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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만화 좋아하시잖아요

97호/문화생활 2015. 5. 15. 15:39 Posted by mednews

솔직히, 만화 좋아하시잖아요

- 현실에 찌든 의대생의 가슴에 불을 지필 만화 3선

 

 

 

 

각종 영상매체에 의학 열풍이 불고 있다. 분기별로 하나씩은 꼭 나오는 의학 드라마는 시청률의 보증수표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방영된 굿닥터, 골든타임, 닥터 진 등등에 빠져들어 시청한 의대생들도 적지 않을 것이며, 그 이전에 방영되었던 외과의사 봉달희, 뉴하트, 브레인, 하얀 거탑 등 모두가 이름을 기억하는 명작 드라마들도 있다.
의학을 소재로 한 매체가 인기를 구사한다는 것은, 대중들이 의사에 대한 환상과 미화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처음엔 서투르지만 여러 가슴 절절한 사건들을 겪으며 결국 인성과 실력을 겸비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나가는 훈남 의사라니,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필만 하지 않은가?
그러나 상대적으로 의료계의 현실에 가까이 서 있는 의대생들은 사실 드라마의 전개에 코웃음을 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에는 환자의 진심어린 감사보다는 욕설과 모욕이 가득할 것이고, 병원 안에서 미남미녀와의 풋풋한 로망스 그런 게 있을 수가 없으며, 앞으로 다가올 현실의 중압감은 가깝고 더욱 무겁다.
하지만 현실이 어떻건 우리에게도 취해 있을 마약이 필요하다.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그때 그 계기, 그리고 의대/의전원에 처음 발을 들일 때의 그 소중했던 인의와 패기를 잊어서야 이 힘든 생활을 성공적으로 지속할 수 없다. 그래서 여러분의 가슴에 다시 한 번 불을 지펴줄 의학만화들을 이 자리에서 몇 편 소개하려고 한다.

 

최초의 의학 만화, 데즈카 오사무의 ‘블랙잭’

현실성★ 감동★★ 작품성★★★★

 

‘철완 아톰’ ‘불새’ 등의 작가로서 일본 만화의 아버지인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이다. 데즈카 오사무는 오사카 제국대학 의학전문부를 졸업 후 의사 면허를 취득한 실제 의사였고, 당시의 경험이 ‘블랙잭’이라는 희대의 명작을 탄생시켰다. 다른 만화들에 비해 현실성이 많이 약하지만, 허구에서 어떤 교훈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가장 만화답기도 한, 만화의 아버지다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의학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 보다는 의학 덕분에 탄생한, 온몸에 흉터가 가득한 무면허 의사 블랙?잭의 입체성이 감상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 외계인이 등장하는 등 허무맹랑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에피소드가 많지만, 시대를 생각하면 의학적 고증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검은 망토를 두른 흉터투성이의 천재 외과의’ 캐릭터의 원조를 찾아보고자 하는 이에게, 혹은 만화의 아버지의 족적을 좇고자 하는 이에게 추천하는 만화. 1973년작, 전 10권 완결.

 

수염난 거구의 마초 의사, ‘Dr. 쿠마히게’

현실성★★★★ 감동★★★ 작품성★★★

 

대학병원 조교수 자리를 차버리고 신주쿠 뒷골목에서 없는 사람들의 희망이 되어주고 있는 마초의사 쿠마히게의 이야기. 블랙잭의 경우 어떤 사람이라도 무조건 살려낼 수 있는 신의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쿠마히게는 실력은 뛰어나지만 어쩔 수 없는 하나의 인간이며,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죽음과 삶에 관한 인간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대적 배경 상 지금이라면 성차별이라고 난리가 날 대사와 행동이 가득하지만, 의사의 ‘휴머니즘’을 다룬 의학 만화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만화이니 한 번 들여다볼 가치는 충분하다. 1986년작, 전 6권 완결.

 

Dr. 코토 진료소

현실성★★★ 감동★★★★ 작품성★★★

 

억울한 누명을 쓰고 섬으로 온 천재 외과의사 Dr. 고토의 이야기.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도서 지역에서 근무하는 공보의와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상상하면 되겠다. 실제 이름은 고토지만 섬의 아이들이 Dr. 코토 진료소라고 간판을 만들어준 뒤 그냥 Dr. 코토로 불린다. 명예와 부 모두를 포기하고 한적한 섬에서 인술을 펼치는 Dr. 코토의 이야기가 절로 감동을 지어내는 수작이지만, 의사 하나와 간호사 하나로 운영되는 열악한 섬의 진료소라기에 증례는 어지간한 대학병원에서도 어려운 수준이라 헛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그러나 고증은 충실하다. 일본에서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수작. 2000년 연재 시작. 현재 25권 미완.

모두 일본 만화라 안타까움을 자아내지만 의술에는 국적이 없는 법이다. 굳이 한국에서 의사, 의료를 소재로 한 만화를 보고 싶다면 현재 네이버 웹툰에 연재중인 고리타 작가의 <아프니까 병원이다> 그리고 2011년부터 2012년까지 같은 장소에 연재된 유성연 작가의 <나란의사 그런의사>를 추천한다.
의룡, Dr. 노구찌, 갓핸드 테루 등 여러 다른 테마의 의학 만화가 있지만 지면 관계상 소개하지 못하는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솔직히 여러분 모두 만화 좋아하시지 않는가. 매너리즘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술 한 번 참아, 담배 끊어 아낀 돈으로 학업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책장을 넘기며 마음을 다잡아 보는 것은 어떨까?

 

이준형 기자/가천
<bestofzon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