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호] 나 홀로 임상실습, 무면허 의료행위?!

나 홀로 임상실습, 무면허 의료행위?!

임상실습현장과동떨어진의료법에대하여

 

사례 1. 의과대학생‘갑’은 첫 실습과로 신경과에 배정됐다. 신경과 아침 회진 때 교수님으로부터 컨퍼런스에서 발표할 환자를 배정받았다. 회진이 끝난 후‘갑’은 혼자 환자를 찾아가 진찰과 문진을 시작하였다. 환자의 과거력, 가족력 등을 물어보고 어떤 증상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청진, 촉진은 물론 간단한 도구를 가지고 신경검사도 해 보았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기 위하여 간호사의 허락을 받아 환자의 차트를 읽고 발표에 필요한 자료를 만들기 위해 레지던트에게 양해를 구하고 의국으로 가지고 가 필요한 부분을 복사한 후 제자리에 가져다 두었다.

사례 2. 의과대학생‘을’은 지역병원 응급실에 응급의학과 실습을 위해 파견 나왔다. 새벽 2시경 술에 취한 환자가 구급차를 타고 이송되었다. 환자의 상태는 기면으로 보였고 술에 취해 넘어져서 이마가 까져 약간의 출혈이 있었다. 보호자에게 몇 가지 병력청취를 한 다음 레지던트 선생님 감독 하에 환자의 오른쪽 팔에 직접 동맥혈채취(ABGA)를 해 보았다. 처음에는 실패하였으나 두 번째는 성공하였다. 또 이마의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거즈를 붙이라는 지시에 따라 그렇게 하였다.

 

임상실습 과정 중 의대생이 가장 어려워하는 문제 중 한 가지는 환자에 대한 직접적인 진찰과 문진을 어떻게 할 것이냐이다. 대부분의 실습과가 한 조당 또는 한 사람당 한 명의 환자를 배정시켜 그 환자에 대한 문진과 진찰을 통해 케이스 발표를 하는 것을 성적평가의 주안점으로 두고 있다. 그러므로 환자에 대한 진찰과 문진은 임상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의대생들은 환자에게 자신이‘의대생임을 밝히고 진찰을 할 것인가’아니면‘의사인 것처럼 들어와 진찰을 할 것인가’라는 두 가지의 선택항을 두고 갈등하게 된다. 만약 전자를 택한 경우라면 환자 보호자에게 눈총을 받지는 않을까, 환자가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을까 걱정부터 앞서게 된다. 그러나 의대생이 환자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환자의 양해를 구했다고 해도 의대생의 의료행위는 합법적일까.그 밖에도 사례1에서와 같이 케이스 준비를 위해 환자의 진료기록을 조회해본다든지, 환자의 차트를 복사한다든지 하는 일들은 의대생이라면 허용되는 의료행위일까.

일단 답부터 얘기하자면“No”이다. 현재 의료행위는 의료법 제2조에 규정된 의료인인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및 간호사만으로 한정되어 있다. ‘의학과 치의학, 한방의학 또는 간호학을 전공하는 학교 학생은 전공분야와 관련되는 실습을 하기 위하여 지도교수의 지도·감독을 받은 경우 제한적으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는 의대생 의료행위의 예외근거가 있기는 하나 사례1에서와 같이 지도교수의 감독 없이 의료행위를 한 경우 이는 법적으로 무면허의료행위에 해당된다. 또한 간호사의 허락을 받아 차트를 보았다 하더라도‘갑’은 정당한 열람권자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무단으로 타인의 진료를 열람한 것이 된다. 다만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따라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는 않으나 만약 환자가‘갑’을 상대로 무단열람의 민사소송을제기할 경우 책임을 져야 할 수 도있다.

그렇다면 만약 사례2에서와 같이 지도교수는 아니지만 레지던트 감독 하에 이루어지는 의료실습행위는 어떨까. 이 경우에 지도교수의 지도·감독 범위를 넓게 해석할 경우 무면허의료행위에 해당될 가능성이 낮으나 올바른 지도 감독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법적 충돌이 생길 수도 있는 문제이다.그 밖에 동맥혈채취와 같이 환자에게 물리적 상해를 일으킬 수 있는 침습적인 의료행위의 경우 지도교수의 지도 감독 하에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실제로 환자가 이를 가지고 소송한 경우 지도교수의 지도 감독이 합법적인 의료행위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패막이 되어줄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와 같이 실제 임상실습과 거리가 있는 의료법에 대하여 의대생이나 레지던트들조차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며 위에서 든 사례와 같은 일들이 거의 모든 실습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생길 수 있는 환자와 의대생의 의료행위간 법적 충돌에 대해 의대생 실습의 정당성을 위한 법적 근거규정이 시급한 현실이다. 지난해 9월 열린‘의료정책포럼’에서 이경권 변호사(의사)가 밝힌 주장에 따르면 학생들의 무면허의료행위는 의료법위반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 반드시 법적으로 처벌 대상이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그러나 현실적인 처벌가능성이 낮다고 하여 이러한 법 상태를 그대로 두어도 무방하다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한 최근 임상실습 교육과정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학생인턴 제도 등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뒷받침할 법령 정비가 뒤따르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중요한 것은 실습을 하는의대생이 법령에 구애받지 않고 실습을 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올바른 임상실습 교육과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지도교수 감독 하에 학생이 제대로 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지도교수가 없을 경우에 일어나는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아직 배우는 과정 중에 있는 의대생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임상교육을 시행하지 않은 의료교육기관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도록 의료법에 명시되어야 한다. 또 실습에 필요한 환자의 기록에 대해서는 접근권을 명문으로 보장해 의대생의 진료기록 열람 자체가 불법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혜영 기자/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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