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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이진석 교수님 인터뷰

어느 종합병원 응급실, 50세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환자가 의식이 없는 채로 실려 온다. 신경외과 전문의는 응급 뇌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모든 준비가 신속하게 진행된다. 수술을 위해 남은 것은 보호자의 수술 동의서 뿐. 하지만 가족들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수술하지 않으면 죽어요.” 의사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진다. 10여분이 흘렀을까. 수술 도구들이 응급실을 빠져나간다. 가족들은 서로 할 말을 잃는다. 비용 때문에 수술을 포기한 것이다.

 

낮은 보장성, 국민건강권의 위기

“병원에서 의사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일들이 경제적 문제에서 올 수 있습니다. 병원비 문제가 해결된다면 이런 ‘윤리적’ 문제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서울대학교 의료관리학 교실 이진석 교수는 지난 17일,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울산 지역 모임을 위한 간담회에 참석하여 개인이 내는 건강보험료를 조금씩 올려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자고 제안했다.

 


 

2008년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은 62.2%, 병원비가 총 100만원이 나오면 이 중 62만 2천원은 국민건강보험이 지불하고, 나머지 37만 8천원은 환자 본인이 직접 부담하게 되어 있다. 이는 OECD 국가 회원국 전체의 평균 보장성이 80%이고 중증 질환의 경우 90%인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보장성이 낮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들은 중증 질환에 걸렸을 경우 병원비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진보개혁 세력은 지난 10년간 국가 재정을 늘려 보장성을 강화하자고 주장해 왔는데, 정부에서는 재정이 부족하다며 외면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만큼 시급합니다. 2008년에는 보장성이 62%였지만, 2010년에는 50대 후반으로 내려올 것이고 3~4년 뒤면 50% 중반대로 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병원의 영리법인화, 민간의료보험 확대 정책 등은 국민건강보험의 존재 여부 자체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을 강화하여 국민의 건강권을 지킬 획기적인 방법은 없는 것일까?

 

1만 1천원이 기적을 만든다

“2010년 기준으로 국민들이 보험료를 1만1천원만 더 내면 국민으로부터 6.2조원,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6.3조원이 확보되어 입원 진료비 기준 90% 이상으로 보장성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선택진료비, 상급 병실료, MRI, 초음파, 노인틀니 등 환자 부담을 늘리는 비보험 진료를 비롯하여 환자간병까지도 모두 국민건강보험으로 지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입원비와 외래비를 합쳐서도 본인 부담액이 연간 100만원을 넘지 않게 됩니다.” 1만 1천원은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OECD 평균 수준으로 향상시키는데 소요되는 재정 규모를 산출하여 법에서 규정한 국민, 기업, 정부의 부담률을 계산해 얻어낸 값이다. 현재는 정부의 재정 부담률이 20%로 정해져 있지만, 30%까지 확대될 경우 국민이 내야하는 추가 부담분은 더욱 작아지게 된다.


 

혹시 보험료 인상의 부담이 국민들에게 크지는 않을까? 이진석 교수는 1인당 매월 12만원씩 내는 민간의료보험료의 일부만 돌려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저희 운동을 접한 분들의 반응이 좋은 이유는, 국민들의 민간보험료 부담이 크기 때문이죠. 고소득층의 경우에도 소득이 많을수록 민간보험료의 부담이 크게 때문에 건강보험료를 더 내는 것이 훨씬 이득입니다.” 만약 가입자들이 민간의료보험에 추가로 6.2조원을 더 납부하면 어떻게 될까? 민간의료보험에서 가입자들이 돌려받는 급여는 4.7조원 수준에 불과하다. 수익비로 보면 약 0.75이다. 반면에 국민건강보험에서는 6.2조원을 내고 12.0조원을 돌려받기에 가입자들이 얻는 보험료 대비 급여 몫은 평균 1.9배이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보수언론은 다양한 현실적 문제를 제기하며 공격하고 있다. 이런 비판들에 대해 그가 내놓은 답은 명쾌했다.

Q. 건강보험 보장성이 확대되면 불필요한 의료 이용량이 증가하지 않을까?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강화되어서,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던 ‘비급여’ 항목이 대거 건강보험 적용 항목으로 들어오면, 그 때부터는 사회적 관리를 받기 시작합니다.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서비스를 환자에게 제공하기 위해서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게 되는 것이죠. 보장성이 강화되면, 불필요한 의료 남용이 오히려 줄어들게 됩니다.”

Q. 저소득층과 영세 중소기업은 보험료 인상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을까?

“1만 1천원은 평균치입니다. 절대빈곤층인 최하위 5%는 1인당 3천원 정도를 더 내게 됩니다. 물론 그것도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절대빈곤층에는 건강보험료를 면제하고, 하위 5~15%에 해당하는 상대빈곤층에는 건강보험료 대출 프로그램을 시행할 계획입니다. 영세 중소기업에 대해서도 사용자가 부담하는 보험료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할 것입니다.”

 

무상의료의 꿈, 풀뿌리 운동으로

“경제적 장벽 때문에 의료이용을 못하는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무상의료’의 실제 개념입니다. 국민들은 과거 민주노동당이 제안했던 무상의료에 공감은 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에는 의문을 제기했죠.” 하지만 과거의 무상의료에 비해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이를 실현할 구체적 실현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이 이해하고 참여하기가 쉽다는 것이 장점이다.

“저희는 이 운동이 단체 중심, 정책 전문가 중심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주체로 나서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이 이 사항을 생활의제로 받아들이면서 ‘민간의료보험료 얼마 내는 것 보다 건강보험료 얼마 내는게 훨씬 이득이더라.’ 이렇게 이야기가 되면서 공감대가 형성되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는 현재 시민들에게 알리고 지역 모임을 만드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나가고 있다. 이미 서초․강남․송파에서 처음으로 지역 모임을 만들기로 결정이 된 상태다. “서초․강남․송파에서 첫 발을 뗀 것이 아이러니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쪽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보험료처럼 부자들이 조금 더 내고 가난한 사람들이 좀 더 적게 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수용성이 상당히 높다고 합니다. 2010년판 노블리스 오블리제 운동이 되지 않을까 기대도 해봅니다. (웃음)” 이 날 울산 지역을 비롯하여 16일에는 제주, 17일에서 강원에서 지역 준비 모임 형성을 위한 간담회가 열려 지역 시민들의 열띤 호응을 얻었다.

 

의사와 국민이 함께 행복한 의료 공간

“현재와 같은 의료제도 하에서는 의사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국민의 의학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환자가 많이 아파야 의사가 돈을 벌고, 환자에게 좀 더 많은 검사와 시술을 해야 의사가 돈을 버는 구조이지요. 이런 구조에서는 의사가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간에 의사와 국민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게 됩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가 권유하는 검사와 시술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의사와 병원의 수익을 위해 나에게 권유하는 것인지 계속 의심을 하게 되지요. 이런 이해관계의 충돌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주치의 제도와 같은 의료전달체계의 확립도 필요하고, 건강보험재정 확충을 통한 보장성 강화도 필요합니다. 특히, 건강보험재정이 확충되어야 적정 수가를 보장하는 것도 가능하고, 의사들이 과잉진료와 비급여 진료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정상적인 의료기관 운영이 가능합니다. 이런 여건들이 충족되어야 의사와 환자 관계도 정상적으로 회복될 수 있을 겁니다.”

의사와 국민이 함께 행복한 의료 공간, 그가 꿈꾸는 세상이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으로 이미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 관심이 있거나 참여를 원하는 시민들은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홈페이지 www.healthhanaro.net 를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전진한 기자 / 대구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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