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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하지만, ‘덜’ 존엄한 생명들

 

 

 

▲ 이탈리아 동물 보호 단체 ENPA의 동물실험 반대 광고

 

생명은 존엄하다, 혹은 그렇다고들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개발한 무수한 화폐 단위 중 그 어느 것도 생명의 가치를 매기지 못했고, 눈앞의 생명을 해치는 것은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더라도 여전히 비윤리적인 일이 될 것이다. 난자와 같이 심지어 생명이 될 가능성만 있더라도 생명에 걸맞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요즘의 분위기이다. 그 정도로 생명은 무겁다.
물론 지금까지 말한 ‘생명’은 인간의 생명만을 말한다. 동물은 그렇지 않다. 실험용 생쥐를 마음껏 조작하고 죽여도 되는 가격은 만원이며, 복제 양 ‘돌리’가 이 세상을 다녀간 지도 10년이 넘어 간다. 생명은 존엄하지만, 동물 생명은‘덜’존엄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러한 관념이 시작된 것일까?

 

벗어나기 힘든 갈레노스의 그림자

 

생체 실험 및 해부의 시초라면 갈레노스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갈레노스는 동물로부터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광범위한 생리학적 학설을 수립하고 인간에 대한 관찰로 연결시키는 데에까지 나아갔다.
그는 인간을 이용하여 연구를 해보고 싶었지만, 그 당시에도 죽은 인간의 해부는 로마 주교에 의해 금지되어 있었다. 이에 갈레노스는 염소, 돼지, 원숭이 등에 칼을 대기 시작하는데, 이는 인간에 대한 연구를 동물에서 먼저 하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당연하다는 관념을 낳게 된다.
오늘날까지도 동물 실험 찬성론자들은 그가 동물을 이용해 의학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물론 갈레노스가 그 동물 연구들을 바탕으로 주장한 4 체액설과 그 체액의 순환에 대한 학설 등은 대부분 틀렸으며, 이후 르네상스가 오기 전까지인 약 1,500년간 의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역할을 했다는 점은 자주 간과된다.
베살리우스와 하비가 인체에 대해 올바른 설명을 제시하며, 드디어 의학이 갈레노스의 그림자를 벗어나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한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발전은 오래가지 못했다. 근대 실험의학의 시조로 불리는 베르나르는 어떤 병이 동물에게서 재현될 수 없다면 그 병은 존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명제를 동료 과학자들에게 성공적으로 설득시켰다. 그때까지 축적된 임상 자료만으로도 그것이 말도 안 되는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을 텐데도 그는 “의사는 병원을 떠나 실험실로 가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학이다”는 주장을 폈다.
갑작스럽게 동물 실험이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고,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의학 연구에 대한 투자금은 동물 연구비로 들어갔다. 에디슨은 결핵균에 의해 부신에 이상이 생긴 환자들을 관찰하고 오늘날의 에디슨병(Addison`s Disease)에 대해 기술하였지만, 연구자들이 동물의 부신을 아무리 떼어도 같은 증상을 찾아내지 못했기에 이 병은 30년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 받았다. 그렇게 동물 실험은 늘 의학의 퇴보와 함께 해 왔다.

 

동물의 권리를 낮게 본 서양 철학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사물의 존재를 네 가지로 설명하였다. 형상인, 질료인, 목적인, 동력인 등이 그것이었는데, 여기서 목적인은 어떤 사물이 생성되는 궁극적인 목적을 뜻한다. 그리고 그는 식물이 동물을 위해 존재하며, 동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보았다. 동물이 음식, 가죽, 뿔 등으로 사용되던 당시로써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는지 몰라도, 그 이후의 서양 철학사 전반에서도 동물의 권리는 낮게 평가된다.
프랑스 합리론의 대표 주자였던 데카르트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을 찾기 위해 모든 존재를 철저히 회의하고 의심했고,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문장과 함께 근대 철학을 열었다. 그런 그가 동물을 정신이나 영혼이 없는 존재로 보았다는 것은 크게 놀랍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동물의 고통이나 비명 등은 진정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마취 없이 동물 실험을 행하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데카르트의 뒤를 이어 독일 관념론을 시작한 칸트 역시, 이성을 가지는 인간의 이익은 그렇지 않은 동물의 이익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옹호했다. 다행히 그는 동물을 잔혹하게 대하는 것은 반대했는데, 사실 이는 동물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품위를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뒤늦게야 제기된 윤리 문제

 

그렇듯 서양 철학은 동물 실험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대신 동물들의 생명을 희생해도 되는 정당한 근거로 더 크게 작용하는 가운데, 뒤늦게야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다윈은 진화론을 통해 동물은 인간의 불완전한 초안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잔인한 동물 실험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주도 하에, 1876년 동물 실험을 규제하는 동물 학대법이 최초로 제정되었다.
공교롭게도, 최초로 동물 생체 해부 반대 협회를 설립한 것은 베르나르의 아내와 딸이었다 (1883년). 베르나르의 끔찍한 동물 실험에 치를 떤 이들은 길거리를 헤매며 길 잃은 개를 찾아 다녔는데, 혹여 베르나르의 손에 들어가 실험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한편 영국에서는 1903년부터 1910년까지 ‘갈색 개 사건 (Brown Dog Affair)’을 통해 생체 해부에 대한 논란이 전국적으로 지속되었다. 의과대학 학생이 개를 해부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마취 없이 잔인하게 진행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동물 실험 반대론자들은 갈색 개의 동상을 세우고 기념물로 제정하였지만 의대생들은 반복적으로 이 기념물들을 파괴하곤 했다. 이 논란은 전국으로 퍼져 국론 분열을 야기하였으며, 동물 실험 반대론자들이 갈색 개 인형을 들고 행진을 하기도 했다 (갈색 개 폭동).

 

 

윤리적 문제이든, 실용적 문제이든

쿤데라는 그의 저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인간의 참된 선의는 아무런 힘도 지니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만 순수하고 자유롭게 베풀어질 수 있다.”고 썼다. 인간이 정말 선한지 확인하려면, 아무런 대가가 없을 때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봐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인류의 진정한 도덕적 실험, 가장 근본적 실험, 그것은 우리에게 운명을 통째로 내맡긴 대상과의 관계에 있다. 동물들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인간의 근본적 실패가 발생하며, 이 실패는 너무도 근본적이라 다른 모든 실패도 이로부터 비롯된다.”고 썼다. 그렇듯 우리가 인간의 건강을 위해 동물의 생명을 마구잡이로 희생하는 것은 인간의 추한 단면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단상일 수도 있다.
윤리적인 고민을 떠나 현재 동물 실험이 과연 실용적으로 의미가 있는가 하는 주장도 제기된다. 일부 과학자들은 동물 실험은 비참하리만큼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서도 실패하였으며, 인간에게 실제로 해롭기까지 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동물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인체 실험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여전히 매우 어려운 일이며, 이는 동물과 인간이 전혀 다른 생명체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여전히 많은 동물이 신약 개발에 사용 되고 있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엄격한 윤리적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가 단계적으로 화장품 등에 대한 동물 실험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거나 폐지해 나가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세용 기자/연세
<2bleDOW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