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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만 보고 달려간 세균학자 ‘닥터 노구치’, 그의 숨겨진 이야기

‘Impossible is nothing’
이것은 한 스포츠 용품회사의 유명한 광고어구이다. 이 광고의 어구처럼 정말로 불가능을 뛰어넘은 한 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가 있다. 바로 일본의 유명한 미생물학자인 노구찌 히데요라는 사람의 일대기를 담아낸 무츠 도시유키의 작품 ‘닥터 노구찌’이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의사들은 물론 세계적으로 많다. 하지만 닥터 노구찌가 더 눈에 띄는 이유는 그가 어렸을 때 왼손에 화상을 입어 평생 달고 다닌 조막손(손가락이 없어지거나 오그라져서 펴지 못하는 손)때문이다. 게다가 가정형편도 좋지 않아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을 뿐더러 매 끼니 해결조차 힘든 정도 였다. 공부도 못하고 가정환경도 좋지 않아서 매번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고 구박만 받던 노구찌는 공부를 잘하면 친구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돈이 없어 책을 살 수 없었지만 졸업생들이 버린 책들 조각을 모아서 자신의 책을 만드는 열정으로 열심히 공부를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노구찌는 학교 학생들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성금으로 손 수술을 받게 된다. 당시에는 선생님이 되려면 체육 수업을 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부이식이 불가능 했던 당시 의술의 한계로 수술은 실패로 돌아갔다. 노구찌는 교사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 절망에 빠지게 된다. 그렇지만 그때 노구찌는 자신의 손 수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당시의 의술에 대한 원망, 의술이 발달하기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자신이 앞장서서 의학을 바꿔놓겠다는 생각과 자신과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환자가 돈이 없더라도 꼭 치료해주고 싶다는 다짐을 하면서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의사의 길

당시 의사가 되려면 ‘제대’라는 곳에 입학하면 졸업 후 바로 의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재력이 어느 정도 있는 부유한 집안에서나 가능한 경우였고, 일반인의 경우 10년 정도 걸리는 전기와 후기 시험 모두를 통과해야 의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노구찌는 전기?후기 시험을 각각 1년만에 통과하여 의사가 되었다. 이제 어엿한 의사가 된 노구찌는 후에 개원을 하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순천당 의원(현재 순천당 대학 부속병원)에서 의학서 번역과 논문 제출과 같은 일을 했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였지만 주변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조막손 때문에 환자의 신뢰에 대한 문제가 생겨서 개원의가 되는데에는 문제가 될 거라는 소리를 듣고 충격에 빠지고 좌절하게 된다.
세균학에 대한 연구 시작,
끝없는 열정, 그리고 인정

좌절에 빠져 있던 노구찌는 어느날 외국 의학서에 당시 일본 기초의학계의 독보적인 존재였던 세균학자 키타사토 시바사부로를 접하게 되고, 세균학분야에는 자신의 손이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세균학쪽으로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키타사토 연구소의 조수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부터 닥터 노구찌의 세균학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다. 그는 일본을 넘어 더 넓은 미국에서 연구를 하게 된다. 그곳까지 이르는 동안 그는 일본에서는 제대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미국에서는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차별을 받고 무시를 당한다. 물론 처음에는 좌절을 하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마음을 잡고 연구에 몰두를 한다.
노구찌는 미국에서 미역사상 최고의 부자라 여겨지는 석유왕 존 록펠러가 세운 ‘록펠러 연구소’에서 연구원이 되어 연구를 하게 되었다. 그 때까지 그는 사독에 대해 연구를 했었는데, 그 당시에는 불치병이었던 ‘매독’에 대해서 연구를 하던 동료가 매독에 걸린 것을 보고 자신도 매독연구의 최전방에 서서 연구를 하기로 다짐한다. 많은 실패를 겪지만, 결국에는 매독의 원인균인 스피로헤타의 순수 배양에 성공을 해 매독의 원인균을 확실하게 하고 이에 대한 백신?치료약 개발이 용이해지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노구찌는 세계최초로 뇌 조직 내의 스피로헤타를 발견하게 된다. 이 발견으로 노구찌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되어 각종 유명 학회의 초청을 받게 되고, 그동안 무시만 해왔던 일본 의학회에서도 노구찌에게 일본에 와서 의학 발전에 힘써달라는 부탁도 받게 된다.

목숨을 바친 연구

당시 남미에는 황열병(고열 때문에 간장이 망가지고 황달이 나타나는 병. 심해지면 사망에 이르기도 함)이 번졌는데, 여러 의사들이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연구를 하러 남미로 떠났다. 하지만 이 의료진들마저 황열병에 걸려 죽게 되자 모두 이곳에서 연구하기를 꺼려했다. 그렇지만 노구찌는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에스파냐 현지에 가서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의 결과로 황열병의 원인도 알아내고 그에 대한 백신도 만들어 내어서 황열병은 완벽히 치료 가능한듯 했다. 그래서 그는 노벨상 후보에도 올랐는데, 하지만 그의 백신이 완벽하지 않음이 들어남과 동시에 그는 노벨상 후보에서도 탈락되었다. 그 후에도 ‘노구찌 백신’이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정되자, 노구찌는 처음부터 다시 백신연구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열정도 병을 이길 수 없었는지, 노구찌가 황열병이 심하게 번진 아프리카로 직접 가서 연구를 하는 도중에 자신이 황열병에 걸려 죽게된다.

노구찌 히데요의 양면성.
‘훌륭한 위인’vs‘반인륜적 인물’

평생 동안 의학발전을 위해서 위험하더라도 직접 발벗고 나서 연구를 해왔던 닥터 노구찌. 일본 내에서는 2004년 1000엔 지폐 발행 때 지폐에 그의 초상화가 들어갔을 정도로 그는 일본 내에서는 높게 평가 받는 위인 중 한 사람이다.
이 만화에서 노구찌는 가난과 장애를 딛고 의학발전에 힘쓴 훌륭한 위인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자국인인 일본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인 탓인지, 노구찌 히데요라는 인물의 양면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
실제로 노구찌는 평생동안 수많은 연구를 하였다. 하지만 현재 의학 발전으로 비춰 본 그의 업적은 단지 ‘스피로헤타 순수 배양’ 이것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잘못 연구된 결과로 여겨진다. 한 예를 들면, 광견병이나 황열병의 병원체는 당시 아직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었는데 노구치는 이들 질병도 마치 다른 세균감염에 의한 것처럼 “병원체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후 바이러스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노구치의 주장은 쓰레기통에 들어갔을 뿐 아니라, 그의 진실성과 양심까지도 의심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많은 병원체를 발견했다는 그의 주장은 지금 대부분 틀린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아직도 그의 이러한 거짓 연구들은 착오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고의로 날조된 것인지에 대해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후 과학계에서 전대미문의 파렴치한 사기꾼으로 평가받고 있고 그가 쓴 논문들은 제대로된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노구찌는 만화에서도 조금 비춰지지만, 거의 결혼까지 하려했던 연인을 자신의 미래를 위해 버리는 모습도 나오고 계속 자신을 뒷바라지 해주었던 사람들도 자신을 위해 배신하는 장면도 나온다.
무엇보다도 가장 충격적인 것은 노구찌의 매독실험 뒤에는 엄청난 사실이 감춰져 있다는 것이다. 바로 400명의 환자나 고아 정신병환자들에게 매독균 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일종의 ‘마루타’ 실험을 그는 매독치료를 위해 했던 것이다. 그래서 1000엔짜리 지폐에 그의 초상화가 들어갈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다.

비록 지금은 그리 높게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평생을 바쳐온 의학에 대한 그의 열정만은 우리 모두에게 본보기가 된다. 또 이 만화책이 총 9권이라는 그렇게 부담되지 않는 양이기에 모든 의대생들에게 추천해본다.

김영태 수습기자/원광
<funky@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