제공자가 건강정보에 대해 공유하고 참여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인 건강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Web 2.0 서비스 플랫폼”이다. 여기서 말하는 Web 2.0 서비스 플랫폼은 검색엔진(구글), 소셜 미디어(위키피디아), 소셜 네트워킹(페이스북), 블로그로서, 건강정보를 제공자 관점이 아니라 플랫폼에서 참여한 사용자 관점에서 자발적인 공유, 개방, 참여를 통해 건강정보 서비스를 만든다는 것에서 기존 건강사이트인 헬스 1.0과 다르다. 환자가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던 기존의 의학정보 사이트를 헬스 1.0이라 한다면, 환자들끼리 자신의 병을 공유하고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헬스 2.0이라 할 수 있다.

헬스 2.0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가짜 과학과 사이비 의학를 배제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안전한 의료소비와 선택권을 확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부실한 건강보험으로 인해 사용자 차원에서 보건의료비를 절약해보자는 움직임으로 시작한 미국보다는 그 발전이 더디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헬스 2.0 시대에 걸맞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의사들의 주도로 만들어진 헬스 2.0 사이트인 코리아헬스로그가 2008년 다음 블로그 대상을 수상한 바가 있다. 건보공단이 운영하는 `건강iN'은 지난2007년 3월 검증된 건강정보 제공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개설된 이래 연평균 방문수가 1천200만여명에 달할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국형 IT 기반 의료사업의
주소와 한계점

하지만 정부 주도의 정책 성과는 미약한 편인데, u-health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계획을 세웠지만 눈에 띄는 가시적인 결과물은 아직 없는 상태이다. 이러한 정부의 u-health 정책의 본질적 문제점은 u-health 비전 및 통합적 전략이 부재하고, 부처 차원의 사업 추진 주체도 부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u-health 정책이 시행되었을 때, 가입자를 모집하고 관리하며, 의료기관 보험공단 및 단말기 통신사업자 등을 연계해 종합적인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른바 ‘건강관리회사’의 역할을 누가 주도적으로 담당하게 될지도 미정인 상태이다. 큰 그림이 잡히지 않은 상태라, 부처별 중복투자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 오바마 정부는 보건의료 부분 IT 인프라 구축을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IT 인프라를 일찍 도입하는 의료기관, 병의원, 의사에게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안들도 나오고 있는 상태이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는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처럼 홈페이지에 건강정보를 올려놓는데 머무르지 않고 유투브에 블로그를 개설해 적극적으로 건강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초 대형 기업인 Google이나 IBM, MS 등도 헬스케어 영역에 뛰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분야가 미국의 핵심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미국의 발빠른 행보를 보고, 혹자는 한미 FTA가 시행되어 의료기술이 자유롭게 통용되면, IT 의료기술에서 우리나라가 밀릴 것 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2010년 가을 보름간, 2만4천772명이 참여한 건강정보 전문 사이트 `건강iN' 평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건강정보 습득경로로 인터넷이 75.1%로 가장 많았고 대중광고매체 12.9%, 의료인7.1% 순으로 조사되었다. 의료정보의 습득경로에서 이미 인터넷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3G폰의 보급으로 이 비율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정부 혹은 민간주도의 IT 기반 의료사업의 육성과 관리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박민정 기자/성균관
<cindy@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