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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청년과 처녀가 만난다. 이 사실이 없다면 인류는 멸망하고 말았으리라.” 《H 보우만》

의대생들도 똑같이 ‘대학생’의 신분을 가지고 있지만 ‘의’라는 글자 하나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다른 대학생들보다 더 호되게 시련을 맞곤 한다. 시험에 대한 부담감도 그렇고, 청춘을 희생하는 것도 그런 시련들일 것이다. 의대 생활을 하다보면 이내 이런 시련들에는 면역이 되고 무뎌지지만 졸업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무뎌지지 못하는 시련이 있다. 연애. 보우만의 말처럼 인류 보존의 위한 당위성을 가진 것이 연애라지만 의대생이기에 우리는 때로는 진심을 숨겨야 하고 때로는 조금 더 많이 인내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는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성숙하게 커 가는 아름다운 의대생 커플들도 많다. 그들에게는 어떤 숨은 이야기가 있을까. 상대 연인의 상태에 따른 여러 커플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같은 의과대학 커플

본과 4학년에 재학 중인 A씨는 4년 째 같은 학교 동기와 연애중이다. 주변 사람들이 당연히 졸업 후 결혼을 할 것이라 생각할 정도로 공인된 커플이다. 해부학 실습조를 통해 가까워지게 된 두 사람은 연애가 의과대학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커피같은 역할을 했다. 학업에 지칠 때면 서로를 토닥여주며 기운을 불어넣어주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서로가 상대의 선생님이 되어 가르쳐주었다. 공부가 곧 연애이고 이는 곧 좋은 성적으로까지 이어졌다. 지나치게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 권태기가 올 수도 있었지만 각자 다른 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한 덕에 그 걱정은 덜어졌다. 전반적으로는 다른 커플보다 장점이 많지만 동기 커플이기 때문에 일거수일투족이 동기들 내에서 공유된다는 점에서는 불편한 점도 있다. 또한 개인의 행동이라도 항상 주위 사람들은 셋트로 엮어서 바라보기 때문에 개인만의 개성이 묻혀진다는 점도 단점으로 꼽았다. 동기 커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단순한 호감에서 연애를 하기에는 후폭풍도 심하고 기회비용도 많다고 충고한다. 서로가 서로의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되어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 일반 학부생 커플

본과 1학년에 재학중인 B씨는 1년째 같은 학교 학부생과 연애중이다. 예과 시절 교양 수업을 통해 만나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올해 1학기가 끝나면서 다툼이 잦아지자 연애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예과 시절에는 학부생 연인보다 물리적, 심적 여유가 많아서 연애를 즐겼지만 본과에 들어오면서 절대적으로 상대방보다 여유가 없어지자 갈등이 생겼다. 상대방은 밀도있게 짜여진 의과대학의 커리큘럼을 이해하지 못해 서운해하고, 본인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만 체력적, 시간적인 한계가 느껴져 서서히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같은 대학생으로서 공감대도 많고 의대 밖의 대학생활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반 학부생들과 본과 의대생들의 학사일정은 완전히 달라서 데이트 시간을 맞추는 것에서 어려움이 많다. 20대로서 공유할 수 있는 문화가 많다는 것에서는 추천하고 싶지만 의대생의 학사 일정을 이해해주지 못한다면 결국 언젠가는 끝이 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경고한다.

♥ 타 학교 의대생 커플

본과 4학년에 재학중인 C씨는 4년째 타 학교 의대생과 만나고 있다. 예과 재학 중 지인의 소개를 통해 만났다. 상대 연인은 2살 연하로 본과 2학년에 재학 중이다. 학교 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배우는 내용은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C씨가 연인이자 멘토로서 상대에게 도움을 주는 데서 행복을 느낀다. 학교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사생활이 확보되면서도 같은 의대생이라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아도 상황을 이해해줄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또한 늘 공통의 화제가 있고 상대방의 학교에 들어오는 최신 소식들을 나눌 수 있기 때문에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데 어려움이 없다. 사랑 싸움을 제외하면 딱히 서로 갈등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의대생으로서 각자가 바쁘기 때문에 자주 만나지 못해 아쉽다. 틈나는 대로 전화나 문자를 통해 연락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다른 커플들에게 물었을 때 이구동성으로 가장 의대생에게 이상적이고 적합한 커플유형으로 손꼽혔다. 이유를 물었을 때 한결같이 “서로의 말을 변명으로 듣지 않고 믿어줄 수 있고 의대생의 특수성을 이해해 줄 수 있는 관계이기 때문” 이라고 답했다.

♥ 사회인
   (직장인, 대학원생 등) 커플

본과 3학년에 재학중인 D씨는 2년째 직장에 다니는 애인과 연애중이다. 소개팅을 통해 만나 연인이 되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학생과 직장인이라는 경계선이 뚜렷하여 보이지 않는 얇은 벽이 있었지만 올해 실습을 돌기 시작하면서 사회 생활을 하게 되자 공감대가 늘어났다. 학생이라고 해도 의대생들의 하루 일과는 직장인만큼이나 바쁘고 타이트하기 때문에 이해를 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갈등은 적었다. 하지만 경제적인 면에서 직장을 가지고 있는 상대에게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주도권도 함께 상대에게 줄 수 밖에 없었다. 학생들을 만나는 것보다 사회 생활에 대해서 많이 듣기 때문에 조금 더 빨리 성숙해지고 실습을 돌면서 교수님들과의 관계를 원활히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만 상대방은 샐러리맨이고 본인은 전문직 종사자가 될 입장이기 때문에 삶의 계획을 세우거나 진로 이야기를 하면 대화가 단절되기도 한다. 사회인을 만날 예정이라면,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겪어보아 조직의 운영원리를 이해하고 작은 문제쯤은 쿨하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서로 오랜시간 함께하는 데 유리할 것이다.

♥ 장거리 연애 커플

본과 4학년에 재학중인 E씨는 3년째 외국에서 유학중인 연인과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초등학교 때 동창을 커서 만나게 되어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처음에 사귈 때 주위에서 농담 반, 진심 반의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많이 들렸다. 본인도 처음에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상대에 대한 확실한 마음과 믿음으로 연애를 지속해오고 있다. 보고 싶을 때 직접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처음이나 지금이나 늘 안타깝다. 때문에 상대 연인이 방학 때 나오면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함께 하려고 일정을 짠다. 연인이 멀리 있기 때문에 다른 커플보다 연애를 하면서도 자기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다는 점과 데이트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점은 이 커플만의 장점이다.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꼭 전화하고 싸우거나 기분이 좋지 않더라도 반드시 전화는 받는 것을 둘만의 규칙으로 삼았다.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는 각오와 상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없다면 가장 쉽게 깨질 수 있는 관계이다.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라면 장거리 연애는 절대 말리고 싶다. 주변의 커플들이 놀러다니거나 기념일을 챙기는 것을 보고 쉽게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이라면 이 관계에서는 심각한 위험요소일 수 있다.

여러 커플들을 인터뷰 하면서 공통적으로 들었던 말이 있다. 예과 때는 되도록 연애를 하기 보다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을 이해하고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라는 것과 상대방의 조건보다는 의대생의 특수성을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지지와 격려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보고 연애를 시작하라는 것이다. 다른 대학생들에게도 물론 해당되겠지만 왠지 의대생이기에 더 뼈져리게 와 닿는 연애 선배들의 충고이다. 오늘도 전국 곳곳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을 의대생 커플들의 행복을 기원한다.

조을아 기자/을지
<lovelyeac@e-mednew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