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를수록 homogeneous(균질, 동일)해져 가는 우리들. 하지만 남다른 생각으로 자신의 끼와 재능을 펼치는 heterogeneous한 의대생들도 강의실에 존재합니다. 2010년, 의대생 신문이 6회에 걸쳐 빼어난(秀) 재능과 남다른 생각을 가진 그들을 지면에 소개합니다. 이름하여 수(秀)상한 의대생! 그들의 생각의 좌표를 함께 따라가 봅시다.
의대생, 꿈을 향해 떠나다
본과 2학년에 자퇴하고 서울대 미대에 입학한 김한샘씨
누구도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재미있고 보람된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어느새 부턴가 주입식 교육과 치열한 입시 경쟁에 익숙해지며, 꿈보다는 현실에 수긍하는 게 우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자신의 진정한 꿈을 찾아 나선다면, 그것도 멋진 일이지 않을까. 순천향대 의대를 다니다가, 2008년 자신의 꿈을 찾아 미술로 진로를 바꾼 김한샘 군을 만나보았다.
Q. 의대를 다니다가 미대로 진로를 바꾸셨는데 원래 미술 쪽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A. 그림은 그냥 어렸을 때부터 일상생활이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 의자를 설명해 주실 때도 “이건 의자야”하고 그림을 그려주셨거든요. 그래서 그림 그리기가 제게는 그냥 낙서하듯 생각됐었고, 그런 식으로 하니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어요. 다만 만화가 하고 싶다, 디자인을 하고 싶다하고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미술학원을 다녀보긴 했지만, 매일 똑같은 데생만 하는데 별 흥미를 못 느껴 그만 다니게 됐어요.
Q. 의대에 오기 전에는 미술 쪽으로 진로를 생각해보신 적은 없으셨나요?
A. 일단 이과체질이었어요. 암기과목을 싫어했죠. 미술과 음악을 좋아했는데, 이 과목들과 연관 지을 수 있는 분야라곤 건축밖에 없더군요. 실제로 수능을 보고 건축과에 지원하였고, 거기 갈 생각이었죠.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보니 의대에 가는 게 나중에 내 여가생활을 하는데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의사라는 게 안정적인 직업이니까요. 집안 분위기도 있었기에, 추가모집에 지원하여 의대에 가게 됐어요. 집에서는 물론 엄청 좋아하셨지만, 어떻게 보면 욕심을 부린 거였죠.
Q. 의대생활은 어떠셨나요?
A. 해부는 재미있었어요. 머릿속으로 공간을 그리는 게 좋더라구요. 하지만 성적이 그리 좋진 않았어요. 최소한의 것만 하면서 올라가니까 어떻게든 진급은 하지만, 임상에서는 버거웠죠.
음악 활동을 많이 했어요. 제가 일회성 여가를 좋아하지 않아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의대생활 중 거의 80%정도가 음악활동이었어요. 나중에 의대를 그만두겠다고 하니 친구들이, “왜 음대가 아니고 미대를 가냐”고 했을 정도였죠.
연주를 하고 협연을 하며 외부로도 많이 나갔어요. 다른 모임이나 커뮤니티 같은 것도 알고, 연주동영상도 올리고 작은 연주회 때 편곡해서 연주도 했어요. 그러면서 점점 더 음악이랑 깊어지고, 클래식아마추어들 음악을 녹음해주고 음반까지 만드는 스튜디오에서 그런 사람들이랑 친해졌어요. 미술에도 관심이 있었기에 음반케이스 디자인도 도와주고 했죠. 그때가 본과 2학년이었어요.
Q. 의대 생활에 회의가 많으셨나 봅니다.
A. 의대 생활이 나쁘지만은 않았어요. 비슷한 길을 가는 사람들과 있을 때 느끼는 편안함이랄까요? 그걸 의대에 들어와서 느꼈어요. 사람들하고도 많이 친해지고 편하니까 서로 상처도 덜 주게 되고 그런 점이 좋았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렇게 음악 활동을 할 바에는 제대로 하거나 아니면 아예 안하거나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대나 음대로 진학한 후배들을 보면서도 고민이 많이 되었어요. 본과 2학년 여름 때 만난 고등학교 후배가 디자인을 전공으로 택해서 대학교에 갔다는 거예요. 그 얘길 듣고 보니 “나 정도 그리면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요. 게다가 기타를 잘 치던 후배가 비실기 전형으로 시각디자인으로 갔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 때 갈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생기더라고요.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어요. 제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에 인턴이 한 분 있는데, 진짜 바쁜데도 주말에 시간을 내서 연주하러 오시더라구요. 심지에 정읍에 파견 나갔을 때도 시간 내서 오고 말이죠. 어떤 분은 의사를 천직으로 삼아서 연주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Q. 그러다 결국 미대로 진로를 바꾸셨군요.
A. 그때 내가 하고 싶은 게 뭔가 생각하다보니 중학교 때 한창 많이 들었던 노래에서 받았던 느낌처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 그냥 같이 공감해주고 감정을 전달해주고 싶었어요. 그런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다보니까 취미로는 안 되는 거예요.
2학년이 끝나고, 스튜디오에서 앨범 디자인을 도와주던 와중에 통보를 받았어요. 진작 가지 못한 게 아쉽다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의대를 다닌 것도 좋았던 것 같아요. 의대에서 배운 것도 많고 말이죠.
Q. 음악 활동도 많이 하셨는데, 굳이 미술로 가신 이유가 있나요?
A. 그쪽 세계를 너무 잘 알아서라고 할까요. 학벌도 많이 따지고 또 음악을 하려면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준비를 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많은 비용이 들어가죠. 무엇보다 음악은 음정, 박자가 정확해야 하니까 제 느낌을 실을 수가 없다는 게 저랑 안 맞았던 거 같았어요. 그런데 오히려 미술은 그게 아니더라고요.
또 저는 저의 음악을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저의 미술을 더 인정한다는 거에서 타협을 한 것도 있죠.
Q. 주위의 반응이 좋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A. 주위에서 음악 하시던 분들이 제가 가장 믿는 사람들이었는데, 그 분들이 오히려 반대를 하셨죠. 그냥 의사하라고, 왜 취미로 못하냐고 말이죠. 의대친구들은 성적 때문에 도피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죠.
아버지가 부전공으로 성악을 하셨고, 어머니도 피아노를 배우셨기에 부모님이 이해는 하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인정은 안하시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차라리 의사면허를 따고 하라고 하셨는데, 제 생각에는 지금 학생 신분에서 하지 않으면 못 할 것 같았어요. 왠지 그때 하면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치게 될 거 같았어요.
오케스트라 선배님 딱 한 분만 지금 아니면 할 기회가 없을 거라고, 지금 나가는 게 맞다고 하셨어요. 그 선배님도 선화예중을 나와 의대로 오셨었거든요.
Q. 미대에서의 생활은 어떠신가요.
A. 무슨 과를 가든 1학년 때가 제일 좋잖아요? 1학년에 입학했을 때는 꽃밭이었죠. 앞으로 갈 길에 대한 부담도 없고 하고 싶은 거 하면 되니까. 조그만 전시회도 열고 이것저것 낙서 같은 것도 하면서 정말 재미있게 보냈어요.
Q. 후회해 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A. 어렸을 때는 삶이 영화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뭔가를 하려면 이정도 쯤은 해야겠다는 생각? 그런데 의대에 들어가 지내면서 느낀 게 오히려 영화 같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아는 후배가 본과 2학년 때 사진이랑 미대 합격 후 사진을 보면서 “너 왜 이렇게 달라졌냐?”고 하더라고요. 아무것도 몰랐을 때의 얼굴이 없어졌다고요. 어떤 사람은 “거기 가면 삶이 좋을 거 같냐? 그쪽도 힘들고 밤 새우는 건 똑같을 텐데”라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런데 돈을 벌려고 간 것도 아니고 핑크빛 미래를 바래서 간 것도 아니기에 요만큼이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 후회하지 않고 간다고 생각했어요.
Q.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처음에 의대를 그만 둘 때는 부정적 입장이었어요. 왜 사람들은 안정을 찾으면서 성공에 연연해하면서 자기 꿈은 버려둔 채 살아갈까? 그런데 사람마다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가 있고 그게 다 다르듯이 정답은 없는 거 같아요. 정말 내가 가장 하고자 하는 게 뭐고 원하는 가치가 뭔지 한번 생각해보고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듯이 내가 어떤 걸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거 아닐까요? 어디로 가든 내가 가는 목표를 쫓아가는 게 옳지 않나 싶습니다.
염승돈 기자/인하
<youmsd@e-mednews.com>
김지은 기자/가톨릭
<jieunapple@ep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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