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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이트의 개념부터 쌍벌제 논란까지


의료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제약업계로부터 리베이트를 받는다는 사실. 그리고 최근, 이와 관련하여 리베이트 쌍벌제가 국회에서 의결되며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리베이트는 무엇인가, 그리고 의료계 리베이트는 무엇이 문제인가, 하나씩 살펴보자.

 

색다른 마케팅 기법, 리베이트

 

요즘은 어떤 물건이라도 제 값을 주고 사면 바보가 되는 시대다. 예를 들어 정가가 10000원인 물건을 구매한다고 생각해 보자. 3000원을 ‘할인’ 받아 7000원에 구매할 수도 있고, 아니면 3000원을 포인트나 상품권 등의 ‘바우처’로 받을 수도 있다. 혹은 10000원을 내고 1000원 어치의 상품을 ‘덤’으로 더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도 있다. 10000원을 내고 물건을 구매한 뒤, 추가적인 서류 작성 등을 통해 3000원을 돌려받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조금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이 방법, 이것이 '리베이트(Rebate)'다.

왜 이런 방법이 존재하는 것일까. 정가가 10000원인 물건을 구매하는 두 가지 선택항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첫 번째는 그 자리에서 3000원을 할인 받아 7000원에 구매하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10000원에 구매한 후 추가적인 서류 작성 등을 통해 5000원을 리베이트 받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더 낮은 가격에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두 번째 선택항을 선호할 것이다. 하지만 구매 후에 실제로 추가적인 서류 작성 등을 하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50%가 5000원을 돌려받는다 해도 판매자는 사실상 2500원을 할인해 준 것이라 첫 번째 선택항 보다 이득인데, 미국의 경우 전체 소비자의 1/3 정도만이 리베이트를 받는다고 한다. 즉, 리베이트는 소비자에게도 판매자에게도 좋은 마케팅 기법이다.

또한 리베이트는 할인이나 바우처, 덤 등과 달리 고객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리베이트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고객들의 나이, 거주지 등을 파악할 수 있기에, 이 또한 판매자 입장에서는 하나의 장점이 된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리베이트가 매우 흔하게 사용되는 마케팅 기법이다.

 


왜 의료계의 리베이트는 문제가 되는가

 

리베이트는 물품 판매는 물론 해상/육상 운송업, 보험업 등의 여러 서비스 분야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 외에도 미국 연방정부에 내는 세금의 일부를 환급받는 ‘부시 리베이트’, 초중고 학생이 있는 가정이 교육 기기인 아이패드를 구매 시 일부 금액을 돌려받는 호주의 ‘아이패드 리베이트’ 등도 있다.

하지만 의료계의 리베이트는 구조적으로 큰 특징이 있다. 의료계에서 소비자인 ‘환자’는 판매자인 ‘제약회사’로부터 약을 구매하지만, 그 약의 선택은 의사의 처방에 의한 것이다. 그렇기에 제약회사의 입장에서는 리베이트의 방향이 실제 소비자인 환자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소비를 지시하는 의사에게로 가는 것이다.

아무리 감시체계를 많이 만들어 이를 금지하더라도, 제약회사가 약을 많이 팔기 위해서는 의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구조는 ‘의료’라는 직업이 갖는 전문성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국 의료계에서 리베이트가 특히 심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는 정부, 의료업계, 제약업계의 암묵적 합의 하에 약가를 비정상적으로 높게 책정한 것이다. 이는 건강보험 제도를 국민의 반발 없이 조기에 정착시키기 위하여 ‘저보험료-저수가-저급여’라는 의사에게 불리한 체제가 구축된 것과 관련이 있다. 즉, 의사들은 낮은 수가를 받으며 일을 하지만, 제약회사가 비싸게 판 약값의 일부를 리베이트로 받는 것이다. 이 ‘3저’ 모순은 지난 몇 십년간 지속되었고, 이러한 리베이트 관행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있다.

다른 이유로는 약 개발 보다 카피약 판매에 의존하는 국내 제약업계의 행태가 있다. 의사의 입장에서는 가장 오래 사용되어 왔으며 연구도 많이 된 오리지날약을 처방하는 것이,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가격이 부담스럽더라도,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처방약은 대중매체를 통한 광고도 불가능하기에, 제약회사는 리베이트를 통해 카피약의 시장 진출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국내 제약회사는 신약 개발 없이 카피약 만으로도 유지가 되며, 의사는 새로운 약 시도에 대해 보상을 받는 것이다. 실제로, 의과대학에서는 약효가 비슷한 여러 제약회사의 카피약 중 어떠한 것을 써야하는가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는다.

 

리베이트의 남용, 그리고 리베이트 쌍벌제의 도입

 

2008년 8월 말,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익명으로 전달된 편지 한 통이 있었다. 제약회사의 직원으로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다고 밝힌 그는 의사들의 리베이트 남용을 상세히 설명했다.

“전공의들의 경우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인 리베이트로 현금과 기업카드를 드립니다. (중략) 회식의 경우 저희가 기업카드를 주죠. 한도를 말씀 드리지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물론 허다하죠. 심지어는 두 배까지 쓰기도 합니다. 이러면 당연히 제가 채워놓는 거죠. 한 달 월급이 그대로 선생님들이 사용한 카드대금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의국에 음료수 간식은 매주 채워야 하구요. 또한 외국의 전공의 선생님들은 점심 저녁을 식당 한 곳에 달아놓고 배달시켜 먹습니다. 매일 점심저녁을 먹고 장부에 기입을 하죠. 그러면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장부 결제는 당연히 저희 제약회사 영업사원의 몫입니다.

위에 말씀 드린 회식, 간식, 식사장부 결재는 정기상납과는 별도로 해드려야 합니다. 실행되지 않을 시는 바로 다음 주부터 약이 환자에게 안 들어갑니다. 저도 살아남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어 드리죠.”

실제로 이러한 비용들이 약값의 20%를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올 정도로, 제약회사는 리베이트에 의한 피해가 적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영희 국회의원은 지난 2월 4일 리베이트의 수수자와 제공자 쌍방을 처벌하는 ‘리베이트 쌍벌제’, 신고자에게 큰 보상금을 주는 내부 포상금제 등이 포함된 내용을 발의했고, 4월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최종 의결되었다. 리베이트 쌍벌제의 시행은 올해 11월 28일 부터다.

 

 

리베이트 쌍벌제의 내용을 보면 수수자에 대한 자격 정지와 처벌이 대폭 강화되어 있다. 기존에는 리베이트가 적발 되더라도 제약회사만이 피해를 입었다면, 이제는 제공받은 의사 또한 처벌을 받기에 의사도 쉽게 리베이트를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분노하는 의사들, 하지만...

 

의사들의 분노는 적지 않았다. 동아제약 등 리베이트 쌍벌제를 적극 추진한 5개 제약회사를 ‘5적’이라 칭하며 이들의 약을 처방하지 않겠다는 말도 나왔고, 파업을 시도하자는 의견도 있다. 기본적으로 의료계 리베이트는 ‘저수가’라는 한국의 의료현실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고, 이는 정부 또한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보상 차원에서 묵인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저수가 문제는 언급도 하지 않은 채, 갑자기 리베이트 문제만 지적하며 의사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이 상황에, 의사들은 분개하는 것이다.

또한 위의 편지에 대해서도, 한 제약회사 영업사원은 직접 의사들의 입장을 옹호하기도 했다. “레지던트 2~3년차 선생들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아십니까. 수술 방에 틀어박혀 햇빛도 못보고 월급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기혼자라면 도저히 생활이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며 그 선생들이 하루에 살려내는 환자들을 생각하면 한 달에 몇 백 만원을 받아도 모자랍니다. (중략) 그렇다고 해서 의사 선생님들이 아무 약이나 쓰는 게 아니에요. 영업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돈부터 요구하는 선생님은 1% 미만입니다. 제가 500여명의 선생님들과 만나 영업을 했지만 그런 선생은 없었어요.”

그러나 이런 분노 속에서도, 리베이트를 찬성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다’는 것이 의료계의 중론이다. 기본적으로 불법적인 일을 찬성하는 것이기에 국민들에게 의사의 이미지만 먹칠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카피약 대신 오리지날약 처방이 급증하는 것은 오히려 그동안 리베이트의 영향이 컸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될 뿐이며, 의사의 파업은 항상 득보다 실이 많은 결과였다.

인제대학교의 이기효 보건대학장은 “차라리 이번 계기를 통해 자정선언에 나서고 수가 문제 등을 치밀하게 거론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며, 리베이트를 포기하는 대신 그 탄생 배경이었던 비정상적인 수가를 바로잡자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6월 울산시 의사회의 조사에 따르면 52.8%의 의사가 수가만 정상화 된다면 리베이트가 필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의사들의 뜨거운 논의 속에서,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은 3달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정세용 기자/연세

<avantgarde91@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