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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수술 의사 처벌 강화, 최선의 정책일까?

 

 

보건복지부는 최근 의료인의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한 기준을 담은 ‘의료법 관계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공개했다. 비도덕적 진료행위에는 무허가 주사제 사용, 대리 수술, 오염·사용기간이 만료된 의약품 사용, 진료 목적 외 마약·향정신성 의약품 처방·투약, 진료 중 성범죄, 불법 임신중절수술 등이 포함됐다. 그 중에서도 임신중절수술에 관한 부분이 크게 논란이 되고 있다. 불법 낙태수술이 적발될 시 최대 12개월 동안 의사자격이 정지되며, 수술을 받은 여성 역시 처벌이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법상 낙태는 형사처벌 대상이다. 모자보건법상 합법적인 낙태 시술은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혹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등으로 규정해 두고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야만 낙태수술이 가능하도록 정했다. 하지만 정확한 임신 경로를 확인하기가 어렵고, 철저한 단속이 이루어지지 않아 암암리에 많은 낙태수술이 이루어졌다. 의료계에서는 매년 약 20만 건에 달하는 임신중절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의료계와 여성단체의 큰 반발에 부딪혀… 입장 번복

 

보건복지부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낙태수술을 모두 중단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들은 성명서를 발표해 법률과 현실의 괴리가 큰 것은 비현실적인 법률 때문이며, 이를 기준으로 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인 진료행위로 분류하고 처벌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여성단체들 역시 보건복지부의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법률이 임신하는 당사자인 여성의 권리와 입장을 전혀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들과 시민 수백 명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검은 옷을 입고 낙태죄 폐지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일명 ‘검은 시위’로 불리는 이번 시위는 지난 3일 폴란드에서 여성 수만 명이 검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가 정부의 전면적인 낙태 금지법에 항의한 데서 모티브를 얻었다. 시위 참가자들은 현행 모자보건법 등이 여성의 임신 결정권을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임신중절수술의 책임을 의료인과 여성에게만 떠맡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낙태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안 철회와 낙태죄 폐지를 요구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역시 공식 성명을 통해 “임신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임신에 있어 여성의 선택권과 접근권, 통제권은 철저히 박탈당했다”며 “여성의 몸은 종교인의 몸도 의료인의 몸도 행정가의 몸, 정치가의 몸이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이처럼 논란이 확산되자 복지부는 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의료인 처벌을 강화하려던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불법 낙태수술에 대한 행정처분 기준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관련 법령은 입법예고 중으로 구체적인 행정처분의 대상 및 자격정지의 기간은 전문가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적으로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불법 낙태는 형법상 위법 행위이기 때문에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처벌 수위를 종전대로 유지하거나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따른 자격정지 기간을 세분화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여성단체 “낙태 금지 이전에 제도 먼저 개선돼야”

 

의료계와 여성단체는 낙태죄를 묻기 이전에 현실에 맞춰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부인과의사회의 김동석 회장은 “우리나라가 1973년에 수정된 모자보건법을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산모의 건강·경제적 사정 등을 충분히 반영한 합법적인 낙태가 이뤄질 수 있도록 현실에 맞는 법 개정이 매우 절실한 상황”이라고 조언했다.
여성단체 역시 정부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시선으로 낙태 관련 사안을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낙태에 의해서 가장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는 사람은 여성인데, 낙태 여부를 국가에 의해 결정해야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낙태를 줄이고 출산율을 높이고 싶다면, 피임 교육이나 양육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한편 독일, 프랑스 등 많은 유럽 국가와 싱가폴, 호주, 러시아, 미국, 캐나다 등의 국가에서는 임산부의 요청 시 합법적인 낙태시술이 가능하다. 프랑스에서는 15~18세 여성들에게 무료 피임약을 제공하고, 임신중절비용 전액을 보험 지원하는 등 여성의 사회경제적 입장을 고려한 정책을 시행 중이다.
낙태에 관한 논쟁은 오래 전부터 이어져왔다. 낙태에 관한 입장이 어떻든 간에 드 누구도 낙태가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여성과 태아 모두에게 안타까운 일이며, 어느 여성도 즐거운 마음으로 낙태를 위해 수술대에 눕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이처럼 괴롭고, 심지어 의료보장조차 안 되는 그 시술이 매년 한국에서 몇 십만 건 이상 행해지고 있다. 불법 낙태가 많다고 낙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 보다는,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현실에 맞도록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법을 위해 개인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을 위해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태욱 기자/가천
<rlaxodnr9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