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면허가 없는 사람이 침과 뜸 같은 대체의료시술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한 현행 의료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결정이 나왔다.
지난 7월말, 헌재는 무면허 침사행위를 하다가 기소된 김모씨가 “의료법 27조가 환자의 치료수단 선택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신청한 위헌법률심판에서 재판관 4(합헌) 대 5(위헌)으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위헌결정이 나려면 재판관 6명 이상이 위헌결정을 내야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민의 건강을 위해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 제한을 두는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비록 합헌결정이 나긴 했지만 위헌결정을 낸 재판관이 더 많아 앞으로 논란이 예상된다.
◆ 헌재에 가기까지...
이번에 위헌심판을 신청한 김모씨는 구당 김남수 씨가 대표로 있는 비영리 봉사단체 ‘뜸사랑’의 부산ㆍ경남지부장으로, 약 1,000여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침과 뜸 같은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2008년에 기소되었다. 침과 뜸은 정식한의사만 시술할 수 있고 자원봉사자는 이 같은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의료법 27조를 위반한 혐의였다.
이에 대해 김모씨는 “모든 무면허 의료행위를 치료결과에 상관없이 일률ㆍ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부산지법에 냈고, 이를 부산지법이 받아들여 헌재로 제청결정이 넘어가면서 의료법에 대한 심판이 시작되었다.
침사와 구사(뜸사)를 뜻하는 침구사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면허가 있었으나, 1962년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폐지돼 그 이전에 침구사 면허를 취득한 소수를 제외하고는 법적으로 의료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면허 없이 침뜸을 놓는 침구인은 대략 3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 합헌결정배경
헌재가 합헌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국가에 의해 확인되고 검증되지 않은 의료행위는 국민보건에 위해를 가할 위험이 있어 이를 막기 위한 법적인 제재를 가할 수 밖에 없고, 비의료인의 의료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한 것은 매우 중대한 헌법적 법익”이라고 합헌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반면 위헌결정을 낸 5명중 4명의 재판관들 “침구와 같이 위험성, 부작용이 낮은 의료행위까지 의료인에게 독점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며 현행 의료법이 의료행위를 너무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문제시했다. 또 다른 1명은 “소비자의 의료행위 선택권을 침해한다.”며 위헌의견을 냈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이전에 있었던 헌재의 결정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총 5차례의 위헌법률심판이 있었는데, 5번 모두 재판관 9명 전원일치로 합헌결정을 내렸었다. 그래서 이번에 과반수인 5명이나 위헌결정을 내린 것은 헌재도 대체의학의 필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헌재관계자는 “대체의료에 대한 인식변화와 더불어 국민의 의료행위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폭넓게 인정해줘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고 풀이했다.
◆ 각계 반응
헌재의 결정이 발표된 날, '뜸사랑‘대표인 구당 김남수 선생은 “헌재가 사실상의 위헌결정을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환영하는 입장이다. 위헌정족수 6명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과반수인 5명이 위헌결정을 낸 것은 침과 뜸의 가치와 존재를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침뜸요법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하는 한편 유력 종합일간지 1면에 ‘(한의사의)침뜸 독점은 사실상 위헌’이라는 광고를 내고 여론몰이에 나섰다.
반면 의료 5단체(대한한의사협회,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간호협회)는 8월 11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불법의료척결을 위한 의료단체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들은 “헌재의 결정은 무자격자의 의료시술과 관련된 숱한 논쟁에 방점을 찍은 것”이라며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책무인 의료행위를 체계적인 교육과 실습, 국가로부터의 검증도 없이 해도 된다는 발상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위험천만한 주장”이라고 밝혔다. 특히 대한한의사협회는 대체의학계가 광고를 낸 바로 다음날 동일 종합일간지 1면에 ‘합헌결정은 당연하다’는 내용의 광고를 내 맞불을 놓았다.
우리나라 의료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대체의학을 열어주면 돌팔이 시술이 남발될 수 있는 만큼 의료법 27조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막을 최소한의 장치”라며 “위헌결정이 날 경우 대체의학은 물론, 문신 등 이른바 유사의료행위를 금지하는 근거도 없어져 혼란이 불보듯 뻔하다”며 합헌결정을 반겼다.
◆ 앞으로가 문제
이번 판결을 보면 대체의학을 바라보는 헌재의 시각이 점차 전향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향후 유사한 사건에서는 결정이 뒤바뀔 수도 있다는 때이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합헌의견을 낸 재판관도 “의료 위사행위 또는 보안대체의학에 대한 연구와 검증을 통해 의료행위에 포함시키거나 별도의 제도를 만들어 국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대체의학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지금의 논란을 잠재우고 의료계와 대체의학계의 분열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를 의료행위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대체의학계는 침구술이 위험성이 낮고 누구나 할 수 있기에 이를 양성화해서 대대적으로 보급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의료계는 침구술이 엄연한 의료행위이기에 국가가 인정하는 정규교육을 거쳐야만 시술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 대체의학을 국가가 인정한 의료인에게만 시술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 타당한가도 고려해야할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에 이르기 위해서는 의료단체와 대체의학계만의 노력으로는 역부족이다. 국가가 나서서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중재를 해서, 상호가 인정하고 만족해 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의료계와 대체의학계가 감정싸움으로 가는 것을 막고 환자들이 안전한 최상의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의료법 27조 :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무면허 의료행위가 불법이라는 것을 명문화하고 있으며 이번 헌재판결에 중점이 된 법조항이다.
염승돈 수습기자 / 인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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