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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아, 너의 삶을 들려줘 - 1

묘지명으로 유명한 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 라구요. 사람들은 20대를 일컬어 '젊음, 아 아름다운 청춘아!' 라고 찬사를 보냅니다. 하지만 의대라는 공간은 젊음을 질식시키기에 충분하지요. 잠시 고개를 돌려 다른 공간 속 젊음들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의대 밖, 다양한 젊음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 속에 청춘이라는 파란 싹이 다시 움트기를 기대하면서요. 

의대생, 한의대생을 만나다

의대생에겐 가깝고도 먼, 한의대생의 삶

‘한의대 선배고, 본4야’ 섭외를 부탁했던 친구에게서 몇 일 째 연락이 없던 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확정된 인터뷰이는 동국대학교 한의과 대학 본과4학년에 재학 중인 조현석 씨(25). 한의대생이면 왠지 한복이 어울리고 선비처럼 점잖을 거야, 싶었지만 인터뷰 당일 기자가 만난 조현석 씨는 말끔하고 부산한 대학생이었다. 초면의 어색함은 잠시, 커피와 핫초코를 홀짝이며 이내 스스럼없는 ‘썰’이 오고가기 시작했다. 의대생에겐 가깝고도 먼, 한의대생에 대하여.

- 한의대에 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보통 점수가 맞으면 의대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우선 한의학 자체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어요. 중학교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의학은 생물시간에 어느 정도 접할 수 있지만, 한의학은 고등교육과정에서 전혀 접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또 부모님이나 주위 친구들도 한의학이 저와 잘 맞을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얘기해주셨고. 여튼 입학하게 된 계기는 다양했어요.

- 한의대 교과 과정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예과 때 커리큘럼은 어떻게 되나요?
예1 때는 한의학 개론과 한문을 배우고, 예2 때부터 본초학, 약용식물학, 의학고문(醫學古文)을 배우고, 해부학, 조직학, 발생학, 생화학 같은 기초의학을 함께 배우게 됩니다. 교양은 예1 때만 들을 수 있구요.
- 기초의학을 다 배우는군요. 보통 의대 본과1학년에 속한 과정이랑 비슷하네요. 본과 과목들은 어떤가요.
본1 때는 한방 생리학과 본초학(심화), 황제내경 같은 원전을 배웁니다. 본2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임상과목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침의 원리와 사용법, 한약 처방을 구성하고 응용하는 법, 상한론과 장중경(한의학 교재) 등을 배우고, 본3에서는 내과(간, 신, 비, 폐, 신으로 나눠짐), 소아과, 부인과, 영상의학, 임상병리, 재활의학, 정신과 등 세부 임상과목 강의를 듣습니다. 영상의학은 의대 교수님이 직접 강의하십니다. 재활의학은 운동 손상을 입은 환자뿐만 아니라 뇌졸중 후 후유증을 앓는 환자에 대한 케어나 비만, 통증클리닉 등을 포함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본4 1학기에는 분당, 일산 동국대 병원에서 실습을 돌고 2학기부터 국시 준비를 하게 됩니다.

- 황제내경 같은 한의학 교과서는 주로 어떻게 구성되나요? 의대 교과서와는 많이 다를 것 같은데 감이 잘 안 잡히네요.
말씀하신 황제내경을 예로 들어볼게요. 황제내경은 지금부터 약 2 천 년 전 진한시대에 만들어졌고, 현존하는 의학문서 중 가장 오래된 중의학 이론저서입니다. 주 내용은 인체의 생리나 병리기전, 진단법 등 이구요. 원전의 본문도 보지만, 본문에 대한 해석이나 주석을 중심으로 배우게 됩니다. 굉장히 오래 전해져 내려온 만큼, 학파마다 해석방식이 다 다릅니다. 그 다양한 해석들의 타당성을 가리고, 이를 바탕으로 본문의 내용을 더 ‘발전’시키고 ‘새롭게 응용’ 할 수 있는 실력을 기르는 것이 한의학 공부의 요점입니다. 원문 자체를 그대로 일대일 대응시키는 것은 아니에요. 이것은 황제내경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원전에도 해당됩니다.

- 의대의 공부법과는 많이 다르군요. 수업 시간이나 시험횟수는 어떤가요.
우리학교는 중간, 기말 시험을 봅니다. 과목이 많다보니 시험을 하루에 두 세 개 씩 봐도 전체 시험기간이 일주일이 좀 넘어요. 너무 힘들죠. 또 평소에도 자잘한 퀴즈나 시험을 보니까 학기 중에는 굉장히 바쁩니다. 수업은 아침 9시에 시작해서 보통 6,7시 쯤 끝납니다. 심할 때는 8시에 끝날 때도 있어요. 중간 휴식텀은 점심 먹을 수 있는 한 시간 뿐이고요.

- 보통 학년이 올라갈수록 느슨해지지 않나요
글쎄요. 우리학교는 6년 중에서 예과 2학년과 본과3학년이 가장 힘들다고들 합니다. 예과2학년은 처음으로 기초를 배워서 그렇고, 오히려 본1, 본2는 좀 나은 편이죠. 하지만 본과 3학년은 일단 과목이 너무 많아서 공부하기가 버거워요. 아까 말씀드린 수업시간이 본3 수업시간입니다. 하루 수업량이 엄청나고, 수업이 늦게 끝나면 몸도 피곤하니까 혼자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본3과목들을 아래학년으로 내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 교과과정이 빡빡한데, 학부 내 동아리나 동문회 같은 활동은 잘 이뤄지고 있나요? 의학계열 학교의 단골문화(?)인 선후배관계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아, 동아리나 동문회, 향우회는 많이 활성화 되어 있어요. 특히 동아리는 모임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한 학번이 90명 정도 인데, 동아리가 28개 에요. 그래서 다들 기본적으로 2~3개 동아리를 하고 있습니다. 활동은 거의 방학에 몰려 있어서 공부에 크게 영향을 주진 않아요. 봉사, 공연, 운동, 사회문화, 학술 동아리가 있는데, 봉사동아리의 선후배관계가 제일 엄격합니다. 운동 동아리도 엄한 편이고요. 나머지 경우도 그런 관계가 중요시 되지만, 동아리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저는 공연동아리를 하는데, 웬만큼 친해지면 말 편하게 하기도 하고 짖궂게 장난도 치니까.
- 어쩌면 이제 본4이셔서 그렇게 느끼실지도...(웃음) 그나저나 이제 국시보시겠네요. 한의대의 국시합격률은 어느 정도 인지? 
모두 다 국시를 합격하는 건 아니어서, ‘졸업예정자’ 기준 합격률과 ‘전체응시자’를 기준 합격률이 다른데, 전자 기준으로 최근 3년간은 95% 정도입니다. 한의사고시가 시행된 이래로 합격률이 85%~100% 범위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 의사고시랑 비슷한 합격률이네요. 졸업 후 진로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크게 병원수련, 개인병원 부원장, 개원의의 세 종류로 나뉩니다. 병원수련은 말 그대로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전문의가 되는 과정입니다. 한의대 병원 수가 많지 않아 한의대 졸업생 모두가 하진 않고요, 주로 여자 분들이 많이 선택합니다. 대부분 개인병원의 부원장, 그러니까 페이닥터로 있게 됩니다. 원장 한의사에게서 임상 기술이나 병원 경영, 이외 한의사가 되기 위한 많은 요소들을 배우는데, 이 때 무보수로 ‘수련’을 받으시는 분들이 꽤 된다고 들었어요. 이외에도 바로 개인병원을 차리는 분도 있고요. 이 세 가지 말고도 공보의가 되기도 하고, 제약회사나 아주 다른 업종을 택하시는 분도 간혹 있습니다.

- 보통 기대하는 연봉 수준은 어느 정도 인가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변수가 굉장히 많아요. 수도권보다는 지방 쪽의 연봉이 더 높고, 개원의들 사이에서도 편차가 크다고 들었습니다. ‘밥은 먹고 살 정도’가 대푯값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 요즘은 크고 유명한 한의원도 많이 보이던데.
그렇죠. 아마 함소아 한의원이나, 자생 한방병원을 두고 하신 질문 같은데. 이들 병원 특징은 어느 한 분과로 특화되어 있다는 겁니다. 함소아는 소아과, 자생은 재활의학으로 유명하죠. 요즘은 정신과로 특화된 한의원도 많이 나오는 추세입니다. 정신과 상담과 한약 처방, 침구처방 등을 병행하는 치료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모든 과를 두루 진료하는 일반한의원이 더 많습니다. 특화된 병원은 아무래도 진료대상이 되는 환자 범주가 제한되는 위험요소가 있으니까요.

- 한의대 정규 과목을 모두 배우셨고 앞으로 1년 뒤에는 한의사가 되시는데, 현재 한의학에 대한 생각, 마음가짐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한의학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5년의 한의대 생활을 통해서 더 확고해진 믿음입니다. 해부나 생리 같은 기초의학과, 기초 한방의학을 함께 배울 때에도 한의학 자체에 대해 회의감을 가져본 적은 없습니다. 한의학은 정말 좋은 학문이고, 평생 해 볼 만 한 가치가 있는 학문입니다. 실제로 한의학적 치료법에 대한 연구결과, 임상결과가 합리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합리적이라는 말은, 그 치료법이 실제로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한의학 이론에도 부합한다는 의미입니다.

- 저도 어렸을 적에 한의원의 도움을 꽤 많이 받아서 한의학이 무언가 효능이 있는 의학의 한 분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요즘 들어 한의학 위기설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한의학이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많은 임상결과와 논문이 나오고 데이터베이스화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한의학적으로 유의미한 환자군 설정은 매우 어렵습니다. 환자 풀이 많을수록 좋지만, 현재 대학병원의 자금력 수준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입니다. 정부 지원이 말도 안되게 작아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습니다. 현재는 주로 일본(한약)이나 미국, 유럽(침구) 쪽의 자료들을 끌어쓰고 있어요. 한의학에 대해 가장 많이 나오는 말 중에 ‘한약은 효과가 없다, 한약은 미신이다’ 인데, 의료일원화가 되어 있는 일본은 의사의 80%이상이 한약을 쓰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회사로 쯔무라 제약이 있지요. EBM에 기초한 한의학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진지 5년,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된 결과가 많이 축적되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립니다. 한의학의 위기에는 의료법, 자본, 연구 인력의 문제 등이 얽혀있습니다. 또 의사들 비판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 예를 들어 어떤 비판인가요?
한의학도 보완하고, 수정해야 할 부분이 분명 있지만 근거가 부족한 비판을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약 먹으면 죽는다’, ‘한약은 간독성이 있다’고들 하는데, 이분들이 삼계탕이나 까스활명수를 드시고 그렇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스테로이드 논란도 있지요? 감초 스테로이드는 미네랄 코르티코이드입니다. 흔히 말하는 정도의 ‘독성’은 글루코 코르티코이드가 유발하는 것이지, 미네랄 코르티코이드는 그런 독성을 나타내지 않아요. 십전대보탕도 2년  전쯤에 장기 복용 시 문제가 없다는 논문결과가 나왔고요. 한약제조에는 해로운 약재도 분명 쓰이지만, 그런 약재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 전문가인 한의사가 있는 것입니다.

- 그런 비판에 대해서는 대응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의사는 의사나 약사에 비해 수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열악합니다. 대응한다 해도 진흙탕 싸움이 될 가능성이 크고요. 의료의 범위가 겹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한의학이 하기 힘든 부분을 의학으로 채우고, 의학이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을 한의학이 대신 하는 협력관계가 구축되어야 합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이성적인 대화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인터뷰가 두 시간을 넘어가네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한의대생이나 의대생이 안타까운 게, 항상 자기 권역 안에서만 놉니다. 나중에 아파서 오는 환자들은 내 동기가 아니라 주로 타과 사람들이겠죠. 날 필요로 하는 사람은 내 선배 후배 동기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다양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자기 전문지식만 알 뿐, 다른 분야의 전문지식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 의과대 재학 중이신 분들에게, 타과와 많이 교류하고 지금이라도 많은 경험과 느낌을 가져보라고 부탁드립니다.     

김정화 기자/한림
<eudaimonia89@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