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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은 내 친구

96호(2013.12.11) 2014. 4. 24. 00:12 Posted by mednews

기생충은 내 친구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에서 인기리에 ‘네이버캐스트’를 연재하고 컬투와 함께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의대 교수가 있다는 사실, 알고들 있었는가. 발랄하고 센스넘치는 글,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대세로 자리를 굳히고 있는 서민 교수를 만나보았다.

하고 많은 전공 중, 기초의학이라니. 그 중에서도 기생충학이라니. 어떻게 해서 그 길을 가게 된 것인지 궁금했다. 역시 그는 ‘그 당시 만연한 기생충으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을 돕기 위해서’ 따위의 판에 박힌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돋보이는 것은 기생충에 대한 애정. “보통 학생들이 기생충을 보면 징그러워하고 미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거울로 항상 나를 봤기 때문에 전혀 징그럽지 않았어요. 오히려 좀 귀엽다고 해야 하나.”
기생충에 대한 연민에 가까운 애정, 거기에 연구에 대한 열의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물살에 휩쓸리듯이 살던 학생시절의 어느날 찾아간 연구실. 그 광경에 매료되었다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요즘 학생들이 기초의학을 잘 안 하려고 하는데 기초의학이 뭐 하는 곳인지 알면 많이 할 것 같다. 해부라고 해서 평생 시체 해부만 하는 게 아니니까.”라며 아쉬워했다.

그가 네이버캐스트에 연재했던 기생충 시리즈는 과학을 주제로 한 다른 연재물에 비해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댓글 100개는 우습고 400개를 넘어가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베스트 댓글을 보면 ‘허 내가 기생충 글을 정독하다니 ㅋㅋ 교수님 쩌십니다ㅋㅋ’ ‘이런 것좀 작작 올리세요. 진짜 징그러운데 계속 보게되요’ 같은 것. 역시 4쇄에 빛나는, <기생충 열전>의 작가답다.
“외모가 안 되니까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려고 하지 않아서 말로 무언가를 하기는 어렵더군요. 여자들한테 ‘저..’ 만 해도 도망가고 그랬어요." 결국 글로 자신을 전달할 수 있게 편지를 쓰는 것으로 전략 변경. 그의 글쓰기의 시작이다. 
거기에 유머를 더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초창기 글들을 지금 보면 이불에 하이킥을 날리게 된다고. “유치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독서에서 와요. 글이 세련되어지거든요. 한동안은 글쓰기 지옥훈련을 했죠. 하루에 2,3편씩, A4 1페이지 정도 쓰는 것을 계속했어요. 그러다보면 생활 속에서 글쓰기 소재 포착하는 게 절로 훈련이 되더라구요.” 이 말을 하며 소재를 포착하려는 듯 주변을 둘러보던 그의 눈빛은 하루키의 그것이 부럽지 않았다.

이어 그는 의대생과 의사들이 글을 많이 쓰지 않는 것을 꼬집었다. “엄마들이 육아 정보를 교류하는 유명한 사이트에 들어가 봤어요. 애가 열난다고 해서 해열제 먹이면 안 된다는 댓글이 있더라구요. 그러면 그 밑에 ‘정말이요? 나도 그래야 되나’ ‘난 먹였는데 어떡하지.’ 댓글이 올라오는데, 모르는 사람들끼리 새로운 이론을 만들고 있는 수준이죠.” 결국 해열제에 대해 알려주마! 하며 장편의 글을 하나 써서 올렸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번 책은 소아과에 대해 쓰게 될지도 모른다고.
“인터넷에는 거짓과 진실이 섞여 있어요. 의사들이 책을 써야 해요. 글을 안 쓰는 게 바빠서는 아닌 것 같거든요. 주말마다 골프를 가지 말고, 골프를 한 달에 두 번만 치고 두 번은 글 쓰면 충분할 텐데. 책을 써서 수 천 명을 개도한다는 마음도 필요해요.”
평소에 환자에게 말 하는 대로 써라. 남편이나 부인, 딸한테 보여주면서 어려운 부분을 고치면서 쓰면 된다. 서민이 밝힌 글 쓰는 비결이다.
“내가 모든 분야의 책을 쓰고 싶어요. 아까 말 한 것처럼 소아과 책도 쓰고, 그 다음은 감염내과 책도 쓰고 싶은데 그때쯤이면 책이 너무 많이 나와 있어서 내가 안 써도 되면 좋겠어요. 요즘의 의대생들에게 인터넷은 글쓰기 좋은 환경이에요. 글을 혼자만 보는 일기장이 아닌 블로그에 쓰고, 댓글이 달리고 누가 봐준다는 것. 그 사실이 내가 글을 더 잘 쓰게 만들고 동기 부여가 되는 거에요.”

후학 양성에 대해서는 묻자 괜시리 눈이 그윽해지고 목소리에 한숨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이전의 대답들이 너무 발랄했기 때문일까. “자신이 없어요. 기생충 하라고 했는데 교실이 없어질까봐.”
지금의 교수들이 의대 출신으로 기생충을 전공한 마지막 세대인데, 20년쯤 후의 기생충학의 미래를 점치기는 힘들다는 것.
“이렇게 된 데는 기생충을 연구하기보다는 박멸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가지고 뭘 더 해보려는 생각은 안 한거죠. 외국을 보면 좀 더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이제 기생충 없는데 뭐하려고 하냐, 그런 좁은 마인드는 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그의 유쾌한 에너지가 의대생신문 독자들에게 전해지길 기대하며 한 마디를 부탁했다.
“의사면허라는 타이틀은 법의 방망이 같은 거에요. 그것만 흔들면 다 쓰러지죠. 아무리 한 물 갔다고 해도 아직도 그래요. 힘들어도 일단 의사면허 따서 흔들 생각을 하세요.” 수틀리면 우동집이라도 열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의사가 개업한 우동집’ 으로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라고. 뻔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정 아니다 싶으면 임상을 하다가 기초로 와도 되고, 기초를 하다가 임상을 해도 되니까 자기가 뭘 하겠다는 방향성을 잘 찾으세요.”

 

문지현 기자/중앙
<jeehyunm@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