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빈 수레가 요란했던 피임제 재분류 논란, 왜 문제가 되었나?

 

사전피임제는 일반의약품,
긴급피임제는 전문의약품으로 3년간 현행유지

 

지난 8월 29일,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안전청(이하 식약청)은 의약품 재분류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2000년 의약분업 이후 12년만의 일이며, 2011년 6월 보건복지부에서 국민 의약품 구입 불편 해소 방안 관련 의약품 재분류 논의를 시작한지 약 1년 만이다. 지난 8월 29일에 발표한 보건복지부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번 재분류는 2013년 1월부터 시행되며 재분류 품목은 전체 의약품의 1.3%에 해당하는 504개이다.
이번 재분류 시행에서 세간의 이목이 가장 집중된 사안은 피임제였다. 과연 대중들은 피임제의 일반/전문의약품 분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웹을 이용한 설문조사(264명 참여)에서 약 53%(140명)가 사전피임제는 일반의약품이, 약 47%(124명)가 전문의약품이 적절하다고 응답했다. 반면에 긴급피임제는 약 36%(96명)가 일반의약품이, 약 64%(168명)가 전문의약품이 적절하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피임제의 재분류가 왜 논의되었고, 왜 결국에는 현행대로 유지되었을까? 그 이유들을 살펴보기 전에 피임제에 대해 알고 넘어갈 내용을 간략하게 아래 표에 제시했다.
사전피임제의 전부가 일반의약품인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사전피임제 야즈정, 야스민정은 머시론정과는 달리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이다. 이를 두고 보건복지부와 식약청은 사전피임제 전부를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하려는 계획을 세웠었다. 주된 이유로 사전피임제의 부작용과 관련한 것을 들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된 사전피임제가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된 사전피임제에 비해 정맥혈전증에 걸릴 확률을 다소 높인다는 사실이  미국 FDA에 보고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수 십년간 사전피임제가 일반의약품으로 판매됐지만 국내에서 커다란 부작용이 없었고  효능이 입증되었다는 점, 전문의약품으로 전환될 경우 소비자의 부담이 3-4배 늘어난다는 점에서 이번 정부의 계획은 약사계와 여성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정부는 사전피임제 구매자에게 반드시 복약안내서를 제공하도록 하는 등 사실상 사전피임제의 부작용을 인정하면서도 단지 ‘사회적 이유’ 때문에 일반의약품으로 3년간 유지한 뒤 재평가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긴급피임제는 성관계 후 24시간 이내에 복용 시 약효가 95%, 48시간 이내 80%, 72시간 이내 58%이고 착상 후 효과는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만큼 ‘신속함’이 약효를 결정하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긴급피임제를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려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이 역시도 많은 논란을 낳았다. 긴급피임제는 사전피임제 대비 약 10배정도의 호르몬 관련 제제를 포함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이에 대한 임상 시험 자료에 따르면 긴급피임제를 한 달에 4회(주 1회) 복용할 경우 복용자 70%에서 월경 관련 부작용이 일어났다. 그 뿐만 아니라 전체 복용자 300명 중 약 33%가 지속적인 출혈증상을 보여서 임상시험 기간 6개월을 마치지 못했다. 결국 긴급피임제를 현행대로 전문의약품으로 3년간 유지한 뒤 재평가하기로 결정했다. 긴급피임제가 일반의약품으로 전환될 경우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오·남용 문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의약품의 재분류가 단지 2차례의 회의만으로 결론 지어 졌다.”면서 “무엇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예정되었던 시기와 절차에 따른 신속한 의사결정과 행정처리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임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번 재분류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였던 피임제와 관련해서는 “의학적·과학적인 분류가 아닌 사회적 판단을 한 부분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으나, 이번 재분류 논의를 통해 사전피임제 부작용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는 점에 대해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반면에 대한약사회(대약)는 “이번에 분류가 유보된 의약품은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기반으로 의약품의 합리적 사용이라는 국민의 입장이 최대한 반영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의약품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된 긴급피임제 등 일부 품목에 대하여 최종 분류를 재검토하기로 한 것은 소비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실망감을 금치 않을 수 없다.”고 밝혀 사실상 긴급피임제(사후피임제)가 전문의약품으로 유지된 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또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응급약’의 본래 목적에 부합하고 취약계층이 이용 가능한 실효성 있는 대책”은 “사후피임제(긴급피임제)의 일반약 전환을 통한 이용접근성 제고”라고 주장하면서 이번 결과에 실망감을 나타내었다.
피임제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 121가지 가운데 1위로 선정될 만큼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손꼽힌다. 대신에 그만큼이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종교계에서는 긴급피임제를 “낙태약”이라고 까지 주장하는 등의 윤리적인 문제와 피임제가 성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 등의 사회문화적 문제만 봐도 그러하다. 이 이외에도 피임제의 오·남용으로 인한 피해, 비싼 가격 등으로 인한 불법복제의 만연 등 피임제 관련 문제는 매우 많고 또 민감하기까지도 하다. 3년간의 유예기간 동안 국민의 건강과 권익보호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강상준 기자/서남
<myidealis@e-mednew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