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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불붙은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 

 

삼성서울병원의 대리수술 사건으로 ‘수술실 CCTV’ 다시 수면 위로...

 

 

지난 7월 초, 삼성서울병원에서 발생한 대리수술 사건으로 인해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해야한다는 법안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해당 법안이 제기된 것은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다.

 

3년 전 시작된 수술실 내 CCTV 논쟁

 

수술실 내 CCTV 설치 논쟁은 2013년 5월 당시 민주통합당 소속이었던 최동익 의원이 환자의 동의 아래 수술실에서 수술 장면 촬영이 가능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법 개정안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그 무렵 병원 내에서 각종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동년 1월에 자궁근종 수술을 받던 환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궁을 적출하는 사건이 일어났으며 이 과정에서 ‘의사 바꿔치기’ 의혹까지 제기되었다. 2월에는 의사 대신에 간호조무사와 의료기기 판매업체 직원이 외과 수술을 진행한 일이 적발되었다. 그 전년도에는 한 성형외과 의사가 20대 여성에게 프로포폴을 보톡스로 속여 투여한 뒤 성폭행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이내 곧 다른 안건들 아래로 가라앉고 말았다. 법안을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여론이 크게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술실 내 CCTV 법안은 흐지부지 해져가는 듯 했다.

 

의료사고 진상 규명 및 환자 권익 보호
vs

사생활 침해 우려 및 의료진의 집중력 저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건 고(故) 신해철 씨의 사망사건이었다. 타계 전까지도 왕성한 방송활동을 하던 그였기에 그의 죽음이 사회에 불러온 파장은 매우 컸다. 사망 직후부터 측근을 중심으로 의료 사고의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례적으로 사건진상조사위원회까지 설치해가며 해당 사건에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다.
신해철 의료사고 논란과 더불어 같은 해 말에는 SNS를 통해 의사와 간호사들이 수술실에서 생일파티를 벌인 사진이 퍼져나가며 큰 논란거리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각종 의료사건들까지 재조명되며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야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결국 그 다음해인 2015년 1월, 최동익 의원은 2년 전 법안을 다시 한 번 발의하였다. 여러 사건·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직후라 그랬는지 해당 법안은 이전과 달리 많은 주목을 받으며 연일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최 의원은 “이번 법안을 계기로 수술실 등에 CCTV 촬영이 가능한 경우를 명확히 하고 의료분쟁 조정 등 제한적인 사유에 한해 촬영물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 의료사고의 진상규명과 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환경 조성에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하며 법안의 주요 목적을 밝혔다. 의료소비자연대 측은 “수술실뿐만 아니라 신생아실이나 중환자실 등 환자가 자기 의사 표시를 할 수 없거나 의식불명한 곳” 역시도 CCTV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최 의원의 법안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결과는 먼저와 동일하였다. 국회를 비롯하여 각종 의료단체들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실은 ‘환자의 내부 장기 및 신체의 특정부위가 지속적으로 촬영될 가능성이 크다’며 환자 및 의료진의 사생활 침해를 우려하였다. 또한 “집도의의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고난이도 수술의 경우 영상정보처리기기로 촬영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고, 이는 곧 환자 수술결과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에 법안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 등 각종 의료단체들 역시 CCTV 설치로 인해 의사들이 방어적 진료를 하게 된다는 점, 환자들과 의사들 사이의 신뢰 관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 의료진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세우게 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어 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했다.
이 같은 반대로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은 이후 아무런 진척을 보이지 못한 채 결국 지난 5월 29일 제 19대 국회가 문을 닫으면서 자동폐기 되었다. 제 20대 국회가 열렸지만 해당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어야 한다는 바람만이 남아있을 뿐 실제로 논의된 바는 아무 것도 없었다.

 

대형병원의 유령의사 대리수술 적발,
수술실 CCTV 논쟁 3라운드 돌입

 

잠잠하던 법안을 흔들어 깨운 것은 이번에도 역시 또 다른 의료 사고였다. 환자에게 통보된 것과 다른 의사가 대신 수술실에 들어오는, 이른바 유령의사에 의한 대리수술 사건이었다. 대리수술은 강남 성형외과를 중심으로 이전부터 알게 모르게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허나 이 같은 일이 일부 개원가가 아닌 삼성서울병원에서 일어나며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해당 사건으로 인해 대형병원에 대한 신뢰마저 바닥을 치게 되었고 이번에는 어느 한 국회의원이 아닌 시민들이 먼저 나서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주장하였다.
소비자시민모임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를 공동 발족하며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이전에는 단지 의식이 없는 환자를 보호하기 위함이 주요 골자였다면 현재 제기되고 있는 주장은 대리수술이 만연한 행태를 근절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와 더불어 대한한의사협회까지 성명서 등을 통해 해당 법안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복지부와 보건의료단체들의 반발이 거세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을 지적하며 현실적으로도 적용되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CCTV 설치법을 발의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라운드는 어떻게 결론이 지어질까. 결국 탁상공론의 법안이 될지, 통과되어 수술실마다 CCTV가 달려있는 모습을 보게 될지, 많은 이들의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해외 사례 살펴보기 : 수술실 블랙박스

 

다른 나라에서 역시 수술실 수술 장면 녹화에 관해 여러 논쟁이 진행 중이다. 그 중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수술실 블랙박스(Surgical black box)이다.
수술실 블랙박스는 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성 미카엘 병원(St. Michael’s Hospital)에 근무하는 테오도르 그란트차로브 박사(Dr. Teodor Grantcharov)에 의해 만들어졌다. 블랙박스에는 의료진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비롯하여 수술 기구의 움직임, 환자의 혈압, 체온, 심박동수 등이 기록된다. 이렇게 블랙박스에 데이터들을 기록하게 되면, 수술 후 후유증이 심하게 나타날 경우 데이터를 되감아보면서 어떤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단순하게 CCTV처럼 ‘감시하듯이’ 수술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술 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정보를 담자는 것이 수술실 블랙박스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물론 이 기기 역시도 사생활 침해의 논란을 완벽하게 피해갈 수는 없다. 어찌되었든 수술 시간에 행해지는 것들이 기록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해외 의사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쟁이 오고가고 있으나 수술실 블랙박스의 작동 방식은 CCTV처럼 마냥 지켜보고만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현재 무심하게 행해지고 있는 유령의사의 대리수술, 자칫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의료사고, 그 외 각종 사건들을 방지하기 위해 무언가 대책을 내려야 한다. CCTV 설치가 계속해서 난항을 겪는다면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윤명기 기자/한림
<zzangny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