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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떨고 있니?

111호/문화생활 2016. 7. 11. 17:15 Posted by mednews

나 지금 떨고 있니?

 

공포는 생존과 굉장히 밀접해 있는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인간, 나아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공포감을 느끼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을 마주하였을 때 이를 인지하고 재빨리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 생쥐가 만약 고양이를 보았을 때 어떠한 공포감도 느끼지 않고 고양이 앞에서 계속 알짱댄다면 보나마나 고양이에게 잡아먹히고 말 것이다. 허나 생쥐는 고양이를 보았을 때 공포감을 느끼기 때문에 고양이를 피해 달아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공포영화를 보거나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며 공포를 오히려 즐기는 경우를 논외로 하였을 때 인간이 가진 공포감 역시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생존과 별개로, 단순한 불안증세를 뛰어넘어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비합리적인 공포가 나타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라면 이를 공포증(phobia)이라 부르며 정신질환 중 하나로 본다.
고소공포증은 가장 대표적인 공포증 중 하나이다. 폐쇄 공포증, 광장 공포증, 환(구멍)공포증, 심해공포증 등과 같이 꽤 익숙한 이름의 공포증도 있는 반면 ‘아니 도대체 왜 이걸 무서워하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특이한 공포증들도 많다. 유전적 요인에 기인하거나 성장과정에서의 끔찍한 경험 등으로 인해 공포증이 생겼다고 보는 경우도 있지만 발병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세상 모든 공포증을 모아놓은 사이트 phobialist.com에 따르면 약 650개의 공포증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 중 정말 특이하고 의아할 정도로 이색적인 공포증 몇 가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수학, 아니 그냥 숫자가 무서워요

지구상에는 수학 시험이 아닌 단순 숫자에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숫자 공포증은 ‘13 공포증(triskaidekaphobia)’이다. 공포증이 나타나게 된 배경은 불분명하지만 예수를 배반한 유다가 최후의 만찬 당시 13번째로 자리에 앉았다는 이야기 때문에 공포증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유명인 중 이 공포증을 심하게 겪은 사람이 있는데 바로 작곡가 쇤베르크이다. 그는 악보에서 13페이지를 12b페이지라 표기할 정도로 13을 무서워했다. 또한 그의 미완성 오페라인 ‘Moses and Aron’에서 Aron은 원래 Aaron으로 표기해야 맞는데 그렇게 표시할 경우 제목이 13글자가 되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일부러 a 하나를 빼버렸다.
이 외에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권에 존재하는 ‘4 공포증’, 사탄의 숫자를 가리키는 666을 무서워하는 ‘666 공포증’등이 있다.

 

이 세상은 균형적이고 대칭적이고 질서정돈하며 완벽해야 해!

완벽주의자들이라면 충분히 가지고 있을 법도 한 공포증도 몇몇 있다. 먼저 불균형 공포증, Asymmetriphobia이라고 한다. 불균형 공포증을 가진 사람은 균형적이지 않은 것, 예를 들면 짝이 맞지 않는 양말 혹은 귀걸이를 보았을 때 극심한 공포감을 느낀다고 한다. 결벽증 역시 공포증 중 하나이며 의학적으로는 오물 공포증(Automysophobia)이라 불린다.
완벽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는 공포증이 있는데 바로 실패공포증(Atychiphobia)이다. 증상의 원인으로는 유전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작은 실패로 인해 겪었던 수치심 혹은 공들였던 일이 실패로 돌아간 상황에서의 느낀 무력감 등 환경적 요소들도 있다고 본다. 이 공포증을 가진 사람은 실패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상황에 처하는 즉시 급격한 절망감에 빠짐과 동시에 호흡이 가빠지고 근육이 엄청나게 긴장하는 등 신체적 이상까지 나타난다.

 

동물이 너무너무 싫어요

동물에 관한 공포증도 굉장히 많다. 사자나 표범 등의 맹수나 코끼리 같은 거대한 동물을 앞에 두고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고양이, 개, 말, 쥐 혹은 물고기나 상어에 대해 공포증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모든 종류의 파충류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파충류 공포증(Herpetophobia)도 있다. 곤충 공포증도 종류가 가지각색인데 거미 공포증(Arachnephobia), 흰개미 공포증(Isopterophobia), 말벌 공포증(Spheksophobia) 등이 있다. 나아가 미생물에까지 공포를 느끼는 미생물 공포증(Bacillophobia)도 존재한다.
닭 공포증(Alektorophobia)을 가진 사람의 경우 닭 자체뿐만 아니라 닭의 흔적이 남아있는, 예를 들면 달걀이나 깃털에 대해서도 공포감을 느낀다. 달걀에 대한 공포증은 Ovophobia, 깃털에 대한 공포증은 Pteronophobia라 부른다.

 

일상생활이 힘겨워 보이는 공포증들

지금까지 나온 공포증들은 어찌 보면 약과일지도 모른다. 일상생활 곳곳에서 등장하는 사물 혹은 맞닥뜨리는 상황에 대한 공포증들도 매우 많다. 앉기 공포증(Cathisophobia)을 가진 사람은 의자에 앉을 수가 없으며 보행 공포증(Ambulophobia)을 가진 사람은 걸을 수가 없다. 우리가 흔히 결정 장애라 부르는 증상이 심해지면 결단 공포증(Decidophobia)이 생길 수도 있다.
선생님 때문에 화장실을 가지 못해 그만 바지에 실례해 학창시절 내내 창피를 겪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 증상이 심각할 경우 배설물 공포증(Coprophobia)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혹은 변비물에 세균 등의 미생물이 득실댄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공포증의 원인이라 추측되고 있다. 이 외에도 컴퓨터 공포증(Cyberphobia), 나무 공포증(Dendrophobia), 마시는 것에 대한 공포증(Dipsophobia), 전기 공포증(Electrophobia), 좋은 소식 공포증(Euphobia) 등이 존재한다.
국가에 대한 공포증들도 몇몇 존재하는데 프랑스 공포증(Francophobia). 네덜란드 공포증(Dutchphobia), 중국 공포증(Sinophobia), 일본 공포증(Japanophobia), 영국 공포증(Anglophobia) 등이 있다.

 

의대생이라면 절대 가지지 말아야 할 공포증들

끝으로 의대생이라면 절대 해당되어서는 안 될 공포증들을 몇 개 소개해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의사가 될 사람이니 의사 공포증(Iatrophobia)과 진단 공포증(Tremophobia)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훗날 신장 질환과 관련된 일을 하고자 하는 의대생이라면 신장질환 공포증(Albuminurophobia)이 생기지 말아야 하며 정신과 의사가 되고자 한다면 정신이상 공포증(Agateophobia)을 이겨내야 한다. 피부과를 지망한다면 피부병 공포증(Dermatosiophobia)이 있으면 절대 안 될 노릇이다.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책과 함께 보내므로 학교 공포증(Scolionophobia)과 책 공포증(Bibliophobia)이 생기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며 모든 지식을 다 배울 때까지 지식 공포증(Gnosiophobia)과 배움 공포증(Sophophobia)도 조심해야 한다. 술도 꽤나 해야 하니 알콜 공포증(Methyphobia)과도 맞서 싸워야 한다.
의사가 되기 위해 피해야 할 공포증이 상당히 많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수면공포증(Clinophobia)은 생길래야 생길 수 없어 보인다.

 

윤명기 기자/한림
<zzangny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