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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의 질 보장 VS 개원의 목 조르기

10여년 째 진통을 겪는 차등수가제, 보건복지부 개정안에 개원가 ‘시큰둥’

 ‘성실해’씨는 힘든 의대 생활과 수련의 생활, 군의관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작은 의원을 개업했다. 환자를 위한 좋은 의사가 되겠다는 신념으로 진료에 임하자 병원에 대한 소문이 인근 동네에 까지 퍼져 성 선생님의 진료를 받고 싶단 환자들이 구름 같이 몰려들었다. 거기에 독감까지 유행하면서 첫 달 개업에 꽤 많은 환자를 본 성실해씨는 월 말에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심사된 금액을 받았다. 그러나 생각한 금액보다 적은 금액을 보곤 당황한 ‘성실해’씨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공단에 물었다. 공단에선 ‘75명을 넘어서 환자를 보면 본 환자의 수에 따라 수가가 달라집니다’ 라고 대답했다. ‘성실해’씨는 말한다. “환자들이 절 보고 싶어서 오는데 환자를 많이 볼수록 돈을 깎다니요.”
 ‘성실해’씨를 당황하게 했던 차등수가제란 제도는 의사ㆍ약사 1인당 적정 진료건수나 진찰횟수 및 조제건수 혹은 처방전 매수를 산출하여 이를 초과하는 경우 요양급여비용, 진찰료, 혹은 조제료 등을 차등하여 지급하는 제도이다. 현행 법률의 경우 75명 이하는 100% 인정, 75명부터 100명까지는 본래 금액의 90%를, 150명까지는 75%를, 그 이상일 경우 50%를 인정하고 있다. 



 이 제도는 2001년부터 시행된 의약분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의약분업을 시작하면서 각 의원과 약국 당 환자수와 조제건수가 증가하였는데, 진찰료와 조제료의 경우 의사 및 약사 1인당 진료환자 수 및 조제건수의 제한 없이 같은 수가를 적용한다. 그 결과 한 명의 의사 혹은 약사가 과도하게 많은 환자를 볼 수가 있어 진료의 질을 보장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제기 되었다. 그러므로 적정한 급여의 지급을 통해 적절한 진료가 행해지도록 제도를 만든 것이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이루고자 한 것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적절한 진료를 통하여 서비스의 질과 환자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다. 한국의 ‘5분 진료’ 형태를 고치고 선진국과 같은 진료의 질을 이루자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다. 둘째, 적절한 진료를 통한 적정한 급여의 제공으로 건강 보험 재정의 절감을 노리는 것이다.
 그러나 차등 수가제의 시행 이후, 의사들은 정부가 의료 보험 적자를 메꾸기 위해 점점 더 힘들어지는 의사들의 목을 조르는 행위라며 심하게 반발하고 있다. 의사들이 지적하는 차등수가제의 문제점으론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첫째, 과에 따라 진단하는 질환의 차이나, 각 질환이 가진 특성을 무시한 제도라는 의견이다.  예를 들어 감기의 경우, 건수 당 진료비가 낮은 데에다 환자를 보는 데 많은 시간이 드는 질환이 아니다. 그러면서 일차 진료에서 제일 흔하게 볼 수 있는 질환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우 같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보는 편이 의료의 질이나 진료의 효율성 면에서 봤을 때 더 이득이다. 이런 상황에 무슨 관점에서 75명이라는 숫자가 진료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정해졌는지 많은 의사들이 묻는다.
 또한 특정 질환의 경우 계절적이나 특정 기간에 유행하는 경우도 있다. 환절기와 한 여름에 내원하는 감기 환자의 수가 차이가 나는 데 이러한 특성을 다 무시하고 항상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둘째, 과연 어떠한 기준으로 진료의 질을 평가 할 수 있는가 이다. 앞에서 언급한 감기 같은 경우 의사가 짧은 시간에 환자를 본다고 해서, 진료의 질이 하락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진료의 질이나 환자의 만족도는 시간과 같은 객관적 지표가 아닌, 주관적인 기준이다. 5분간의 정성된 진료가 30분간의 지루한 진료보다 질이 좋다고 평가할 수가 없다. 
 셋째, 환자의 선택권을 무시한 제도라는 의견이다. 병원이 있으면 그 중에 선호도가 좋아서 환자가 많이 몰리는 병원이 당연히 있기 마련이다. 환자들은 어떤 병원이 75명의 환자를 봤는지 알아보지 않는다. 대신 잘 낫는 의원, 친절한 의원을 찾아간다. 의사의 입장에서는 아프다며 자기를 찾아온 환자를 급여가 깎인다고 하여 되돌려 보낼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의사들은 선호도가 높은 병원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호소한다. 또한 돈을 적게 받으니 76번째 환자는 75번째 환자보다 적은 노력을 들여서 진료를 하거나, 75번째 환자를 5분간 봤으니 151번째 환자는 2분 30초 동안 보는 식으로 환자가 받는 진료의 질을 정할 수도 없다. 
 넷째, 1차 의료에서의 진료의 질이 하락된 점이다. 실제로 재정적인 면에서 많은 타격을 보자 경영이 어려워진 병원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비급여 부분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정작 국민들에게 필요한 1차 진료에 소홀할 수 있어 진료의 질을 보장할 수 없고 1차, 2차, 3차로 이어지는 의료체계 전달 시스템의 근본이 무너진다는 지적이다. 2010년 1월부터 4월까지 청구현황을 전년도와 비교 시 의원급은 2조 1914억원에서 2조 3259억원으로 6.13% 증가 했으나, 종합병원의 경우 2조 9082억원에서 3조 3589억원으로 15.50%가 증가했다. 
 다섯째, 종합병원이 삭감 대상에서 제외된 점이다. 같은 수의 환자를 보면서 의원급 기관에만 삭감을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차등수가제의 시행으로 보험이 적용 되는 질환을 주로 다루는 이비인후과, 내과, 소아과 등이 큰 타격을 입었다. 개원의 들은 ‘한명이 환자를 많이 보느니, 의사를 더 고용해서 75명 이하로 환자수를 나누는 게 인건비를 제외하더라도 더 남는다’며, ‘많이 볼수록 적자가 나는데 이러한 저수가에서 환자를 많이 보지 않으면 어떻게 병원 경영을 하느냐’며 하소연 한다.
 이에 따라 많은 의사들은 보건복지부에 75명인 기준을 90명으로 완화할 것, 6시 이후 야간 진료에 대해선 수가를 100% 인정해 줄 것 등을 건의해 왔다. 많은 협의를 거쳐 지난 5월 10일,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75명 기준은 그대로 적용하되, 올 7월부터 야간진료 시 차등수가 적용을 제외하기로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야간까지 영업을 하는 의원과 약국이 늘어나면서 국민들의 의료 접근성과 1차 의료기관의 경영 수지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의사들은 반쪽자리 개정안이라며 환자수와 삭감율 기준을 완화해 줄 것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의약분업이 시행된 지 10년이 되가는 올해에도 차등수가제는 이렇게 두 집단 간에 해결되지 않은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많은 개업의들은 차등수가제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개원가 사정을 더욱 악화시키는 제도이며 반드시 개선되어야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최연주 기자/충남
<gooddaytowin@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