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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된 ‘제제’

108호/문화생활 2015. 12. 8. 00:22 Posted by mednews

제재된 ‘제제’

 

 

 학창 시절 필독서로 권장되었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기억하는가. 주인공 제제는 행동은 영락없는 5살 꼬마 아이이지만 간간히 소설 속에서 던지는 대사 마디 마디는 어른이 된 지금에서 돌이켜 생각해도 가슴에 큰 울림을 준다. 너무 철이 들어버린, 마냥 귀여워만 할 수는 없는 제제가 최근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국민 여동생 아이유의 신곡의 뮤즈가 된 제제.
“제제, 어서 나무에 올라와 / 잎사귀에 입을 맞춰 / 장난치면 못써 / 나무를 아프게 하면 못써 못써”
경쾌한 리듬의 제제에게 대화하는 듯한 가사는 최신 가요답지 않게동요같은 느낌도 준다. 이 노래에 여론이 시끄럽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론적인 근거를 들어 노래 가사를 분석하며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로리타, 문제의 시작

 1955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소설 로리타는 주인공의 어린 의붓딸에게 느끼는 미묘한 감정을 세세하게 묘사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내용이다. 소설에서 기인하여 성인 남성이 어린 아동에게 특별한 감정,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사랑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는 경우를 ‘로리타 콤플렉스’라 한다. 로리타 콤플렉스는 질병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단순히 개인 취향의 한 부분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감정의 대상이 아동이며, 아동에게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에 벗어나 있다는 것이 대중들에게 있어서는 거부감을 들게 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아동 성범죄자들에는 모두 어느 정도의 로리타 콤플렉스가 깔려 있다고도 하며, 때문에 로리타 콤플렉스는 터부시 해야 할 비윤리적인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영화 ‘로리타’에서는 로리타를 향한 주인공의 시선이 역겨울 만큼 부담스럽게 그려지고 있다. 아동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과 성적인 감정 사이의 모호한 경계선에서 로리타 콤플렉스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동과 성

 ‘제제’ 논란의 또 한 가지는 순수한 아동을 노래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넌 아주 순진해 그러나 분명 교활하지 / 어린아이처럼 투명한 듯해도 어딘가는 더러워” 와 같이 아동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을 붙여 고의로 선정성을 부여했다는 데 있다. 보편적으로 아동은 마땅히 그들의 맑고 깨끗한 속성을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것을 깨뜨리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대면서 비난한다. 노래가사에서 나오는 ‘교활하지’ ‘더러워’와 같은 아동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상반되는 단어를 사용하므로서 아동에게 씌워져 있던 보호막을 벗겨내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 동안 아동이라는 이유로 건드리지 못했던 문학적인 요소들을 이끌어 냄과 동시에 아동과의 상호작용속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관계들에 대해서도 상상해 볼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 그 논란의 시작일 것이다. 물론 아무리 개성과 표현을 존중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수위는 지켜져야 하는 것도 맞는 말이겠지만 예술이라는 것이 또 그러한 수위를 넘나들며 여러 가지 가능성을 꿈꿔볼 수 있도록 하는 나름의 삶의 출구아닌가.

 

표현의 자유, 열린 해석

 법으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지나친 자유는 뭇매를 맞는 현실. 어디까지는 예술의 표현의 자유로 인정하며 다양성이라는 이름하에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예술에 대해 논하자면 옳고 그르다의 문제라기 보다는 항상 정도의 문제로 귀결되며 열린 결론으로 끝나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표현에서의 자유도 열려있지만 해석의 자유도 똑같이 열려 있어 아무리 표현하는 자의 의도가 순수하더라도 해석하는 사람의 배경에 따라 얼마든지 미풍양속을 해치는 저급한 작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해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컨센서스가 형성이 되고 이것이 다수에게 불쾌감을 주며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 작품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표현되었다 하더라도 그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그 사회의 통념이나 역사적인 배경, 정치적 현황 등에 의해 종합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해석하는 사람들은 작품에 대해서 나무만 보고 전체를 비난하기 보다는 전체의 맥락과 표현자의 의도를 충분히 숙지하고 여러 관점에서 감상하고 평가해보도록 노력해야 조금 더 다채로운 예술의 세계를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속의 제제는 아직도 우리에겐 말썽꾸러기이면서 너무나 어른같은 바로 그 제제이다. 하지만 1955년의 제제가 태어난 사회와 2015년의 제제를 불러낸 사회의 모습이dl 달라졌다. 그리고 그 동안 제제도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 왔다. 제제는 잘못이 없다. 다만 제제를 전혀 다른 제제로 보고싶어하는 우리가 변했을 뿐이다.

 

조을아 기자/을지
<eulahzum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