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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시험 문제 복원,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해 12월 28일,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하 국시원)은 의사국가시험 필기시험 및 실기시험과 간호사국가시험 출제문제를 복원, 발간한 출판사 3곳과 편저자 8명을 고소했다.
또한 지난 1월 26일에는 SBS ‘뉴스추적’이 ‘국가시험이 샌다’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으로 의사국가고시 실기시험 복원 사이트에 대해 보도했다. 이 방송은 사실상 의사국가시험보다는 한의사국가시험 과정에서 호텔합숙 및 호텔족보 등을 주로 문제 삼았으면서도 방송의 앞뒤에 ‘의사’를 자주 언급하며 마치 의사국가시험에서 문제가 유출되는 것처럼 보도했다. 또한 실기시험 기출문제 사이트에 대해서도 ‘비밀 홈페이지’라는 용어를 택해 문제를 확대시켰다.
한 달 사이에 의사국가시험의 문제 복원에 대한 문제제기가 두 번이나 나오자 인터넷의 반응도 뜨거웠다. 해당 사건을 다룬 기사들에는 ‘의사 너무 쉽게 되는 것 아니냐’, ‘의사 되기 전부터 부정행위부터 배운다’ 등의 비판적인 의견들과 ‘기출문제를 보지 않는 시험이 어디있느냐’, ‘수학의 정석 보고 수능 보라는 말인가’등 기출문제 복원을 옹호하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한 네티즌은 기자시험의 기출문제를 올려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전사협과 퍼시픽, 그 역사는

SBS ‘뉴스추적’ 방송과 관련 기사에서 자주 눈에 띄는 단체가 전국의학과4학년협의회, 즉 ‘전사협’이다. 의대생들을 대표한다는 단체임에도 본과 4학년이 아니면 이름도 생소한 이 단체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현재 정착된 ‘전사협 복원 -> 출판사 출판’의 시스템은 어떻게 정착되게 되었을까.
현재의 의사국가시험 출판업계와 전사협의 복원 시스템이 자리 잡게 된 역사는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5년에 치러진 제58회 국가시험은 난이도 조절 실패로 64.2%라는 낮은 합격률을 보이게 된다. 이에 따라 사상 처음으로 같은 연도에 추가 시험(제59회 국가시험)을 치르게 된다. 이 ‘추시’를 치르는 과정에서 응시생들에게 문제를 주는 것에서부터 전사협이 유래하였다.
전사협이 만들어진 초기에는 복원한 문제들을 예당 출판사를 통해 전사협의 이름으로 직접 출판하였다. 그 후 고려의학이 자체적으로 문제집을 제작, 출판하기 시작했고 2003년 퍼시픽이 출간됨과 함께 예당도 전사협과 독립하여 문제집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예당출판사가 전사협에서 독립함에 따라 전사협은 문제집을 직접 만드는 단체에서 문제를 복원 한 후 출판사들에 이를 제공하는 단체로 성격이 변했고 그 후 군자출판사도 문제집을 만들기 시작해 지금의 형세가 만들어진 것이다.
전사협, 투명성 재고 노력으로
금전적인 문제 없어

사실 이러한 관행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 전사협이 복원한 문제를 출판사에 넘기는 과정에서 출판사마다 각 500만원씩의 대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돈은 전사협의 운영비와 ‘전사협 임원 장학금’ 명목으로 당시 전사협 임원들이 임의로 사용했었다고 한다. 전사협이라는 단체 자체가 매년 회원과 임원이 바뀌다 보니 재정 운영이 불투명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공식적으로 받는 500만원 외에도 전사협 임원들이 출판사로부터 접대를 받았다거나 백지수표를 건네받았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도 많았다. 2005년과 2006년에는 한 출판사와 독점계약서를 작성하고 문제집 한 질당 8000-9000원을 받기도 했다. 이런 문제점들이 2008년 한 일간지를 통해 지적되었고 이에 따라 국시원은 출판사들에 저작권 침해행위를 계속할 경우 형사고발 및 손해배상 청구할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불투명한 면이 많던 전사협은 2009년과 2010년 투명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특히 2010년에는 회비를 본과 4학년 1인당 3000원에서 5000원으로 올리는 대신 출판사로부터 제공받는 복원비를 각 학교에 배분하여 본과 4학년 모두에게 배분할 예정이었다. 취재과정에서 전사협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출내역이 10원단위까지 기록되어 있었고 출판사 등과의 만남에서도 전사협 측에서 모든 비용을 계산하는 등 투명성 재고를 위한 노력을 많이 했음을 볼 수 있었다. 2010년 전사협 16기 회장 강동훈씨는 “이러한 투명성 재고 노력으로 출판사와의 금전적인 문제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출판사는 ‘저작권 침해’,
전사협은 ‘업무방해’

현재 국가시험 복원에 관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은 두 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국시원과 출판사의 관계이다. 국시원이 지적재산권을 가지고 있는 국기고시 ‘필기시험’문제를 출판사가 임의로 출판하여 금전적인 이득을 취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SBS를 통해 보도 된 ‘실기시험’문제 복원에 관한 것이다. 이는 국시원에서 직접 문제제기를 한 것은 아니고 의대생 내부고발자에 의해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이 수사 중에 있다. 지난 1월 17일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가 전사협의 서버를 압수수색하였고 전사협 회장 및 부회장, 각 학교 대표들이 경찰 조사를 받았다.
국시원 김건상 원장은 1월 27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실기시험은 문제 해결 과정과 스킬을 평가하는 시험으로 시험 문제 복원 자체가 당락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라고 인정을 하면서도 시험문제 복원이 불법적인 행위이며 수사 결과에 따라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문제 공개만이 유일한 해법

이러한 국시원의 문제 제기는 모두 정당한 것일까. 사실 이 문제의 가장 이상적인 해법은 국시원이 문제를 공개하는 것이다. 국시원이 문제를 공개하면 출판사는 국시원에 정당하게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출판을 하면 되고 의대생들도 전사협을 꾸리고 문제 복원을 하는 등의 ‘부정행위’로 비치는 일들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전사협은 2010년 전국 모든 본과 4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의사국가고시 실기시험 및 필기시험의 문제점을 조사하여 국시원에 문제 제기를 하는 한 편 필기시험의 문항에 대해 공개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국시원은 이전의 입장과 같이 문제은행 출제방식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매년 문제를 공개하다 보면 결국 문제은행이 바닥날 것이라는 것.
그러나 의사국가시험의 본래 목적을 생각 해 보면 국시원의 이 같은 대답은 설득력이 없다. 의사국가시험은 국시원도 밝히고 있듯이 누군가를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이 아닌 개개인이 의사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평가하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만일 사전에 국시원의 모든 문제가 공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을 알고 있다고 판정되는 사람이라면 의사 자격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다른 시험들에 비춰보아도 국시원의 입장이 설득력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의사국가시험에 비해 훨씬 많은 인원이 치르는 운전면허시험의 경우에도 같은 문제은행 방식이지만 기출문제를 출판사에 팔고 있다. 문제은행방식은 아니지만 같은 국가시험인 수학능력시험, 사법고시, 행정고시 등은 시험 직후 바로 문제를 공개하고 있다. CPA, CFA 등의 시험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경우에도 우리와 같은 ‘문제은행’식으로 공개를 하지 않다가 2005년부터 공개하고 있다. 문제 공개가 부정사건을 억제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 비공개에 따른 다른 문제들도 많다. 문제와 정답을 공개하지 않으니 불합격자도 자신이 어떤 문제를 틀렸는지 알 수 없어 불합격에 수긍하기가 힘들다. 특히 CPX 시험의 경우 예시로 공개된 한 항목 이외에는 채점 기준마저 공개하지 않아 불합격자는 무엇 때문에 불합격을 했는지 알기 힘들고 수험생들도 시험 준비가 힘들다. 합격자의 경우도 틀린 문제에 대한 피드백이 이루어지지 않아 올바른 의료인 양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각 출판사, 올해도
기출 문제집 발간할 것

전사협 강동훈 회장은 “2010년 복원한 필기시험 및 실기시험 문제를 모두 폐기” 했다고 밝혔다. 또한 "출판사에도 문제를 넘기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계속 출판사에 문제를 넘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해 까지 운영해 오던 실기시험 복원 사이트에 대해서는 “사이트를 만든 배경은 정원이 40명인 학교와 150명인 학교 사이에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앞으로는 수험생들이 그러한 정보 불균형을 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사협 차원의 문제 복원은 막을 수 있겠지만 각 학교에서 동기들끼리 시험 정보를 공유하는 것 까지 막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대안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것은 없고 17기 전사협에서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각 출판사들은 고소가 진행 중인 것과 관계없이 올 해도 기출문제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전사협으로부터 문제를 제공받지는 못했지만 가채점기를 운영하던 한 인터넷 사이트로부터 문제를 입수한 것으로 보인다. 출판사들은 대부분 취재를 거부했으나 한 출판사의 관계자는 “현재 상황이 어떤지 우리도 잘 모른다. 하지만 예년보다 조금 늦게 나오겠지만 문제집이 출판되기는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민재 기자/순천향
<slownflow@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