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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에서 ‘혹시!’까지, 심리테스트에 빠져든 당신의 심리

 

 

#Episode1
의대생 A군은 아침마다 신문에 실린 ‘오늘의 운세’ 코너를 꼭 찾아본다. 고등학교 시절 사설을 찾아읽던 중 우연히 읽게 된 오늘의 운세가 맞아떨어진 것이 계기가 되었다. 예전에는 같은 해에 태어난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하루를 살지 않는다며 운세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았던 그, 그러나 종종 소름끼치도록 맞아떨어지는 경험을 잊지 못하고 그는 오늘도 조간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 것이다.

 

#Episode2
의대생 B양은 혈액행을 묻는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한다. 그녀의 혈액형은 AB형. 혈액형 질문에 대답을 머뭇거리를 그녀를 보고 친구들이 “혹시... 설마... AB형?” 이라고 놀리며 수근거린 경험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작 4개 밖에 안되는 혈액형으로 성격을 구분지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소신 있는 그녀, 그럼에도 주변 사람들이 혈액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다보면 아닌 것 같다가도 문득 맞는 것도 같아 알쏭달송해지기 십상이라는데.

 

우리는 별자리를 통해 오늘의 운세를 찾기도 하고, 혈액형을 통해 상대방의 성격을 판단하기도 한다. 심리테스트에 임하는 사람들의 흔한 심리는 ‘설마 이게 맞겠어?’부터 시작하는데, 이는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심리테스트 결과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의 하루를 오로지 별자리 갯수로 나누고, 사람들의 성격을 오로지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을까. 세상은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심리테스트 결과를 불신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이런 믿을 수 없었던 사실을 스스로 수긍하고 믿게 되는 데 있다. 혹시 심리테스트 결과를 단 한 번도 믿어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당신을 위해 먼저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자. 아래 제시된 글을 읽고 자신의 성격과 어느정도 일치하는지 1점(불일치)부터 5점(일치)까지 점수를 매겨보도록 하자.

‘당신은 다른 사람이 당신을 좋아하고 자신이 존경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습니다만, 아직 당신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당신은 잘 절제할 수 있고 자기 억제도 합니다만, 내면적으로는 걱정도 있고 불안정한 면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변화와 다양성을 좋아하고 규칙이나 규제의 굴레로 둘러 싸이는 것을 싫어합니다. 종종 당신은 외향적이고 붙임성이 있으며 사회성이 좋지만, 가끔은 내향적이고 주의깊고, 과묵한 때도 있습니다. 당신의 희망 중 일부는 좀 비현실적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점수는 몇 점으로 체크되었는가. 이 재미있는 테스트는 1940년대 심리학자 포러가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에게 시행한 테스트이다. 포러는 학생들에게 위와 같은 제시문을 주고 자신의 성격과 부합하는 정도를 점수로 매겨보도록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학생들이 체크한 점수의 평균이 4.26으로 거의 5점에 근접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포러의 수업을 청강한 학생들의 성격이 모두 비슷했었던 것일까? 그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학생들이 제시문을 자신의 성격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학생들을 테스트하기 위해 포러가 제시한 제시문이 특정 성격을 묘사하는 지문이 아니라, 신문의 점성술 난의 내용을 일부 고친 짜깁기였기 때문이다. 결국 제시된 지문이 매우 다양한 성격을 재조합한 지극히 보편적인 특성을 갖춘 지문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의 성격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특성을 자신만의 특성이라고 믿곤 하는데, 이런 심리를 우리는 바넘 효과(Barnum effect) 혹은 포러 효과(Forer effect)라고 부른다.
쉽게 생각하면 바넘 효과는 심리적 착시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사고 체계 내에서 보편적인 것을 특수한 것으로 여기는 속성 때문에 발생하는 심리적 왜곡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넘 효과는 단순히 재밌는 심리 현상일 뿐일까.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사이비 과학(Psuedoscience)이 바넘효과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넘 효과는 큰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정보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확보한 정보가 참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다수의 정보 중에는 왜곡되거나 편협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식별하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8×7×6×5×4×3×2×1과 1×2×3×4×5×6×7×8 를 계산한 답을 물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8부터 곱하기 시작한 전자가 1부터 곱하기 시작한 후자보다 더 크다고 답한다. 곱하는 숫자의 순서만 바꿨을 뿐이기에 당연히 두 계산된 답은 같지만 큰 숫자부터 곱하기 시작한 전자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용량이 같으나 모양이 다른 컵을 보여주면서 어떤 컵에 물을 더 많이 채울 수 있을까 물었을 때 아이들은 두 컵 중 특정 컵을 고르곤 한다. 모양이 다르면 용량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이런 심리적인 착각을 하고 살아간다. 이러한 착각이 의료 정보를 접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심리테스트인데 뭐 어때?’라고 단순히 생각하고 넘길수도 있다. 하지만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심리에 내재된 바넘 효과를 인지하고 있다면, 우리는 왜곡된 정보를 앞에두고 ‘설마?’라는 의구심에서 ‘혹시!’라는 믿음으로 마음 옮겨 판단력을 잃는 실수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의학의 경향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근거 중심 의학(evidence-based medicine)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의료 정보 중에서 참인 정보를 식별하고, 그 중 참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근거를 바탕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향을 고려할 때, 바넘 효과는 우리와 무관한 이론이 아니다. 근거 없는 사실을 맹신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지양해야 할 태도이기 때문이다. 심리테스트 결과는 잊더라도 심리테스트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심리는 잊지 말자. ‘설마?’하는 마음이 ‘혹시!’하는 마음이 되기 전, 또 한 번의 ‘설마?’가 우리를 올바른 답으로 이끌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노원철 기자/전남
<happywonchul@e-mednews.org>

 

* 바넘 : 19세기 말 곡예단에서 사람들의 성격과 특징 등을 알아 내는 일을 하던 바넘(P.T. Barnum)에서 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