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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의 역사

76호(2010.8.30.)/의대의대생 2010. 9. 2. 20:41 Posted by mednews



“Tidal C-0-2가 34에서 22까지 떨어졌습니다. 심장 잡음이 있어요. 심장에 공기가 들어갔습니다!!”

“왼쪽가슴을 열어야해. 간호사, 메스!”

- 그레이 아나토미 中 -

그레이 아나토미, 하얀거탑, 외과의사 봉달희, 뉴하트 등 수많은 의학드라마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도구는 바로 메스이다. 메스(mess), 영어로는 스칼펠(scalpel). 우리가 자주 쓰는 메스라는 용어는 네덜란드어로, 서양의 문물을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을 통해서 받아들인 일본의 영향을 받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메스는 외과학의 발달과 항상 공존해왔다. 인류가 행한 최초의 외과행위는 두개절제술로, 근대에 행해졌던 것처럼 경련, 간질발작 등을 치료하는 수술의 목적이 아니라 주술과 관련된 행위였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이때 사용된 최초의 메스는 나무, 뼈, 사슴뿔, 조개, 돌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이들은 1백만년 전 부터 사용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2000년, 수메르의 함무라비 법전에 “의사가 청동 메스로 상처를 치료하여 환자가 나았을 경우, 또는 의사가 청동메스로 백내장을 치료하여 환자가 나았을 경우, 의사는 10시켈의 은을 받는다. (125조)” 와 같은 조항이 있는 것으로 보아, 4천년 전 고대 수메르 지역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메스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대 인도에서는 독자적이고 창조적인 외과의술이 발전하였으며, 이 중 깎여버린 코를 복원하는 조비술은 고도의 완성도를 보였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는 ‘무엇보다도 우선 손상을 입히지 않아야한다’고 하여 아주 긴급한 경우에만 외과술을 허용하였고, 이후 로마의 외과의사 갈레노스에 의하여 경험주의 의학이 득세하면서 체계적인 외과술의 발전이 저해된다. 여기에 더해 중세에는 외과의술을 야만행위로 규정한 기독교에 의해 외과술은 더욱더 더딘 발전을 보였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기에 외과의학의 기초가 되는 해부학과 생리학이 진보하고, 18세기엔 임상의학이 발전해, 외과학은 마침내 체계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후 1846년 마취술의 발견, 1867년 소독법의 발견으로 폭발적인 외과학의 혁명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에 따라 외과용 기구도 다양해졌다. 이 시대 외과의 치고 신형기구를 고안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고, 파리 세브르 거리에 위치한 르클레드 가게에선 밤낮으로 살균된 외과용 기구를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_“블레이드 1”or “블레이드 2”)

현재 사용되는 철제 메스는 대부분 이때 고안된 형태의 변형으로, 모양과 용도에 따라 고유번호가 매겨져있다. 이중 10번 메스는 가장 자주 쓰이는 형태로 중간크기의 절개나 중간크기의 조직 절단 시 사용되며, 11번 메스는 깁고 좁은 절개나 신경 혈관과 같은 구조물을 절단할 때 사용된다. 12번 메스는 신경 혈관과 같은 구조물 절단 시 사용되며, 15번 메스는 섬세한 절개 시 유용해 성형수술에 많이 쓰인다. 20번 메스는 10번과 유사한 모양이나 크기가 크며, 대부분의 외과수술시 처음 피부절개를 할 때 사용되는 메스가 이것이다.

이러한 철제 메스 이외에도 현대에는 레이저 메스, 전기메스와 초음파 메스가 고안되어 사용되고 있다. 1970년대에 발명, 1980년대에 실용화된 레이저 메스는 전기메스에 비해서 초점이 미세하기 때문에 정상세포를 상하게 하지 않고 지혈효과도 커서 뇌 외과수술에서 효과가 크다. 전기소작기로도 불리 우는 전기메스는 전류를 통해서 금속판을 가열하여 그 뾰족한 앞 끝으로 조직이나 장기를 절단하는 외과 기구로 출혈하기 쉬운 부위의 장기 수술에 유효하다. 초음파 메스는 엄밀한 의미에서 메스는 아니지만 조직만 선택적으로 태우기 때문에 치료 후 사진을 보면 마치 칼로 도려낸 것 같아 메스라는 단어를 붙인 것이다.

박민정 기자 / 성균관

<cindy29@e-mednews.com>

※ 참고문헌 : 클로드 달렌, 처음 만나는 외과학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