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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 뒤에 드리운 그림자, 도핑

108호/의료사회 2015. 12. 7. 23:03 Posted by mednews

성화 뒤에 드리운 그림자, 도핑

 

 

 

 세계반도핑기구(World Anti-Doping Agency, WADA)는 지난 11월 9일 러시아가 국가적 차원에서 도핑을 저질렀다며 2016년 브라질 올림픽 육상 종목들의 출전 금지를 권고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던 5명의 선수가 당시 도핑을 했다는 증거가 발견된 것이 이유였다. 출전 금지자 명단에 포함된, 당시 800m 금메달을 딴 마리아 사비노바는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대회 여자 800m부문 금메달 수상자이기도 하다.
 이 사건에는 러시아 자체 반 도핑기구도 연루되어 있었고, 국제육상경기연맹(International Association of Athletics Fedeations, IAAF) 라민 디악 前 회장이 직접 10만 유로를 받고 은폐해준 것이라는 의혹이 있어 프랑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상태라 더욱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경주마 흥분제 Dop이 어원
올림픽 최초 검사는 1968년

 

 서부 아프리카의 Zulu족은 자신들의 종교 의식을 위해 포도 껍질과 코카 잎의 성분을 이용한 ‘Dop’이라는 술을 마셨고, 그들을 식민 지배했던 네덜란드 사람들이 이 말을 전 세계에 퍼트렸다. 이후 1889년에 영어사전에 경주마에 사용되는 아편 등 마약류의 혼합물을 ‘Doping’이라고 등재하게 된 것이 우리가 아는 도핑의 어원이다.
경주마에 대한 도핑 테스트는 1911년 시행되었으나, 사람에 대한 약물검사는 1966년부터다. 앞서 언급했던 IAAF가 도핑을 금지하는 규정을 제정한 것은 1928년이었으나, 실제로 도핑을 감시하는 검사가 도입되기까지 50년의 세월이 걸린 것이다. 이는 생화학적 진단 기술의 미비도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도핑이 부도덕한 행위라는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스포츠 정신' 그리고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일반적인 인식과는 조금 달리, 제대로 된 도핑 테스트가 도입된 것은 전 세계 국가들이 새삼스레 공정한 스포츠 정신을 되새기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1960년 로마 올림픽 사이클에서 경기 도중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선수의 사인이 각성제 과다복용에 의한 심정지로 밝혀진 것이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이었다. 1966년 사이클 경기에서 최초의 도핑 테스트가 수행되었고, 올림픽에 도입된 것은 2년 후인 1968 프랑스 그르노블 올림픽이 시초다.
 WADA는 자신들의 목표로 공정한 스포츠 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도핑이 없는 완전히 이상적인 경쟁 환경을 만드는 것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외에 경쟁을 하지 않는 친선 경기들에 대한 가이드라인 또한 제시하고 있다. 이는 무분별한 약물의 오용과 남용으로 인해 몸이 망가지거나, 후유증에 시달리거나, 혹은 불의의 사고를 겪는 스포츠인이 없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또 다른 목표이기 때문이다.

 

벤 존슨, 랜스 암스트롱
그리고 박태환까지

 

 유구한 도핑의 역사에서 한국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도핑 사건은 아마도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의 ‘인간 탄환’ 칼 루이스와 그 라이벌 벤 존슨이 맞붙은 경기였을 것이다. 마라톤과 함께 올림픽의 꽃으로 보이는 남자 육상 100m에서 벤 존슨이 가져간 금메달은 그의 도핑이 밝혀지며 칼 루이스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벤 존슨을 너무 비난하지는 말자. 칼 루이스 또한 도핑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고환암을 극복하고 뚜르 드 프랑스 7연패를 차지한 사이클의 황제 랜스 암스트롱의 도핑 사실이 밝혀져 이제까지의 모든 기록을 말소당하고 명예를 잃은 것 또한 유명한 사건이다. 최근 개봉된 ‘챔피언 프로그램’이라는 영화가 이 추락한 영웅의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가장 유명한 최근의 도핑 파문은 박태환 사건일 것이다. 박태환 측은 2015년 1월 테스토스테론 주사를 맞았다는 WADA의 발표에 맞서 꾸준히 병원측의 과실을 주장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세계수영연맹은 박태환이 처음 스테로이드 양성 판정을 받은 2014년을 기준으로 18개월의 자격정지 처분을 내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의 메달은 모두 박탈당한 상태이다.

 

약물부터 자가수혈까지
광범위한 도핑의 세계

 

 도핑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약물일 것이다. 신체의 근육량을 증가시키거나, 신진대사를 일시적으로 증가시키거나, 혹은 집중력을 증가시켜주는 약물들이 해당한다. 이를 성과 증진(Performance-enhancing)형 약물이라고 한다.
 금지 물질 가장 첫 번째에 위치하며 또한 가장 유명한 것은 Anabolic androgenic steroid, 즉 박태환이 의도적으로 주사 받았다고 의심받는 물질이다. 테스토스테론 등이 포함되며, 근육의 성장에 관여한다. 보디빌딩 선수들 중 과연 정말로 안 맞는 사람이 있냐는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철저한 운동과 식단관리 이상 가는 근육의 성장을 보장하지만 심근 등의 불수의근도 커져 선수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 외 EPO나 성장호르몬 등의 peptide, beta-2 agonist(양궁, 사격, 당구 등 집중력이 필요한 스포츠에서는 beta-blocker), Hormone & Metabolic modulator, Cannabinoid (마리화나) 등이 금지물질이다. 특별히 이뇨제나 Masking agent 등 소변 샘플에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검출을 막는 물질들도 금지 약물에 포함된다.
재미있게도 이런 약물들 외에도 다른 도핑 방법들이 있다. WADA는 올해 배포한 2016년 ‘Prohibited list’에 두 가지 카테고리를 두었다. 첫째는 금지 물질(Subtance), 두 번째는 금지법(method)이다.
 성과 증진형 금지법에는 자가 수혈이 있다. 선수 본인의 혈액을 채취했다가 경기 직전에 투여받는 것이다. 선수는 일시적으로 더 강력한 지구력을 가지게 된다. 앞서 언급한 랜스 암스트롱은 사이클이 스테로이드 도핑 테스트를 처음 도입한 종목인 만큼 검사가 까다로운 것을 의식했는지 이 자가수혈법과 EPO 주사를 주로 이용했다고 한다. 2016년에는 Gene doping이라 하여 핵산이나 유전자 조작한 세포를 주사 받는 것 또한 금지목록에 추가되었다.

 

선수의 양심에만 맡길 수 없다
의사의 윤리정신도 중요

 

 2015년 유출된 IAAF 보고서에는 2001년부터 2012년까지 열린 육상 경기에서 도핑 테스트에 참가한 5,000명의 선수들 중 무려 800명이 도핑이 의심되며, 전체 메달 중 1/3을 도핑 의혹 선수들이 가져갔다는 내용이 있었다. 도핑이 기록에 직결되는 영향을 미치는 육상에서도 이렇다면, 감시가 상대적으로 소홀한 다른 종목의 실제 도핑 실태는 상상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E-sports 경기에서 집중력 향상 약물을 복용한 사례가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모든 이해관계에 우선해야 할 숭고한 스포츠정신을 해치는 도핑을 무조건 선수들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하나의 종목에 평생을 바친 이들이 약물을 바라보는 심정은 일반인들이 바라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심지어 이번 러시아나 과거 동독의 경우 국가적 차원에서 독려했다.
 그러므로 적절한 감시체계를 통해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의사의 역할도 중요하다. 앞서 언급했던 IAAF의 디악 회장의 2배, 20만 유로(2억 5천만원)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IAAF 반도핑 부서 책임자 가브리엘 돌레가 바로 의사이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환자의 진료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준형 기자/가천
<bestofzon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