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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이 말하죠. 예전같지 않다고

 

의료전문주의에 대한 고찰 : 권위에서 협력, 병에서 환자로

 

많은 사람들이 ‘의학은 사회와 독립적으로 발전하였고, 폐쇄적이며, 또 그렇기 때문에 의사는 전문직이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의학의 전문성은 어디서 유래되었고 최근들어 어떤 변화를 맞고 있을까.

비비안토마스. 현대 흉부외과의 초석을 다진 의료기술자이다. 본래 직업은 목수였다. 의대에 가고자 돈을 모았지만 대공황으로 재산과 일자리를 잃고, 당시 외인성 쇼크를 연구하던 알프레드 발라락 박사 연구실에 잡역부로 들어간다. 처음에는 청소와 실험용 개를 관리하는 일을 맡았지만 의학에 대한 관심과 외과적 센스 센스를 인정받아 연구에 참가하게 되고, 큰 성과를 냈다. 존스홉킨스 의대 실험실로 자리를 옮긴 후 팔롯사징(Tetralogy of Fallot)의 외과적 치료 과정에 큰 공헌을 했고, 흉부외과의 기틀을 세운 의료인으로 추모되고 있다.

에이브라함 아산티. 마취 전문의로서 육군 군의관은 그를 다음과 같이 추천했다. “그 동안 줄곧 닥터 아산티는 최고 수준의 의학 지식과 자신의 의료 부문에서 요구되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필수적인 기술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닥터 아산티를 좀 더 큰 책임이 요구되는 직위에 적극 추천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그는 수술 중 사소한 실수로 무자격 의사인 사실이 발각되어 구속됐다. 구속 전까지 그는 100건에 가까운 수술에서 마취의로서 참가한 ‘의료인’이었다. .

의학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 비의료인이 의료 제도나 진료과정에 개입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는 것은 물론, 과거 의사들 사이에서만 공유되었던 지식이 인터넷과 매스 미디어의 발달에 힘입어 일반인에게 쉽게 퍼져나가고 있다. 국민의 의학지식 수준이 향상되고 있다는 점은 환영할 일이지만, 현직 의사들에겐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다. 출처가 불분명한 자료를 가져와 의사의 신중한 진단을 의심한다든지, 치료과정 중에 충분히 발생가능한 실수를 심각한 과실로 몰아붙여 의사 뿐 아니라 다른 환자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오늘날 환자는 더 이상 의료 정보의 수혜자가 아닌, 지식을 의사와 함께 공유하고 치료과정을 협상하는 동반자가 되었다. 의사의 결정을 전적으로 신뢰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의 환자는 진단과 치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선택지를 저울질 한다. 큰 병이라 의심되면 더 큰 병원으로 옮기기 일쑤고, 치료 과정에 작은 착오라도 발견되면 법원 문부터 두드린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의료소송 처리건수는 1990년 68건에서 2000년 361건, 2010년에는 871건으로 20년간 1200%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에 의사들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대한의학협회와 서울의대가 공동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45세 미만 청장년 의사들의 대부분(95%)이 위기감을 갖고 있었고, 그 위기감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국민의 불신(30.4%)을 꼽았다. 즉, 의사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전문성이 제대로 평가되거나 존중되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불신세태를 반영하듯, 최근 의료계 내부를 고발하는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의사들에게는 비밀이 있다’, ‘병의 90%는 스스로 고칠 수 있다’, ‘병원이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진실’, ‘의사는 수술 받지 않는다’ 등등,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의학지식을 쉽게 전달하는 책들로 채워져 있던 시절과는 사뭇 대조된다.
 
의료 전문주의는 어디서 유래되었을까? 애초에 ‘사람의 생명에 가장 직접적으로 개입한다’는 의학 특유의 아이덴티티 하나만으로도 의학의 전문성에 대한 사회의 암묵적, 관념적 합의가 성립되었다. 신화시대에 의술은 신과 소통하는 방법이었고 의사가 사용하는 용어는 일반적인 언어와 구분되어 오직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에게만 전수되었다. 기원전 5세기, 에게해의 코스섬에서 진료를 했던 히포크라테스는 전집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이 지식(의학)을 나 자신의 아들들에게, 그리고 나의 은사들에게, 그리고 의학의 법에 따라 규약과 맹세로 맺어진 제자들에게 전하겠노라. 그러나 그 외의 누구에게도 이 지식을 전하지 않겠노라..”
그러나 현대의학의 발전은 의사 집단의 자의가 아닌, 사회·제도에 영향아래 의존적인 변화과정을 거쳤다. 자신들의 기술을 예술적 기예로 간주하면서 개인화, 비밀화 하였던 대장장이나 예술가와는 달리 의학은 일찍이 대학제도에 편승하여 과학화에 앞장섰고 그로 인해 17세기 이후 상류층의 전유물이 되어 갔다. 근대화 과정에서 의료는 국민을 규율하고 통제하는 과학적 수단으로 기능하기도 하였다. ‘건강한 출산’은 부국강병을 꾀하던 국가에서 의학의 목적이었고, 온 국민이 노동현장에서 경쟁해야 했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의학은 조직에 부적합하거나 일탈하는 자를 걸러내어 노동효율을 높이는 역할이었다.
이처럼 근대국가의 성장 과정에서 의학은 본연의 업무인 ‘환자 치유’이상의 역할을 맡았고, 이를 위해 의사의 권위를 공고히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19세기와 20세기 초 만연했다.
미국의 사회학자 파슨스는 이 시대의 의학을 ‘고객이 아닌 의학지식의 필요에 의해서만 시술을 하고, 이러한 의사가 행사하는 권위는 사회구조적 필요에 의해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회성원들은 이를 존경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고 표현했다.
 이러한 의료전문주의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부터다. 비비안토마스를 주인공을 한 영화 ‘something the lord made’나 부신백질이영양증(ALD)에 걸린 아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부모의 모습을 담은 영화 ‘로렌조 오일’은 의사가 아닌 일반인이 의료의 전문성을 넘어 의학적인 업적을 이룬 사례를 담았다. 그러나 일반인의 이런 움직임은 수백년 간 견고했던 의료계의 언어와 자존심에 대한 도전이었다. 도전은 계속 되었는데, 대표적 사례가 에이즈 치료제 승인 과정에서 보인 환자와 시민단체의 역할이다.
 
에이즈가 게이들의 ‘난잡한 성행위가 불러온 성서적 심판’으로 간주되고, 타임즈에 ‘에이즈환자에게 문신을 새겨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하여 사회적으로 격리해야 한다.’ 라는 논평가의 글이 게재되자 높은 교육 수준과 경제력을 갖춘 많은 게이 남성들이 분노했고 에이즈를 집중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게이집단에는 ‘동성애는 질병적 상태’라는 꼬리표를 붙였던 과학과 의료에 불신이 팽배했는데, 이러한 반감으로 에이즈를 연구한 끝에 에이즈 치료법 개발에 의사 못지않은 큰 공헌을 하였다.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어 다양한 사상과 개성이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기존에 특별 취급 받던 학문의 사회적 기득권을 부당하게 여기는 여론이 우세해졌고, 그에 따라 의사는 ‘국민건강의 주체’에서 일종의 서비스업으로 위상이 축소되어 갔다. 의학의 분업화와 뚜렷한 치료법 없이 생활습관으로 관리 해야 하는 만성질환이 현대의 주요 질병이 되었다는 점 역시 이런 세태에 일조하였다.
학자들은 “의학지식의 개방화, 더 나아가 의사의 탈권위화는 막을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기 때문에 과거의 향수에 젖어 현재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무의미한 행동’ 이라고 말하면서 ‘이런 경향에 맞추어 의학 교육의 방향을 제시하여 새로운 사회에 맞는 의사를 배출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특히 과거에 비해 환자의 의식과 행동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의학에 입문하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의사-환자 관계를 교육하는 것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예방의학과 맹광호 명예교수는“21세기 우리의 의학교육은 이제까지 환자진료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치려 했던 교육목표를 수정해야 한다” 면서 “의학의 최소한의 총론적 지식과 날로 증가하는 의학지식을 능동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 배양, 그리고 무엇보다 원만한 의사-환자 관계를 위한 인문, 사회적 소양교육과 의료관련 법이나 윤리에 대한 교육을 목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 주장한다.
 어느 퇴직한 임상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임상의사를 10년 넘게 하다 보면 환자 보는 눈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병력청취와 신체검진만 해도 환자의 반 이상이 진단되지요. 그뿐만 아니라 환자에 따라 어떻게 대해야지 좋은 치료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감’이 생겨납니다. 무조건 일률적으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죠. 그 때 즈음이 돼서야 ‘아 내가 의사가 되었구나’ 라는 마음이 실감나더군요. 책을 갖고 와서 질문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대답 중 하나가 ‘(이 사람은 그런 치료를 받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입니다. 학생들은, 아니 새내기 의사들은 이런 생각이 부족해요. 단순히 병을 치료하려 하지 환자를 치료하려 하지 않아요. 의사는 전문직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자격증이 있다고, 학문이 어렵다고 혹은 생명을 다룬다고 해서 전문직은 아니라고 봐요. 수많은 지식을 쌓음과 동시에 많은 경험을 하고, 그렇게 녹여낸 지식과 경험을 환자 각각에, 그리고 사회속에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에 전문직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병이 아닌, 사람과 세상을 볼 줄 아는 의사가 되어야 됩니다. 그것이 앞으로의 사회가 의사에게 바라는 전문성입니다.”

 

조원민 수습기자/경희
<science501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