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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서의 저자들 : 3회 - 홍창의

 해리슨, 사비스톤, 가이톤... 의대생이라면 누구나 봐야하는 교과서들의 제목을 장식한 이 분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의대생신문에서는 올 해 6회에 걸쳐 의학교과서의 저자들의 생애와 업적을 파헤칩니다. 가이톤과 해리슨에 이은 세 번째 순서는 우리가 보는 유일한 한글 교과서인 ‘홍창의 소아과학’의 저자, 홍창의 박사입니다.

세상이 아프면 의사도 아파야

한글 소아과학 교과서의 저자, 홍창의 박사



 아주 옛날에는 의학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독일어가 필수였다. 의학이 발전됐던 독일에서 대부분의 교과서가 나왔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영어 원서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어 교과서 좀 찾아보려고 하면 머리부터 아프게 마련이다. 구세주라고 믿고 펼친 번역서는 글자만 한글이지 외계어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단비같은 존재가 있으니, 바로 ‘홍창의 소아과학’이다. 서울대 명예교수 홍창의 박사는 1993년 한국어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의학서적 속에서 국내 최초로 한글판 소아과학을 편찬하였다.

 1923년 8월 10일 황해 황주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야마구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5년 교토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서울대학교에서 소아과 석. 박사를 모두 마치고 1954년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1980년에는 서울대병원장, 1988년에는 서울대 명예교수로 임명되었다.

 1955년 미국 미네소타 의과대학에서 2년 동안 밤잠을 아껴가며 공부하여 귀국 후에 소아심장학의 대가로 국내 소아과 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 심도자법(조그만 관을 삽입해 심장병을 진단, 치료하는 방법)을 비롯하여 선천성심장병의 진단법을 국내 처음 도입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 덕분에 심실중격결손증과 같은 어린이에게 가장 흔한 선천성심장 기형질환을 진단할 수 있게 되었다.

 홍창의 박사는 또 국내 최초로 가정의학과를 창설한 분이기도 하다. 1979년만해도 의과대학은 단과별 전문의 교육 중심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홍창의 박사는 역설적으로 1차진료의 중요성을 피력했고 국내 최초로 서울대학병원에 가정의학교실을 설립하였다. 그 후 여러대학병원에서 가정의학과가 만들어졌고 현재는 전국적으로 1만여명의 국내 가정의학과 전문의들이 활동하고 있다.

병만 고치는 소의보다 사회를 고치는 대의가 되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홍창의 박사가 중요시 했던 것은 의사라는 전문가로서의 사회적 책무이다.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 위탁한다는 생활신조로도 알 수 있듯이 홍창의 박사는 독실한 기독교 정신으로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인도주의실천운동의사협의회(인의협)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한 그는, 1988년 상봉동 진폐증사건(서울시내의 한 연탄공장 주변에서 8년 동안 살았던 40대 가정주부가 광산 근로자의 직업병인 진폐증에 걸린 사건으로 대도시 먼지공해의 심각성을 일깨워준 사건), 수은중독 문송면군사건, 최근에는 외국인 및 노숙사 무료 진료에 아우르는 활동을 통해 사회 환원에 힘쓰고 있다.
 
 2008년에는 평양에 현대적 의료시설을 고루 갖춘 소아 전문 병원을 건립하기도 했다. 2002년 첫 북한 방문 후 급성설사나 영양부족, 폐렴 등의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소아 전문병원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이를 추진한 것이다. 1980년 국내 첫 어린이병원 기공의 발판을 만들기도 하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결국 남,북한 첫 어린이 병원 모두가 홍창의 박사의 손에서 시작된 것이다. 북한의 병동에도 홍창의 박사가 집필한 소아과학 전권이 비치되어있다고 한다.

 87세의 적지 않은 나이이지만 아직까지도 의사로서 사회봉사에, 교육자로서 의학교육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 처음 그가 미국에서 의료기술을 배워왔듯이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그대로 ‘서울 프로젝트’를 결성하여 라오스 국립의대 교수에게 신 의료기술을 교육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또한, 소아과 교과서 개정판 작업에도 몰두하는 등 끊임없는 의료인으로서의 열정을 발산하고 있다.

 홍창의 박사는 평소 제자들에게 ‘병만 고치는 소의(小醫) 보다 사회를 고치는 대의(大醫)가 되어 달라’고 당부한다고 한다. 이렇듯 그는 한평생 베풀 줄 아는 전문인으로서 사회 환원에 힘써왔다. 앞으로도 그 열정과 노력은 계속해서 다른 의료인, 의학도들의 귀감이 될 것이다.


▲ 미네소타 프로젝트 당시 홍창의 박사. (왼쪽에서 다섯번째)

문정민 기자/중앙
<moon_jm@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