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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가족’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죽음

 삼성전자가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로 소니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전자업계에 등극했다. 반도체 신화로 대변되는 삼성은 우리 경제의 상징이다. 매년 대한민국의 구직자들은 가장 입사하고 싶어 하는 기업으로 삼성전자를 꼽는다.
 그런데 최근, 세계 최대의 기관투자가들이 삼성 반도체 공장의 작업 환경을 문제 삼으며 노동자들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유엔 글로벌 콤팩트 사무총장은 이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면 국제적 신뢰를 잃음과 동시에 안정적인 투자를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선 3월에는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삼성 유럽본사 건물에 모여 직업병 유발물질을 폐기하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삼성 반도체 공장 안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삼성 반도체, 죽음의 공장

 박지연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했다. 일을 시작한지 3년이 채 안 된 어느 날 그녀는 갑자기 호흡곤란, 어지럼증 등의 증세를 느껴 병원을 찾았다. 급성골수성백혈병이었다. 가족들은 어떻게 지연 씨가 그렇게 큰 병에 걸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삼성에 입사해서 효도할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했던 그녀는, 결국 지난 3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나이 겨우 스물 셋이었다.
 그런데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사람 중 백혈병으로 사망하거나 투병 중인 사람은 그녀 혼자만이 아니었다. 현재까지 반도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 지킴이 ‘반올림’이 확인한 백혈병 의심 환자는 30명이다. 기타 질환을 합하면 47명, 그 중 13명이 세상을 떠났다. 삼성은 이 중 단 한 명의 산업재해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역시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은 황유미 씨 가족들은 삼성에 산업재해 처리를 부탁했다. 하지만 회사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큰 회사를 상대로 해서 이길 수 있으면 이겨보세요.” 회사에서는 대신에 치료비를 대줄테니 사직서를 쓰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사직서를 썼지만, 그 약속마저 지켜지지 않았다. 그녀는 이듬 해 봄에 세상을 떠났다.

불공정한 역학조사와 산재 신청 불승인

 황유미 씨 사건을 계기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발족되었다. 이들과 시민단체의 요구에 따라 산업안전보건공단은 2007년부터 두 차례 역학조사를 실시하였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는 피해 당사자와 추천 전문가의 참여가 제한되었고, 주로 회사 측이 제공한 자료가 이용되었다. 결국 공단은 백혈병과 반도체 공정 사이의 관련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사 결과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회사 측의 영업 비밀을 보장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삼성전자측은 이 역학조사 결과를 내세우며 일련의 사건에 대하여 ‘개인 질병일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황유미 씨 유족 등 반도체 노동자 7명이 2009년에 근로복지공단에 낸 산재 신청도 이 역학조사를 근거로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새로운 증거들, 그리고 행정 소송

 이런 상황에서 지난 해 9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이 허용치 이상으로 검출됐다는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의 역학 조사가 나왔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조사 결과를 정면으로 뒤엎는 것이었다. 또 최근 국내 모 일간지는 삼성반도체 내부용 환경수첩을 입수해, 회사 쪽에서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온 트리클로로에틸린(TCE)을 비롯한 6가지 발암성 물질과 40여종의 자극성 위험물질이 사용되어 온 사실을 보도하였다. 삼성 측은 화학물질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유출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어 작업자에게 노출되지 않는다고 해명하였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전직 엔지니어들은 노동자들이 모르는 사이에 인체에 해로운 화학가스 누출사고가 빈번했고, 생산량 경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일한 적도 많았다고 증언했다.
 지난 1월, 이러한 자료들을 근거로 숨진 노동자 3명의 유족과 투병 중인 노동자 3명은 산재 불승인 처분에 대하여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 산업전문의는 “가족 병력이 없고 건강하던 젊은이들이 암에 걸렸는데 그가 일하던 회사에서 이렇게 여러 가지 발암물질을 사용하고 있는 게 확인됐다면 실제 노출된 양과 관계없이 업무상 질병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소송은 현재 진행 중이다.

경제는 발전하고, 노동자는 죽어간다

 지난달 24일, 이건희 회장이 경영에 복귀했다. 이건희 회장의 사면 이유는 ‘동계올림픽을 유치하여 국익을 증진하라’는 것이었다. 노동자와 서민들 가슴에 비수를 꽂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 속에서도 이들은 경제가 발전하면 노동자의 삶도 보장된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이 회장의 복귀 후 첫 지시는 반도체 공장을 증설하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내년까지 반도체 부문에 총 19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그러나 여기에 반도체 노동자의 산재문제나 예방에 대한 투자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자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

 노동자는 우리 자신이고, 가족이다. 의료 민영화가 진행된다면 마찬가지로 자본 앞에 작은 노동자의 처지에 놓이게 될 우리 의대생들에게도 이것이 남의 문제일 수만은 없다. 우리 언론이 이번 사건에 대하여 침묵으로 일관하는 동안, 세계 여러 나라의 시민·환경·사회단체들은 이미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죽음을 알리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반올림에서 활동하는 정애정 씨는 “이제 우리 국민들도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문제에 목소리를 함께 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진한 수습기자/대구가톨릭
<redpill@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