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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여러분과 같은 의사입니다.”

 

- 반기문 UN 사무총장 강연 스케치

 

박수가 쏟아졌다. 길게 이어진 축사들로 잠시 긴장을 놓던 사람들은 다시 자세를 바로 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강단을 바라보았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평범한 인사였지만, 청중들은 모두 강연자를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인사말부터 받아 적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2012년 8월 13일, 이종욱 글로벌의학센터 개소식을 기념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를 찾았다. 이날 연사 중에는 “의대생이여, 세계를 치료하라”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게 된 반기문 UN 사무총장도 있었다.

“이종욱 박사님과는 인연이 있었습니다.”

강연은 반기문 UN 사무총장과 故 이종욱 WHO 사무총장과의 인연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되었다. 반기문 총장은 세계를 치료했던 이종욱 사무총장의 업적에 대해서 “한국인에게 무한한 긍지와 자랑”이라고 표현하며, UN에서 보건은 매우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라고 강조하였다. ‘사람의 몸은 한 나라와 같다.’라는 동의보감의 명제대로, 의학이란 개인뿐만 아니라 한 국가를 치유하는 중요한 학문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런 면에서 세계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 노력한 故 이종욱 사무총장과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는 반기문 총장의 인연이란 결코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을 것이다.

 

“세계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UN 사무총장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전염병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대륙 한 구석에서도 ‘세계의 병’들은 충분히 접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봇물처럼 쏟아져 오는 ‘세계의 병’들이 벌인 참혹한 결과물에 날마다 경악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 아니었던가.
반 총장의 언급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이었다. 반 총장은 금년 UN 총회에 ‘세계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제출한 다섯 가지 계획 중 하나가 ‘5 major killer'를 없애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말한 5 major killer란 ‘소아마비, 에이즈, 파상풍, 홍역, 말라리아’로, 이 중 말라리아만 해도 1년에 65만명의 생명을 앗아간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5개의 질병들을 퇴치하는 것이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반 총장은 이미 계획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을 질병 퇴치를 위한 ‘특사’로 위촉하여 질병 박멸을 위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나이지리아의 종교 지도자에게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소아마비 퇴치를 위한 호소를 서신으로 보내기도 했다. 질병에 대한 올바른 사회적 인식은 질병 퇴치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 언급하면서, 반 총장은 ‘한국은 에이즈 환자에 대해 모범적인 인식 개선을 이루어냈다’고 평가했다.

 

“의사는 휴머니티에 대한 확실한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병원에서 고통받는 환자를 보고 울적함을 느꼈다는 반 총장은 의료 시설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강조하였다. “저도 사실 병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병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삶에 대한 믿음을 이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의료 인프라가 잘 갖춰진 편에 속한다. 병원은 어느 규모 이상의 도시라면 병원을 쉽게 찾을 수 있으며, 비교적 저렴하게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 수준이 조금만 낮은 곳으로 시선을 돌려 보면 당연하게 생각되는 의료 서비스를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반 총장은 여기서 ‘Health post'를 언급했다. Health post란 전문적으로 의학 교육을 받은 의료인 대신 몇 가지의 기술만 익힌 사람들이 의료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봤을 때는 ‘돌팔이’에 지나지 않는 그들도, 병원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국가에서는 환자들이 항상 긴 줄로 가득하며, 기다리는 환자들의 표정에서는 희망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의사란 “휴머니티의 결정체”라는 것이 반 총장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휴머니티에서 나오는 Compassion(동정)은 Passion(열정)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추진될 수 있어야 비로소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날마다 팍팍해져가는 현실 속에서 버텨 나가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에서 Passion의 흔적을 다시 한 번 찾아보았다.

 

“인류 보편적 가치는 결코 양보할 수 없습니다”

 

시간 관계로 질문은 한 사람만 가능했다. 귀중한 질문은 “반기문 총장의 원칙”에 헌정되었다. Universally Accepted Principle. 인류 보편타당한 가치는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 반기문 총장의 원칙이었다. 상대방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지만 인류 보편의 가치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단호한 원칙이었다.
강단에서 내려오는 반기문 총장. 그 옆에서 신속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경호원들과 함께 강연은 끝났다.

 

허기영 기자/서울
<zealot648@e-mednew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