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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간의 홍콩 서브인턴실습기

111호/문화생활 2016. 7. 11. 15:58 Posted by mednews

4주간의 홍콩 서브인턴실습기

홍콩대의대, 퀸메리병원 elective program

 

“별들이 소근대는 홍콩의 밤 거리” 노래가사에도 나올 만큼 유명한 홍콩의 밤. 최근에는 홍콩으로 가는 저가 항공사들의 직항 항공편이 다수편 생기면서 우리에게 더 가깝고 친근한 나라가 되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로 3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나라. 나라 전체의 면적은 서울의 약 1.8배이며, 연평균 기온은 22도 정도로 우리나라의 늦봄 날씨가 연중 계속된다.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 된 후 일국양제의 정치제도 채택하에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로서 존재하고 있다. 중국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홍콩 사람들은 자신들은 엄연히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으며 일상 생활속에서 “중국인”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필자가 처음에 해외서브인턴을 가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홍콩은 후보지에 아예 있지도 않았다. 학교의 역사가 짧은 탓에 해외서브인턴 제도를 시행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실제로 갔다온 선배도 딸랑 한 명인 학교에서 정보를 얻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전세계에 괜찮다 생각되는 의과대학에 메일을 전부 보내 나를 받아 줄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고 그 중 가능한 곳들 중에서 경제적인 여건과 시간 대비 효용이 가장 높을 곳을 골라보던 중에 우연히 인연이 닿은 곳이 바로 홍콩대 의대였다. 아시아 쪽에 일본으로 해외서브인턴을 간 경우는 타 학교들에서 심심치 않게 보아왔으나 홍콩으로 실습간 사례는 전무후무하여 지원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심지어 홍콩대 의대에서 조차도 개인으로 실습을 온 한국 학생이 내가 처음이라서 도움을 줄 수 있는게 없으니 본국에서 알아서 해결을 하라는 식이었다. 그래도 꼬박 1년여간의 준비 끝에 홍콩대 의대 실습허가서를 받아 5월 7일부터 6월 3일까지 4주간의 실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홍콩대 의대의 정식 명칭은 Li Ka Shing 의과대학이다. 이유는 Li Ka Shing이라는 홍콩의 부호가 어마어마한 금액을 기부하게 되면서 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이란다. 우리나라로 치면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한 의과대학에 기부를 하면서 그 의과대학의 이름이 “이건희 의과대학”으로 바뀌는 식이랄까. 아무튼 그 당시에도 이름을 바꾸는 것에 대해서 동문들끼리 반대가 심하고 삭발식도 진행되고 했지만 결국 막지 못하고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홍콩에는 총 2개의 의과대학이 있는데 홍콩대학교 의과대학이 그 하나고 나머지는 홍콩중문대 의과대학이다. 홍콩대학교 의과대학이 홍콩 내에서는 가장 으뜸가는 의과대학이며 그 수준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아 많은 외국 학생들이 공부하러 온다고 한다. 700만명 가까이 되는 홍콩 전체인구의 의료를 이 두 개 대학의 의사들이 전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병원, 의사들의 모든 관리는 Hospital Association이라는 정부 기관에서 전부 담당한다. 홍콩 의사양성시스템은 5년의 의과대학과 1년의 인턴, 그리고 6년의 전공의 과정을 거쳐 전문의로 거듭나게 된다. 최근에는 의과대학이 6년제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본인은 5년제의 마지막 학년 학생들과 함께 실습을 돌았다.


본인은 4주간 산부인과에서 실습을 진행하였는데 앞에 2주는 부인과, 뒤의 2주는 산과의 일정을 따라 움직였다. 기본적으로 실습의 내용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였다. 오전 회진, 케이스 보고와 강의, 외래 참관, 수술 참관, 병동 실습, 기타 세미나 참석이 주요 일정이었다. 아침 7시부터 일정이 시작되어 보통 5-6시 쯤에 일정이 끝나게 되며 산과의 경우는 분만실에서 12시간씩 교대를 하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어 실습 시간이 조금 더 길다. 일단 우리 학교에 비해서 전반적으로 학생들의 실습에서의 참여 기회가 더 많다는 것이 감명깊었다. 현지 학생들은 산부인과 실습을 7주간 돌게되는 데 30명이 한 조가 되어 15명은 부인과, 15명은 산과에 배정되어 실습을 하면서 3주마다 로테이션을 하게 되는데 그 안에서도 4-5명씩 소그룹이 짜여져 외래, 수술, 병동 등으로 역할이 나뉘게 된다. 병동 조 학생들의 경우 현재 병동에 있는 모든 환자들에 대해서 리포트를 해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환자에 대해서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환자들도 상당히 학생들에 대해서 호의적이며 기본적으로 환자들의 생각이 교육받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정보를 알려주어야 더 좋은 진료에 도움이 될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병동에서의 환자파악을 학생들 개인적으로 해 놓으면 매주 화/목에 진행되는 케이스 토론 시간에 교수 한 명이 환자 베드 번호를 하나하나 부르면 학생들이 그 환자에 대해서 기본 리포트를 하고 그 환자를 가지고 케이스 토론을 하면서 공부를 함께 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PBL 같은 느낌인데 일방적인 강의 대신에 실제 있는 환자를 가지고 역으로 이론 지식을 적용해 보면서 정리를 하니 훨씬 더 임상에 이론이 적용이 잘 되고 자연스럽게 이해가 될 수 있었다. 학생들에게 질문을 해도 학생들이 오답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대답도 잘 하고 교수는 설사 오답이라 해도 그 답에 대한 코멘트를 해 주지, 그에 대한 비난을 하지 않는 분위기도 내게는 꽤나 낯설게 느껴졌다.


외래 진료는 여러 가지 클리닉이 나뉘어져 있으며 의사들이 한 클리닉당 5-6명 씩 배정되어 있으며 그 의사는 해당 클리닉만 보게 된다. 예를 들어 부인과의 경우 부인종양클리닉, 초음파클리닉, colposcopy 클리닉, 신환/초진 클리닉, 난임클리닉 등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우리 나라처럼 외래에서 진료도 하고 초음파도 보는 식이 아니라 다 따로따로 전문의사가 나뉘어져 있다. 학생들은 우리나라의 스킬로그와 같은 책을 들고 다니면서 모든 클리닉을 다 참관하고 담당의사의 싸인을 받아야 한다. 외래 진료를 하는 동안 신환/초진의 경우에는 학생들이 예진을 보면서 차트를 작성하고 그 차트를 가지고 의사들이 진료를 본다. 신기했던 것은 외래를 교수진들 뿐만 아니라 전공의들도 본다는 점이 우리나라와 달라 신기했다. 내가 들어갔던 클리닉에서는 2년차 전공의가 외래를 보고 있어 적잖이 놀랐다. 외래 시간은 평균 10분 이상이 소요되며 난임 클리닉의 경우에는 환자 1명당 최소 30분씩 진료를 보고 있어서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꿈의 진료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홍콩 의료제도는 공공의료가 전반적으로 되어 있는 상태에서 private 병원이 같이 존재하고 있다. 국민의료보험은 오로지 공공의료에서의 의료 행위만 커버를 해 주게 되는데 본인이 실습했던 종합병원 같은 경우에 환자가 입원을 하게 되면 그 환자가 무슨 치료, 수술을 하든간에 상관없이 우리 돈 15000원/일 만 내면 모든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자궁근종 수술을 하러 입원한 환자라도 입원해서 퇴원하는 날까지 매일 15000원만 내면 각종 영상검사를 포함하여 수술 및 약물치료까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응급 수술이 아닌 이상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6개월은 기다려야 하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사설의료기관들은 보통 우리나라의 1-2차 의료기관과 같은 곳들이 해당되는데 이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실비보험과 같은 사립의료기관 보험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그 금액은 어마어마하게 비싸다. 홍콩인인 친한 친구의 얘기에 따르면 남편의 손가락이 찢어져서 봉합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었는데 처음 비용이 600만원 정도 청구가 되었고 그 중에 보험으로 처리하고 나서도 150만원 정도를 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사 국가고시만 통과하면 어떤 의료행위든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지만 홍콩은 조금 다르다. 의과대학을 졸업하면서 국가고시를 보고 통과하게 되면 임시 면허가 주어지는데 이 면허를 가지고서는 독립적으로 의료행위를 하기 어려우며 감독하에 의료 행위를 시행할 수 있다고 한다. 1년간의 인턴 (이 곳에서는 houseman or houseofficer 라고 부른다)을 마쳐야지만 비로소 최종 의사면허가 나오게 된다. 때문에 학생때 수술 어시스트를 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고 보면 된다. 대신 필자는 이곳에서 질식분만과 제왕절개분만을 모두 보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한국에서 실습할 때도 질식 분만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보지 못해 정말 아쉬웠는데 여기 산모들은 학생들에게 상당히 관대하여 아주 예민한 환자가 아닌다음에야 어떤 산모의 방이든 들어가서 차트도 볼 수 있고 진행 과정도 볼 수 있다. 남학생이라고 해서 예외가 있지는 않다. 홍콩에 있는 동안 인터넷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의과대학생들의 분만 참관으로 시끌시끌한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에 반해 너무 평온한 홍콩의 분만실은 본인에게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처음에 홍콩의대로 실습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언어문제에 대해서 많은 걱정과 우려를 표했는데 실제로 본인은 광동어는 한 마디도 못하였고, 중국어도 아주 조금 여행 회화만 할 정도였기 때문에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브인턴실습 중에 광동어가 사용되는 곳은 병동 실습과 외래 클리닉 두 곳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영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느끼지 못하였다. 원래도 의과대학의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고 있었고 때문에 학생들도 원어민이나 다름없는 영어 사용자라 서로 소통하는데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광동어가 사용되는 실습은 고맙게도 친구들이 영어로 중간 중간 통역을 해준 덕분에 어려움 없이 실습을 마칠 수 있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실습을 떠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컸고 준비 과정에서 포기할 까 싶은 순간도 많았고 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을 했나에 대한 후회도 조금 되었지만 4주간 다녀온 지금에서 돌아보면 지난 4주는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짧은 4주였기도 하면서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의대생활 경험이었다. 다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꼭 다시가고 싶을 만큼 병원이며 스탭, 의료진이며 친구들 모두 너무 좋았고, 홍콩이라는 나라도 매력적이었다. 누구에게든 무조건 강추하고 싶은 곳이다. 아시아의 다른 문화를 가진 나라의 의료제도 하에서 실습해보고 싶은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당장 홍콩을 지원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조을아 기자/을지
<eulahzum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