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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의 탄생

75호(2010.06.07.)/의대의대생 2010. 6. 9. 01:25 Posted by mednews

청진기의 탄생

 많은 의과대학에서는 6월을 전후로 본과 3학년의 임상실습이 시작된다. 실습을 시작하면서 꼭 갖추어야 할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청진기이다. ‘의사’라고 하면 하얀 가운에 청진기를 걸친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릴 정도로 우리와 인연이 깊은 물건이다. 그렇다면 청진기는 대체 언제부터 의사의 상징물이 된 것일까?

 일찍이 히포크라테스 시절부터 환자의 가슴에 귀를 직접 대고 소리를 듣는 ‘청진’의 개념은 있었지만 청진기가 고안되어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지난 180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당시는 장기에 생긴 해부병리학적 변화가 질병 현상의 핵심이라는 새로운 질병관이 싹트던 시기였으니, 청진기의 탄생은 그런 시대적 맥락과 깊이 맞닿아 있는 셈이다.

 청진기를 발명한 사람은 프랑스의 의사 라에네크(Rene Theophile Hyacinthe Laennec, 1781-1826년)으로, 평소에 환자의 임상소견과 사후 부검소견을 하나하나 비교하던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루브르궁의 안뜰을 산책하던 어느 날, 그는 아이들이 시소를 타면서 한쪽에서 못으로 시소를 긁으면 반대쪽에서 시소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듣는 놀이를 하는 장면을 보고 영감을 얻게 된다. 그것이 결국 오늘날 모든 임상의들의 필수품인 청진기를 만든 것이다.

 청진기가 처음부터 오늘날과 같은 근사한 형태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최초의 청진기는 종이를 몇 장 겹쳐 돌돌 말아 만든 관이었다. 하지만 이후 트라우베, 갬먼 등의 손을 거치면서 개량을 거듭했고, 1963년 미국의 심장내과 의사 리트만(David Littmann)이 청음 성능을 혁신적으로 높인 새로운 디자인을 내어놓으면서 청진기의 발전사에 큰 획을 긋는다.
 
 이후에도 청진기는 고주파수와 저주파수를 동시에 들을 수 있는 “One side chest piece”형 청진기, 보청기를 장착한 청진기, 여러 사람이 동시에 들을 수 있는 청진기, 옷 위로 청진이 가능한 청진기, 전자청진기 등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 온갖 첨단 진단장비들이 나와 있는 오늘날에도 청진기는 현대의학의 역사를 머금은 채 환자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예비의사들의 어깨에 묵묵히 자리잡고 있다.

최성욱 기자/울산
<palpitation@e-mednews.com>

※ 참고문헌 : 황상익, <현대 의사의 상징, 가운과 청진기>, 크로스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