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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정책, ★을 찍어드립니다

Chapter 4. 응급실당직법(응당법)

 

2010년 11월 휴일날 대구에서 장중첩증*으로 진단받은 4세 여아의 보챔에 부모는 다급히 큰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인근 3곳의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는 모두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의료진이 현재 응급실에 부재하여 빠른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에 보호자는 인근 도시인 구미에 위치한 대학병원으로 급히 이동하였지만, 제 때 치료받지 못한 아이는 이송 중 사망하고 말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응급의료체계의 허점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고, 특히 당시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의료진이 응급실에 부재하였다는 점이 조명을 받았다. 이는 이후 기존의 응급의료법에 대한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촉발제가 되었다.

 

기존 응급의료법, 전문의의
직접 진료는 자율에 맡겨

 

1995년부터 시행되어왔던 기존의 응급의료법률에서는 당직의사는 ‘전문의*또는 수련기관의 경우 3년차 이상의 전공의*(레지던트)’로 규정하였고, 당직전문의를 두어야 하는 진료과목의 개수는 권역·전문센터 8개, 지역센터 5개, 지역기관 2개로 지정하였다. 이러한 기존 응급의료법에는 3년차 이상의 레지던트가 환자를 ‘직접’ 진료해야 하는 의무는 없었다. 또한 법안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 제제를 가하는 ‘처벌규정’을 명시하지 않아 강제성이 없었다. 따라서 실제로 의료 현장에서는 레지던트가 연차에 제약 없이 응급실에서 진료를 하고, 전문의가 응급실당직을 서는 것은 각 병원의 자율적인 시스템에 따라 선택적으로 시행하였다.
이러한 기존의 응급의료체제 하에서 ‘대구 장중첩증 여아 사망사건’이 화두가 되었고, 이후 각 과 전문의들의 응급실당직과 이들의 신속한 응급환자진료를 위한 법안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그리고 2011년 8월 4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의 개정안이 공포되고, 이후 1년 뒤인 2012년 8월 5일부터 이 법안은 시행되었다.


개정 법률, 전문의가
직접진료 요청에 불응 시 처벌

 

개정된 법률 조항에서는 ★응급의료기관이 모든 개설 진료과목마다 당직 전문의를 두어야 한다. 또한 응급실 근무 의사가 환자상태를 파악하고 해당 과의 전문의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호출할 경우(온콜,on call*), 당직 전문의는 병원으로 직접 와서 진료를 보아야 한다. ★이 호출에 당직전문의가 응하지 않을 경우 해당 응급의료기관은 과태료 200만원을 내고 해당 전문의는 면허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받는다. 또한 환자 및 보호자는 응급실 내부 게시물 혹은 홈페이지 게시물을 통해 해당 과의 당직의 명단을 직접 확인할 수 있고, 당직전문의가 응급의학과 의사의 진료 요청에도 오지 않았을 경우 보건소에 해당 사실을 신고할 수 있다.

 

개정법 시행을 앞둔 공청회에서,
의료계 “현실성 없다” 반발

 

개정안에 대한 반발은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 그치지 않고 의료계 전반에 걸쳐 일어났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법 시행을 앞두고 2차례의 의견 수렴 공청회를 열었다. 의료계의 비판은 ★▲전문의의 업무량 증가에 따른 진료의 질 저하 ▲수가개선 및 추가예산지원 누락 ▲2차 지방병원의 실태 무시 ▲특정 과의 전문의부족 현실 미반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전문의인력은 당장 늘어날 수 없고 전문의 한 명당 수행할 수 있는 업무량 또한 한계가 있다. 그런데 개정 법안이 시행되면 주간에 외래환자 및 병동입원환자의 진료나 수술까지 담당하는 전문의가 야간에 당직까지 더 서야 한다. 이렇게 되면 다음날 체력적 한계에 부딪혀 의료사고의 위험성이 증가하는 등 전반적인 진료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전문의의 응급실 당직업무를 늘리려면 이에 상응하는 비용이 소요된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비용에 대하여 추가로 예산을 지원하거나 응급실수가를 개정하는 등의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따라서 응급의료개정법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고스란히 병원의 몫이 되었다는 것이다. 셋째, 2차병원이나 지방병원의 경우는 특히 경영난과 구인난이 심각하다. 그런데 이 병원들이 전문의에게 야간응급실당직까지 요구한다면, 해당 전문의들이 사직하여 개원의로 전향하는 등의 집단 이탈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넷째, 응급환자 수 대비 전문의 인력이 부족한 외과나 소아과와 같은 경우를 고려하지 않은 현실에 맞지 않는 개정법이라는 것이다.

 

개정법 시행 후, 행정처분
유예기간 3개월 두기로

 

개정법안을 두고 의료계의 비판이 쏟아지자, 보건복지부는 법 시행일인 지난 8월 5일을 이틀 앞둔 시점에 ★당직전문의 비상호출(on-call) 불응에 따른 행정처분을 3개월간 유예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2012년 11월 4일까지는 개정법을 시행하기는 하되, 이를 위반 시 응급의료기관이 내야 하는 과태료 200만원이나 당직전문의의 면허정지 등의 행정처분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건복지부는 유예기간 발표와 함께 이 기간 동안 응급의료기관에 개정법 준수를 위한 준비를 할 것을 권고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취지와는 달리 ★상당수의 응급의료기관들은 개정법 시행 두 달을 바라보는 현재시점까지 응급의료 체계에 변화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한달 후 계도기간이 끝나면 개정법망을 피하면서 기존의 응급의료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 편법을 공공연하게 마련하고 있다.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한 경우에도 당직전문의를 부르지 않고 환자를 입원시켜 레지던트가 진료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 경우 응급실환자는 입원명령으로 인해 더 이상 응급의료개정법에서 규정한 ‘응급실 내 응급환자’가 아니기 때문에 법망에 걸리지 않는다. 따라서 레지던트는 응급실환자를 입원만 시키면 전문의를 호출하지 않아도 합법적으로 진료할 수 있다. 개정법이 시행되어 전문의당직을 강제하여도 사실상 응급실에 상주하는 이는 여전히 레지던트인 것이다.

 

유예기간 만료 앞두고
응급의료기관 반납 등 혼란 예상

 

앞으로 약 한달 후 계도기간이 끝나 개정법안 시행을 강제하면, 문제점이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콜을 하지 않는 경향이 두드러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기존에는 필요하면 해당 과 전문의에게 연락을 취해서 자문을 구하였지만, 이제 자칫하면 해당 의료진은 면허가 정지되고 병원은 2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마음 편히 호출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중소병원에서는 행정처분을 우려하여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를 받지 않고 다른 대형병원으로 바로 이송하는 사례가 급증하여, 대형병원의 응급실 과밀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지방의 중소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했던 익명을 요구한 인턴은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밤에 응급실로 온 환자는 ★아주 경증이 아닌 이상 (환자침대를 구급차에서 병원응급실로) 내리지 말고 인근 대형병원으로 보내라는 지시가 있었다”며 중소병원의 실태를 고려하지 않은 개정법의 부작용에 대해 우려했다. 한편, 개정법 시행 이후, ★지방 뿐 만 아니라 수도권의 종합병원에서도 전문의 인건비 및 응급실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해 응급의료기관 반납을 고심하고 있다. 유예기간이 끝나면 응급의료기관 반납 도미노 현상까지 예상되고 있어 파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측은 제 작년 말에 “응급의료수가 체계의 전면적인 개정을 위한 연구를 2010년 12월부터 1년간 진행하고, 2012년에 ‘응급의료 수가기준 전부 개정안’을 시행한다”고 발표한 바 있으나, 개정법을 시행한 현재까지 이와 관련한 정책안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응급의료의 질 개선을 단순히 전문의의 당직강제화로만 일괄하는 성급한 법안 개정 때문에 의료계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천대 길병원 예방의학과 임준교수는 응급의료법 개정을 두고 “중증 응급환자가 전문의에게 신속한 진료를 받는 것은 필요하다. 이는 현재 정부가 중증외상환자의 사망률과 합병률 개선을 위해 추진 중인 중증외상센터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기본 전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응급실당직 전문의인력이 확충되어야 하는데, 당장 인력을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전문의가 보아야 하는 응급환자의 수를 조절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는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를 보다 체계적으로 경증과 중증 환자로 구분하여, 소수의 중증 환자만 전문의가 신속히 보도록 하고 경증 환자는 응급실 내 야간진료센터를 따로 마련하여 일반의나 레지던트가 보도록 하는 것이다.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한 지역구에 분산되어 있는 소형 병·의원의 전문의인력을 지역거점병원으로 흡수시키는 보건의료체계의 개편이 요구된다. 이 경우 지역거점병원은 외과·산부인과 등 각 과별로 전문의 인력을 확충할 수 있어 어떤 응급환자에도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이 강화될 것이다” 라고 제안했다.

 

이운지 기자/가천
<woonji@e-mednews.org>

 

* 장중첩증(Intussusception) : 3개월에서 6세 사이에서 장폐쇄의 가장 흔한 원인으로, 상부 장이 하부 장 속으로 망원경같이 말려들어가는 질환. 사망률이 매우 낮다.
* 전공의 : 인턴 과정을 마친 뒤에 전문의 자격을 얻기 위하여 임상 수련을 하고 있는 의사, 즉 레지던트 1·2·3·4년차를 말한다.
* 전문의 : 전공의 과정을 마친 후에 전문의 국가고시를 치러 이에 합격하였을 때 ‘전문의’라 한다.
* 온콜(on-call) : 전문의는 당직 때 병원에 남아있지 않고 밖에 있다가,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한 응급환자가 오면 호출을 받고 병원에 간다. 이 때 받는 호출을 온콜(on-call)이라고 부른다. 이에 반해 레지던트의 당직은 응급실에서 상시 대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