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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료원 폐업, 공공의료의 행방은

 

도지사와 노동조합의 말말말

 

진주의료원 폐업 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지난 3월 26일 경남도의회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진주의료원의 방만 경영을 이유로 병원 폐업을 결정했다. 이른바 ‘진주의료원 해산 조례안’을 도의회에 상정하기로 한 것. 진주의료원 노동조합(이하 노조)와 경상남도 야권 도의원인 민주개혁연대가 강력 반발했다. 경남도의회는 3월 말 병원노조에 휴업예고 통지를 보냈다. 휴업 예고 기간동안 경남도와 노조 간의 환자안전 및 직원들의 고용 대책 마련을 위한 협상이 시도되었으나 무산됐고, 결국 이달 3일부터 내달2일 한 달간 휴업에 들어갔다. 폐업을 앞둔, 휴업 아닌 휴업인 셈이다.

 

개원 103년만의 폐원 위기

 

진주의료원은 어떤 곳일까. 1910년 진주자혜의원으로 설립된 이후 경상남도진주의료원으로 개칭하여 진주 시의 공공의료기관으로 자리매김해왔다. 현재 9층 80개 병실 325병상 에 노인요양센터 및 종합건강증진센터, 응급실25병상, 중환자실30병상을 갖춘 결코 작지 않은 병원이 폐업 위기에 놓였다.
 
노조의 천국, 노조의 놀이터?

 

폐지법안 상정을 앞두고 각계 각층의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진주의료원 폐지를 발의한 경상남도의회 홍준표 경남도지사에 따르면 현재 진주의료원은 ‘노조의 천국, 노조의 놀이터’다. 작년 의료원의 전체 진료 수익 150억원 중 135억원이 직원 임금과 복리후생에 쓰였다. 실제로 조합원과 가족은 물론 10년 근무 후 퇴직한 노조원도 하루 9만원인 1인실을 6760원만 내고 사용하고, 휴업 중에도 임금을 모두 받는다. 이전부터 진료비 수익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80%를 훨씬 웃돌았다. 하루 외래 환자200명에 근무 직원 240여명인 병원 특성상 인건비 지출이 클 수 밖에 없었던 것. 현재 진주 시 전체 의료급여 환자 진료 건수 중 진주의료원의 비중은 2.9%로 매우 낮은 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경남도는 공공병원의 ‘진짜 고객’인 저소득층 의료급여 환자보다 병원직원의 복리후생을 더 챙긴다는 판단을 내렸다.

지속되는 적자에 대한 자구책의 부재도 폐지안의 근거가 됐다. 진주의료원은 작년에만 70억원 적자가 났고 총 부채가 279억원에 달한다. 경남도 측은 "경영진단을 하고 원가절감 등 경영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라는 요구를 수차례 했으나 아무런 자구책도 없었다"며, 예를 들어 병원 수익과 도민의 의료이용 편리성을 위해 토요일 근무를 추진하려 해도 직원들의 심한 반대 때문에 시행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공공의료원의 존폐와
수익성은 분리되어야

 

폐업에 반대하는 측의 주된 입장 중 하나는 진주의료원 같은 공공의료기관의 존폐가 수익성여부로 결정되어선 안된다는 점이다. 경기도의 모 의원은 “경기도립병원을 유지해야 한다는 설문조사가 도민의 1%만 나오면 나는 병원을 없애지 않겠다”는 발언으로 홍 도지사를 비판했다.
실제로 전국의 34개 지방 공공의료원 대부분이 적자로 운영된다. 물론 각 의료원이 지역에서 차지하는 공공의료기관으로써의 기능과 역할은 제각각이다. 그 예로 누적 적자가 420억원에 달하는 군산의료원은 진주의료원(279억원)보다 많은 부채에도 불구하고, 현지 응급 진료 시스템이 부족한 탓에 올해 나랏돈 70억원을 투입해 응급실·심혈관센터를 증축 중이다. 반면 진주 시는 보건산업진흥원 조사에서 의료기관이 과잉인 40개 시·군에 포함됐다.

 

근본원인은 저수가 제도

 

그러나 적자경영이 공공의료기관의 폐업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차치하더라도, 경남도지사 측의 의료원 폐지에 대한 두 가지 근거-지나친 인건비와 경영 자구책의 부재-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은 경영난의 근본적인 원인은 저수가 의료보험 제도임을 표명했다.
현 제도에서는 정상적인 진료로는 적자를 면할 수 없다. 민간병원은 MRI, 로봇수술 같은 다양한 비보험 진료항목과 비진료분야의 수입으로 겨우 수지를 맞추지만 주로 저소득층을 진료하는 도립, 시립의료원은 급여에 포함된 필수진료항목 위주로 운영되며 입원비도 민간병원의 83%밖에 되지 않아 ‘정직한’ 흑자경영은 불가능에 가깝다.

 

적자경영, 경남도도 책임있다

 

여기에 2008년 경남도 측의 진주의료원 이전 결정이 재정을 크게 악화시켰다. 도시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본래 도시 중심에 위치했던 진주의료원을 수백억원의 비용을 들여 도시 개발이 미진한 외곽으로 옮겨 증축한 것이다. 2008년 이전에 앞서 2007년부터 정상 진료가 이뤄지지 못했고, 이전 후에도 진료개시까지 3개월 가량 공백이 있었다. 이 영향으로 2년만에 110억 가량 적자가 증가했다. 또한 병원 인근의 교통수단도 마땅치 않아 수요는 자연히 감소할 수 밖에 없었다.

 

할 말이 많은 노조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인력은 OECD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 저수가 제도 하에 살아남기 위해 많은 민간의료기관이 비정상적으로 적은 인력을 사용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진주의료원의 인력수준은 정상에 가깝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 10월에는 노조와 경영진이 병원 적자경영 타개를 위한 노.사간 협력사항이 담긴 별도 합의서를 작성했다. 합의서 내용은 ▲장기근속자 명예퇴직 ▲임금인상 및 신규채용 억제 ▲연차수당 축소지급 ▲토요일 근무 시행 ▲급성기 병원 병상 수 조정 ▲주차장 유료화 등이 담겼다.
실제로 조합원 측은 명예퇴직 시기를 앞당기고 인원을 늘린 상태이며 2008년 이후 5년간 동결된 임금을 지급받고 있다. 그마저도 지난 7개월 간은 전혀 지급받지 못했다. 이처럼 합의서 일부를 준수하며 경영난으로 인한 고통을 상당부분 감내하고 있는 병원직원들의 노고를 인정치 않는 일방적인 폐업 결정에 대해 진주의료원 노조를 비롯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전국보건의료노조)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의료원 폐지 :
공공청사를 위한 포석?


의료원 폐지가 병원 부지를 경남도의 공공청사로 전환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의견도 있다. 지난 2월 윤항홍 행정부지사가 의료시설의 공공청사 전환 여부에 대해 관련 부서에 검토문의한 결과 해당부서로부터 전환이 가능하며 그 결정권은 도지사에게 있다는 보고를 받은 것으로 공식 확인되어 파장이 일었다. 

 

뜨거운 논쟁, 미지근한 정부

 

이같은 사태에 보건복지부는 다소 미온적이었다. 본회의 이틀전 복지부는 경남도에 진주의료원 업무 정상화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강제성이 있는 ‘명령’이 아닌 원론적인 ‘요청’이었다. 새누리당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 지도부는 ‘공공의료의 필요성에는 동감하나 도민의 뜻을 존중해야지 않겠느냐’며 ‘설립과 폐지의 모든권한이 지방자치단체에게 있는 지방의료원 문제에 중앙정부가 간섭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나며 한계가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같은 정부와 여권의 입장에 대해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와 민주개혁연대, 야권  등은 암묵적으로 폐업을 용인하는 태도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논란이 이는 가운데, 본래 18일 예정이었던 경남도 본회의 전날인 17일 경남도 여야의원들 간의 조례안 상정을 둘러싼 협상에서 “조례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되 2개월간 심의를 보류하고 6월 임시회의에서 처리한다”고 합의했으나 새누리당의 거부로 인해 무산됐다. 결과적으로 폐압안이 보류되었으나 오는 29일 임시회를 앞두고 있어, 홍준표 도지사가 강한 의지를 고수할 경우 조속히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개원 103년만에 폐업위기를 맞은 진주의료원. 참 많은 사람들이 입을 열었다. 도민 혈세가 깨진 독으로 들어가는 모양새가 보기 불편했던, 그러나 내심 새 둥지에 기대를 품은 홍 도지와 적지않은 인건비에도 불구하고 직원의 복리후생을 우선 보존, 향상 시키려는 노조의 투쟁이 있었다. 논란의 불길은 공공성과 수익성에 관한 이념논쟁으로 옮겨가기도 했으며 그  주변에서 뭇 집단의 눈치를 보는 여권과 야권도 있었다. 거친 논쟁 속에서 진주의료원의 방문객, 2.9%의 진주사람들의 목소리는 희미하다. 
공공의료의 정의와 양질의 공공의료를 위한 척도가 분명했다면 논쟁이 덜했을까. 의료원 폐지를 둘러싼 이번 논란에서 가장 자주 쓰인 단어들-적자, 노조, 공공성, 수익성, 저수가제도 등등-중 공공의료를 표현하는 말은 그리 많지 않다. 정치와 이념과 이익에 앞서 적자와 강성노조가 없는 공공의료기관, 또는 적자에 임에도 꿋꿋하게(?) 운영되는 공공의료기관이 ‘건강한 공공의료’의 동의어가 될 수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김정화 기자/한림
<eudaimonia89@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