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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법’ 2018년부터 시행…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19년 만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과정에 대한 법률(환자연명의료결정법, 이하 연명의료법)이 19대 국회를 통과하여 지난 2월 제정되었다. 연명의료법은 2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8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연명의료법은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이용과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 및 그 이행에 필요한 사용을 규정함으로써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결정을 존중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임종과정”을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로, “연명의료”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의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연명의료법은 이러한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시술에 한하여 시도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보라매병원 사건’, ‘김할머니 사건’ 거쳐
연명의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 반영한 결과  

 

현재 의료기관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연명 의료를 놓고 의료진과 환자 사이에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연명의료행위는 급성기 상황에서는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지만, 회생 가능성이 없는 임종기 환자에게는 불필요한 고통만 가중시킬 수 있다.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은 연명 의료를 놓고 발생하는 갈등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머리를 다쳐 보라매병원에 내원한 김 모씨는 수술을 받았으나 뇌부종으로 자발호흡이 돌아오지 않아 인공호흡기를 부착하여 치료를 받고 있었다. 보호자는 경제적 이유로 조기 퇴원을 요구했고 환자는 인공호흡 중단 후 5분 만에 사망했다. 대법원은 보호자와 의료진에게 각각 살인죄와 살인방조죄를 선고했다.
2009년 ‘김할머니 사건’은 상반된 판결을 받았다. 당시 78세였던 김 할머니는 폐암 조직검사 중 일시적 심정지로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뇌손상을 입어 수개월 간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었다. 가족들은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평소 원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인공호흡기 제거를 병원에 요구했다. 하지만 병원은 이를 거부했고, 가족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진입한 환자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고, 환자에게 부착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도록 판결했다.

보라매병원 사건은 의사의 환자생명 보호의무와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충돌하는 의료 상황을 보여준다. 환자의 의사에 반하는 무의미한 연명의료가 이뤄지고 있으며 일반인은 연명의료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노인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9명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는 이를 뒷받침한다. 한편 김할머니 사건은 연명치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환자결정권에 기반하여 연명의료 중단이 인정되는 사건이었다. 결국 김할머니 사건 이후 수년간 국회에는 ‘존엄사법안’, ‘암관리법개정안’ 등이 제출되었고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19년 만에 결국 연명의료법이 통과되기까지 이르렀다.

 

아직 미흡한 점 많아…
재정 지원 및 인프라 구축, 사회적 분위기 조성 필요

 

연명의료법이 시행되기까지는 채 일 년도 남지 않았지만 인프라 구축 등 정부의 행정·재정적 준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의대 윤영호 교수(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는 ‘웰다잉 문화조성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창립총회 및 토론회’에서 “법률 통과 이후 정부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부분을 보면 인프라 구축이 부실하다. 인프라 구축에는 재정적 투입이 필요하다”면서 “정부의 2020년 1,400병상 목표는 당초보다 줄어든 것으로 호스피스 활성화 의지가 있나하는 의구심마저 든다”고 했다.
특히 대상자를 암환자 위주에서 다른 말기 환자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윤 교수는 “호스피스 확대질환에 포함되지 못한 치매나 파킨슨병, 뇌졸증 등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법제화의 전제가 되는 호스피스 관련 인프라가 구축돼야만 논란을 극복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현재 인프라 구축은 미약한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연명의료 중단을 누가 결정하는지의 문제도 항상 존재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그 방법 중하나로 연명 치료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순간을 대비해 미리 자신의 의사를 서류로 남김으로써 권한을 행사하게 하는 것이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시민 단체 캠페인의 일환으로 시작되었고 2018년 2월부터 법적 효력을 가지게 된다. 기본적으로 거부 가능한 법적 연명 의료를 표기하고 이에 거부하고 싶은 의료 행위를 더 추가할 수 있다.
제도적 장치뿐만 죽음에 대해 평소에 미리 생각해보고 준비해볼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죽음 또한 삶의 일부분이며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 각자가  연명 의료 중단, 혹은 존엄사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정창희 기자/이화
<patty9032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