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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문 심사평

84호(2011.12.12)/문예공모전 2012. 1. 9. 17:14 Posted by mednews

(시부문)
심사평
박덕선 (시인, 민족문학작가회)

올해 11월도 여지없이 차가운 지성의 전당인 의학도들의 뜨거운 감성을 향유하는 행복한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기대로 설레던 일이기도하고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읽어 낼 수 있을까하여 마음의 짐이 되기도 했던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특수 분야의 낭인들을 만나는 일이라 호기심과 기대로 작품들을 하나하나 만났습니다. ‘의학도의 시를 만나는 일은 사실의 세계를 초월하여 실핏줄 한 가닥 말초신경 한 자락의 미세한 흔적도 생의 큰 의미로 살아나는 기쁨을 준다.’고 했던 지난해 시평의 기대가 넘쳐 올해는 참으로 행복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회를 거듭할수록 수작들이 많아져서 신명이 나는데 문제는 두 작품만 뽑아야 한다니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올해의 출품작들은 분야가 다양하다는 것이 큰 발전이요, 가능성입니다. 의학도로서 가장 치열한 공간인 수술실이나 해부학 수업에서 느끼는 심상을 진솔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품들 중 수작이 많았습니다. 특히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천안함 사건 같은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의학이라는 전문 분야에만 치우치지 않고 사회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시대의식을 같이하는 문인으로서 동질감을 갖게 했습니다. 더불어 일상의 소소함에서 발견하는 따뜻한 시선을 다룬 박지예의「보이지 않는 것들」이나 박재원의「분식집에서」는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이다가 아쉽게 손에서 놓아야 하는 수작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아성찰이나 철학적 사유를 담아낸 오세민의「동굴속에서」나 한지은의「시간에 대한 단상」도 좋았습니다. 다만 관념적 사유를 드러내려다보니 사설이 길어 작품의 긴장미를 떨어뜨려 아쉬웠습니다. 특히 김세영의「멸치를 향한 모독」과 조재홍의「도마뱀」은 기성시인 못지않은 상상력과 독창성을 지닌 작품이었는데 장시로 이어가다보니 주제를 이끌어가는 힘이 약해져서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아쉬움을 낳았습니다. 또, 한지혁의「창경궁의 대취타」는 낯선 시어들을 사용하여 뛰어난 독창성을 발휘한 수작이었는데 추상적 주제와 돌출적인 시어들이 다소 이질감을 주어 흐름을 깨는 아쉬움을 남겨 수상작에서 밀렸습니다. 그외 이규호의「전치(前置)」와 이은정의「GA28주」그리고 노원철의「달맞이」도 흠잡을 데 없는 수작이어서 가장 오래도록 고민한 작품들입니다. 수상작과 위에서 거론한 작품들은 그 차이를 아주 미세한데서 찾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뛰어나서 심사자로서 이 작품들을 더 칭찬하고 싶은 심정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2차 3차 심사를 거쳐서 간추린 작품이 10여편이나 되었는데 그 작품마다 독창성이 있고 행간마다 묻어나는 진정성 때문에 애정이 가서 어떤 작품을 골라야할지 고민하느라 일주일은 시들은 것 같습니다. 의학도들의 치열한 실습과 연구의 현장에서 시시각각으로 느끼는 삶의 편린들을 아름다운 시로 형상화해 내려는 진지한 시도들 앞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두 작품을 뽑아 들었습니다. 이 작품들이 위에 거론했던 작품들보다 특별히 뛰어나서 뽑았다기보다 최종에 뽑혀 올라온 작품들 중에서 완결미가 높을 작품을 선정 기준으로 잡았습니다. 여타 위에서 거론한 작품들은 잘 써내려오다가 약간의 사족이나 주제의 산만성. 추상성 등에서 그 차이를 두었으므로 우열을 가릴 수 없었음을 알려둡니다.
고심 끝에 최종으로 뽑힌 두 작품은 김한나의「위로」와 김민재의「창」인데 ‘창’이 우수작으로 밀리는 아쉬움을 낳았습니다. 이 작품은 수술실에서 느낀 생의 소회를 절제되고 단아한 시어를 구사하여 문학적 성취와 삶의 진정성 표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잘 잡았습니다. 뿐만 1연부터 시작된 주제의식을 마지막 연까지 심도 있게 끌고 간 힘이 강하여 높은 완결성에 점수를 주었습니다. 다만, 최우수작 ‘위로’에 비하여 제목선정이 약했다는 아쉬움 때문에 우수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최우수작으로 김한나의「위로」를 마지막으로 남겼습니다. 처음 읽을 때나 곱씹어 십 수번을 읽어 내려도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되 안정되고 단아하게 길어 올린 시어와 작가의 시선이 작품 제목처럼 큰 위로를 줍니다. 우선 낮은 곳을 향한 따뜻한 응시와 힘겨운 삶의 무게를 모든 가능성을 담보했던 아기에서 남루한 삶의 상처로 지쳐있는 노숙자의 구겨진 삶에까지 그윽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작가의 심성이 아름답고도 진지합니다. 어떤 위치에서 대하는 삶이든 생은 고통과 번민의 연속입니다. 그 지난한 과정을 너그럽고 온화하게 내다볼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겨울 찬바람 앞에서 건네받은 목도리 같은 따뜻한 시 한편이 밥보다가 큰 위로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시대가 팍팍하고 힘겨울수록 위로가 필요한 법이지요. 의학이 생물학적 인체를 다루는 고도의 전문인을 양성하는 학문이라면, 의사는 그 학문에 온기를 불어넣고 가슴을 녹여내어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완전을 지향하는 인술을 펼쳐내는 직업입니다. 문득 문학과 아주 긴밀한 거리에 인술이 위치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문학 행사가 거듭되면서 보여준 의학도들의 문학적 가능성이 자꾸 더 큰 욕심을 갖게 합니다. 이 행사가 의학도들의 더 다양한 문학적 가능성을 무궁무진하게 펼치는 장이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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