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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클이라 미안합니다”

 

산부인과 실습을 통해 바라본 배움의 기회

 

아침 7시 30분 폴리클 K군은 산부인과 의국으로 향한다. 예정된 컨퍼런스가 끝나고 8시부터 회진을 돈다. 8시 30분 회진을 마친 K군은 바로 산부인과 초음파 환자 대기실로 향한다. 초음파 대기실에서 K군을 기다리고 있던 레지던트 선생님은 단 한 마디를 남긴 채 초음파실로 들어간다.
“폴리클 선생님, 선생님이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대기실에 남겨진 K군은 종일 환자 대기실에서 혼자 공부를 하다 5 시쯤 출석 확인을 받고 나서 집에 갈 수 있었다.

지난 9월 4일, 전주 지방 법원은 분만 과정에 산모 동의 없이 실습생들을 참관시킨 병원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산모 측에 손을 들어주었다. 출산 시 제3자의 참관이 산모의 수치심을 자극하여 정신적 침해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산모의 동의를 미리 구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사실 산부인과 시술 과정에 실습생 참관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소송 이전에도 인터넷 청원 등을 통해 산부인과 실습 참관을 막으려는 사회적인 움직임들이 있어왔다. 심지어 지난해 국립대 병원 국정 감사에서는 한나라당 김세연 의원이 분만장 내 학생 참관 실습을 위한 별도의 규정은 제정돼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산부인과 실습생 참관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면서 지속적으로 위축되던 산부인과 실습 커리큘럼이 이번 판결로 인해 더 큰 위기에 봉착했다. 그나마 폴리클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고 있는 와중에, 이제는 폴리클에게 빈 방을 내주고 방치하는 병원들도 생기는 실정이다.
실제로 한 대학 병원과 연계하여 폴리클 실습을 맡고 있는 로컬 산부인과에서는 이번 판결 이후 폴리클 학생들의 수술실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수술실과 진료실에서 이루어지던 실습생 교육이 단순한 면담으로 대체되고 출석체크 후 돌려보내는 형태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대학 병원 내 실습도 예외는 아니다. 회진과 수술 참관 이외에 실습생 일정이 거의 없는 대학 병원도 있다. 실습 여건이 나은 병원에서는 여학생들의 내진이 허용되고 있지만, 남학생들의 내진 참관은 허용되지 않고 있다. 대신에 남학생들은 초음파실을 찾은 환자를 순서대로 대기시키는 잡무를 맡고 있는 실정이다. 이 와중에 학생들은 환자들의 부담스러운 시선과 실습생 참관에 대한 환자들의 불만이 부담스러운 교수님의 시선 사이에서 더 난감해질 뿐이다.
실습생 참관을 금지하고 있지 않은 한 대학 병원에서는 오히려 학생들이 이런 분위기를 의식하여 참관을 꺼리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어디까지 실습생이 참관할 수 있는지 정해지지 않아 우왕좌왕해야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환자들의 시선을 의식한 레지던트 선생님들에 의해 명찰을 뒤집거나 명찰을 달지 않은 채로 참관하도록 지시받기도 한다.  
산부인과 실습에 대해 학생들이 느끼는 불편함은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학생들이 참관할 수 있는 영역의 축소로 인한 교육적인 소외 문제가 있다. 다음으로 환자, 선생님들 시선 사이에서 ‘죄 없는 죄인’이 되어야 하는 스트레스가 있다. 산부인과 실습 과정에서 느끼는 산부인과에 대한 첫 인상 때문에 평소 산부인과에 관심 있어 하던 학생들조차 차후에 있을 레지던트 선발 과정에서 산부인과 지원이 고민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턴제 폐지를 앞두고 각 의과대학에서는 의학 교육 내실화를 위해 임상실습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학의 입장과는 달리 갈수록 산부인과 실습은 위축되어 가고 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것은 실습생 참관에 대한 환자의 오해와 불만을 해소하고 것이다. 이를 위해 정신과 실습 이전에 작성하는 환자 정보에 대한 서약서를 작성하고 환자의 동의서를 받는 등의 대안들을 모색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대부분의 환자들이 실습생 참관을 거부할 수 있어 학생들은 산부인과 교육으로부터 더욱더 소외될 수 있다. 환자들의 자율선택권에 따라 환자의 인권을 존중하면서 실습생들도 당당하게 실습에 참관할 수 있는 건강한 교육 여건을 위해, 환자와 의사, 학생 간의 합의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의대생신문
<editor@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