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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 캔버스에 생각을 그리다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가진 김정욱 작가와의 준비 안 된 인터뷰

 지난 4월 14일~20일, 인사동 인사아트플라자에서 열린 전시회 한쪽 벽면에는 <Psycho-drawing #1. Repression>이라는 제목의 연필로 그린 추상적 작품이 걸려있었다. 의식에서 고통스럽고 불쾌한 관념이나 사고, 기억을 무의식 속에 가두어 넣으려는 정신과적 방어기제를 제목으로 한 이 작품은 성균관의대 본과 3학년 김정욱 씨가 그린 작품이다. 그림을 그리는 의대생은 더러 있을지 몰라도 자신의 생각을 작품으로 그려 전시회를 연 의대생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 주제가 정신과 방어기제라니. 어딘가 수상한 이 의대생을 봄과 여름의 경계가 모호한 5월의 끝자락, 홍대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림, 낙서에서부터 시작된 매력

 그림을 언제부터 그렸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면서 언제부터인지 딱히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낙서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그리고 있고, 낙서의 수준을 넘어서 그림으로 남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다녀오고 나서 부터에요. 그때 본 작품들이 제게 '완성도 있는 작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남기고자 하는 마음을 일깨워 준거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한 자기만족이죠.”
 그러나 자기만족으로 시작한 그림이 작품의 형태가 되기까지는 웬만한 재능과 노력이 없다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재능이요? 별로 제가 그림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다만 짬날 때마다 그림을 그려요. 요새도 하루에 인체 드로잉을 한 10장정도 그리고 있고. 전시회 작품을 그릴 때는 수십번 그리고 찢어버리기를 반복했어요.”

전시, 관객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

 이번 전시회는 그에게 생애 첫 전시회이다. 남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여준다는 것은 작가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그가 보여주고자 했던 자신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낙서장에 끄적거리는 그림은 나만의 감성으로 가득한 다이어리에 불과하죠. 전시는 어떤 목적이 있어야 하고, 저에게 그 목적은 누군가 제 그림에 시선이 머문다면 제 그림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전까지는 전시 경험이 없어서 인터넷으로 직접 전시 스터디를 만들어 거기서 만난 여러 작가들과 모여 전시회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그린 일련의 다섯 작품은 그 주제가 모두 정신과 방어기제다. 특별히 정신과 방어기제를 주제로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시작은 공부할 때 쉽게 외우려고 그리기 시작했어요(웃음). 그런데 그림을 그리면서 그 의미를 곱씹다 보니 저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 의미에 대해 들려주고 싶더군요. 그냥 대부분 교과서에 있는 정의를 생각 없이 외우잖아요. 하지만 우리 모두 그런 방어기제를 쓰면서 살아가고 있고, 그 방어기제를 좀 더 친숙하게 받아들인다면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의대생, 작가 그리고 청년 김정욱

 실습을 돌면서 전시를 준비하는 게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정말 힘들었다며 당분간 그림을 그릴 생각이 없다고 까지 얘기했다. “처음부터 전시를 생각하고 그림을 그렸다면  쉬웠을 텐데 그렇지 않았거든요. 어떻게 그릴지 어디에 그릴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생각해야 하는데 연습장에 그림 그리는 거랑은 아예 차원이 달랐어요. 게다가 실습 때문에 평일에는 거의 시간이 안 나서 주말 내내 그림만 그렸죠.” 문득 의대생과 작가, 그 두 가지 삶이 공존하는 게 가능할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제 전공을 밝히면 주변에서 그 질문을 제일 많이 해요. 하지만 그 두 가지를 구분 짓는 건 무의미한 시도라고 생각해요. 제 안에 의사도 있고 화가도 있는 거라서 그걸 구분 지으려고 하면 끝없는 갈등의 고리만 생길뿐이지. 하기로 생각했으면 그냥 계획하고 하면 되지 구분 짓다간 이도저도 안 돼요.” 자신은 그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의대생일 뿐이라는 그의 말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즐거워하며 지속하는 것이 바로 재능의 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구상, 다음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

 김정욱씨가 다음에 그리고자 하는 작품은 외로움에 대한 고찰이다. 그림 제목은 예전부터 정해져 있는데 바로 <인간의 소외에 대한 근원적 불가능성>이다. “주변 사람들이 다 외롭다 외롭다 그러는데 그 외로움이라는 게 무엇인지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자친구 생기면 외로움이 해결된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 안하거든요. 사실 사람의 외로움은 근원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거예요. 하지만 해결 불가능하기 때문에 절망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희망적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모두다 외롭기 때문에 외롭지 않은 것, 그것이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 입니다.” 그의 다음 작품 또한 사람에게 향해있는 것이었고 사람에 대한 무한한 애정 없이는 쉽게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연필로 그린 그의 무채색 그림 속에서도 마음이 따뜻해졌던 이유가 이해되었다.

 그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의대생과 예술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우리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 이과, 예체능과로 나뉘기를 강요받아 이과를 선택하고 의대에 들어온 후 예술에 대해 나의 세계에 속해있지 않은 비현실적인 감성이라고 단정 지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술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 지는 것, 직면하는 것이야 말로 예술의 시작이다. 그리고 여기 그 감정 앞에 솔직하게 두려워하지 않았던 한 의대생, 김정욱 씨가 자신의 그림으로 그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그가 그릴 작품에 많은 관객들의 시선이 머무르길 바라며, 또 한명의 관객으로서 그가 다음에 어떤 작품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 작가 김정욱의 블로그 : http://blog.naver.com/plastic_bag

한혜영 기자/이화
<hang2v01@e-mednews.com>
사진_ 김민재 기자/순천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