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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리수가 인하 발표 이후 3개월, 현장과 대화하다

지난 6 1,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에서는 산부인과의 자연분만 수가를 2년에 걸쳐 50% 인상키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같은 날, 건정심은 이와 더불어 7월부터 진단과 치료 계획 수립의 밑바탕이 되는 병리조직검사의 수가를 15% 인하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대한전공의협의회에 소속된 병리과 의사들은 6 8일 파업 찬반투표를 통해 파업을 결의하고, 총파업에 돌입하였다.

  

같은 달 11일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전격 파업 철회가 결정되고 결국 14일에 다시 업무에 복귀하게 되었지만, 그들의 복귀는 수가 문제의 해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건정심의 수가 인하 결정 이후, 세달 남짓한 시간이 흐른 지금 병리 수가 문제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실제 수탁검사기관을 운영하고 계시는 병리과 A 선생님의 병원 문을 두드렸다. 병리수가에 대한 건정심 조정 이후 평균 15% 정도 수가가 인하되었으며, C5911(검체 1개에서 3개까지의 생검 수가 코드)이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수가 인하에 대해 조심스럽게 묻자 선생님께서는 천천히 입을 여셨다.

 

C5911이라는 게 1개에서 3개까지 검체의 생검 의뢰 점수에요. 이 검사가 가장 기본이고 근간을 이루고 있어요. 진짜 병변에서 얻는 게 아닌, 통상적인 룰아웃을 위하여 얻는 검체는 보통 출혈 등의 위험이 있기에 환자에게서 4, 6개씩 얻지는 않아요. 따라서 C5911, 이게 우리한테는 가장 기본이고 자존심이 되는 사항이거든요.”

 

선생님께서는 잠시 말씀을 멈추시고, 책꽂이에서 서류 뭉치를 하나 가지고 오셨다. 서류의 첫 페이지에는 건정심에서 발표한 수가 조정안의 상세한 내역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여기를 보면요, 하반기 보험 수가를 건당 2000( 15%)씩 인하했어요. 이게 모이면 상당한 액수가 되거든요.”

 

보여주신 표의 맨 첫머리에는 C5911이 기재되어 있었다. 검사 당 이만원을 간신히 넘겼던 수가가, 조정 이후에는 만팔천원 수준으로 인하되어 있었다. C5911뿐만 아니라 다른 병리 수가 역시 전체적으로 인하되어, A4 용지 한 장을 인하된 수가 코드가 꽉 채우고 있었다. 명목상 15%라 해도 실제로 체감하는 수가 조정의 타격은 그것보다 더 심각할 수 있지 않을까. 기자의 질문에 A 선생님께서는 잠깐 숨을 고르신 후에, 차분하게 말씀을 이어가셨다.

 

병원마다 조금씩 틀릴 수는 있지만 우리 병원의 경우 C5911이 전체의 90%, 그러니까 수탁 의뢰가 들어오는 검사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요. 대학병원의 경우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그래서 대학병원에서는 이 C5911을 정상으로 돌려달라는 의견에 대해 그렇게 찬성하지는 않아요.

병리 수입은 다른 데와는 달라서, 비보험 항목이 있는 게 아니라 이게 그대로 매출이 되요. 또 그 매출이 그대로 노출이 되니까…… 실질적인 영향은 대학병원과 우리(수탁검사기관)가 다르고, 우리 사이에서도 조금 다를 순 있겠지만 보통 20%내지 30%정도 매출에 타격을 입는다고 보면 되요. 사실 갑자기 매출이 15%만 줄어든다고 해도 엄청난 액수 아니겠어요?”

 

선생님의 얼굴에서는 수가 조정에 대한 복잡한 심정이 점점 배어 나오고 있었다. 단순한 매출의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몸담고 있는 병리학 전반에 대한 걱정 같았다. 사실, 수가 문제가 불거진 것은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해마다 각 진료과별로 보험 수가 조정 문제가 잡음을 일으켜왔었는데, 왜 유독 이번 병리 수가 조정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인가. 그 이유에 대해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셨다.

 

그래도 매년 아주 조금씩 인상을 해주긴 했었는데 내린 것은 처음이에요. 왜 인상을 해주었냐면, 병리 수가가 애초에 너무 낮게 책정이 되어있었거든요. 학생들이니까 잘 모를 수도 있겠네요. 옛날에는 병리를 하는 사람들이 다 공부하는, 소위 학구적인 사람들이었어요. 병리라는 학문이 완전히 임상에 치우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기초도 아니잖아요. 공부하면서 임상을 접할 수 있으니까 학구적인 선생님들이 그런 데에서 매력을 많이 느꼈었나 봐요.

정부에서 처음 의료보험을 제정할 때 수가를 결정하기 위해 각 과마다 교수들을 불렀는데, 우리는 교수님들이 한 분도 가지 않으셨어요. 어떻게 병리를 하는 사람이 돈을 가지고 얘기하냐는 거였죠. 비즈니스 감각이 너무 부족했던 거죠. 그건 우리, 선배들의 잘못이죠. 그래도 너무 낮게 책정이 되었기에 조금씩이나마 올려줬었어요. 이렇게 내린 건 처음이고요.

도저히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병리에서 보고 진단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책임까지 지는 데……”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씀이 있으시냐는 질문에, 선생님께서는 숨가쁘게 말씀을 이어가셨다.

 

    건정심의 인하 결정 이전에도, 의료보험 재정에서 병리 수가가 차지하는 부분은 전체의 0.5%가 채 되지 않았다.

 

보험 수가를 가지고, 파이제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현재의 파이제 상황에서는, 내 것을 얻으려면 남의 것을 뺏어야 하니까. 지금의 보험 체제로는 환자도, 의사도 서로 이득을 보지 못하잖아요. 주변에 교수님들 보면 보험료로 몇 십만원씩 내는데, 보험료 재정은 부족하고. 정부에서 일하는 분들 중 똑똑하신 분들이 해결을 해야 하는데……

학회나 교수님들도 그렇고, 비상대책위원회도 그렇고 이제는 어디를 믿어야 할 지 모르겠어요. 같은 병리과라고 해도 전공의 하는 선생님들, 대학에 계신 분들, 개원해 있는 사람들의 입장이 각자 달라요. 심지어는 개원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서울이냐, 지방이냐 따라서 또 입장이 갈리거든요.

사실 이번 인터뷰도 할까 말까 많이 망설였어요. 이제는 흥미도 없고, 너무 허탈해요. 얘기를 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요. 이번 사태로 몇몇 병원에서 병리과 1년차들이 꽤 많이 관두었다고 들었어요. 자기들이 보기에도 선배들이 답답하고, 비전이 없어 보이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 수가 문제로 병리학계가 각성을 했다는 거에요. 일부 교수님들은 아직까지도 의식이 없으신 것 같지만, 많은 교수님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 같아요.

공부 자체는 정말 중요하고, 재미있는 과에요. 특히나 나처럼, 실제로 병원에서 환자를 만지는 게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정말 좋은 과거든요. 이제는 좀 비즈니스 감각도 있고, 정치나 경영에 대해 안목이 있는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많이 바꿔나갔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우리 늙은 사람들은 별로 희망이 없는 것 같아(웃음).”

 

병리과 개원의 역사는 짧다. 첫 개원 이후 현재까지 9년이라는 시간이 경과했으며, 아직까지 전국에 개원한 검사 기관이 몇 십 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수가 인하를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영세한 검사 기관을 위하여 C5911같은 기본적인 수가 점수는 일부 상향조정하고, 다른 항목들의 수가를 더 인하하자는 의견도 제시되었으나 현재까지는 제대로 된 타협점을 찾지 못한 상태이다.

현재는 모든 상황이 표류 중이며, 3개월 뒤에 다시 조정을 보는 것으로 합의가 되어 있는 상태이다. 해마다 불거지는 보험 수가 문제에서, 올해의 대상이 된 병리학계의 출혈이 어떻게 치유될 것인지는 아직도 전망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권의종 기자/가톨릭

<isnell@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