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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료 역사 속의 인물 취재

 최초로 종두법을 도입한 의학자 지석영

“의학 교장 지석영이 천연두 치료법을 천명하여 치료에서 힘입고 있으니 마땅히 상을 주는 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특별히 훈 5등에 서훈하고 팔괘훈장을 하사하라.” - 고종실록, 고종 39년
한글 가로쓰기를 주장한 한글 연구자, 개화에 앞장섰던 선각자, 조선 최초의 관립의학교 교장, ……. 누구를 가리키는 말일까? 바로 지석영 선생님이다. 이번 <한국 의료 역사 속의 인물 취재>에서는 이러한 지석영 선생님의 생애와 발자취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출생, 그리고 의학과의 인연
지석영은 1855년(철종 6) 5월 15일 서울에서 지익용의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신분은 양반이었으나 매우 가난한 집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한의학에 조예가 깊었다. 지석영은 가정 형편 때문에 서당에는 다니지 못하였고 아버지 친구인 박영선에게 어려서부터 한학과 의학을 배웠다. 지석영은 일찍이 중국에서 들여온 서양 의학서의 번역본을 많이 읽었다. 이때부터 그는 제너의 우두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창궐하는 천연두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듣건대 지금 괴질이 성행하고 있다고 하니, 각 군영과 각 관청에서 중한 죄수 이외에는 모두 방송하도록 하라. ……” - 고종실록, 고종 4년
“몹쓸 전염병이 유행하여 수도와 지방에서 사망하는 근심이 많이 있다 …… 별려제를 날을 택하지 말고 지내도록 예조에 분부하라.”
와 같이 전염병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조선 말기에는 각종 전염병이 크게 유행했고 수많은 어린이들이 생명을 잃었다. 당시에도 허준의 「언해두창집요」와 같은 천연두의 치료법을 담은 한의학 서적이 있기는 했지만 창궐하는 천연두 앞에서 한의학은 무력했다. 그런데 마침 스승인 박영선이 일본에서 실시되고 있던 우두법을 배워 왔고, 지석영은 그에게서 서양의학의 종두법을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조선 최초의 종두법 실시
비록 박영선에게 받은 책을 읽고 강의를 들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이때 마침 지석영은 부산 제생의원의 원장과 해군 군의관이 종두법을 알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난했던 지석영은 20일 걸어서 제생의원을 찾아가 필담으로 자신의 뜻을 전하여 실시법을 2개월 동안 배우고 두묘와 종두침까지 얻었다. 종두법을 배운 뒤 충주에 들려 어린이 40여 명에게 우두를 접종했고,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종두법이었다.

정치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은 종두법
초기의 종두법이 성공적이기는 하였으나 두묘(우두의 원료)의 공급이 부족했으므로 지석영은 직접 일본 도쿄에 건너가게 된다. 그곳에서 두묘의 제조법까지 익혀 서울로 돌아와 종두장을 차리고 본격적인 우두접종사업을 펼쳐나갔다. 그런데 임오군란이 일어나 개화당원인 그의 체포령이 내려지고, 종두장이 불타버리는 등 위협이 계속되자 그는 정국이 안정될 때까지 잠시 피신했다.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탄핵되어 5년 동안이나 유배되기도 했다. 이러한 정치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석영은 그동안 쌓은 종두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종합하여 「우두신설」이라는 책을 펴냈다. 유배가 풀린 후에는 서울로 돌아와 우두보영당을 설립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공은 개화파 정부가 종두규칙을 제정하여 전국 모든 어린이들에게 의무적으로 우두 접종을 하도록 한 것이었다. 1899년에는 그의 제안으로 의학교가 설치되었으며 지석영은 초대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그 후 11년 동안 우리나라의 근대의학 도입에 앞장섰다.

의사이자 한글학자였던 지석영
그가 한글 가로쓰기를 주장한 한글학자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대한제국이 공포한 ‘신정 국문’ 을 만들어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바탕이 되었다. 지석영은 한글 연구를 위한 조직으로 국문연구소를 설립했고, 의학교에 국문연구회를 창립해 주시경, 박은식 등과 함께 활동했다.

친일 행적 논란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지석영의 친일 행적은 그의 오명으로 남아 있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일본군의 통역, 길 안내로 동학농민운동의 진압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 의해 살해되었을 때 추도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마무리하며
지석영 선생님을 기리기 위해서 후생신보에서는 매년 의사 국가고시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사람에게 지석영 선생님의 초상이 새겨진 메달과 함께 ‘송촌 지석영상’을 수여하고 있다.

조영탁 기자/울산
<pokytjo@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