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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vs 2012년 ‘대한민국 의대생으로 살아가기’

일제시대 의대생과 현대 의대생 전격비교

 

1938년 경성
내 이름은 닥터 진. 병원 옥상에서 정체불명의 환자와 마주친 후 타임 슬립 하고 말았어. 여긴 어디지? 관공서엔 욱일승천기가 펄럭이고 길가엔 긴 칼을 옆에 찬 형사들이 삼엄하게 순찰을 돌고 있어. 맙소사 1938년 일제 시대로 온거야! 방금 내 옆을 기다란 검은 망토를 휘두른 젊은 남자가 지나쳤어. 누군지 모르지만 따라가보자. 그가 도착한 곳은 지금은 한림대 치과병원 건물로 쓰이는 경성제대 예과 건물이야. 그는 그 이름도 당당한 경성제대 학생이었던거야. 당시 경성제대는 200명 밖에 인원을 뽑지 않았고 조선인은 50명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검은 망토는 모든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지. 사실 경성제대는 1919년 3·1운동 때 민간주도의 대학을 설립하려는 바람이 불자, 이에 맞서 일제가 ‘근대 문명의 시혜자’의 면모를 과시하고자 부랴부랴 설립한 대학 이었어. 그렇지만 동경 교토에 이어 일제의 여섯 번째 대학이자 일본 밖으로 다지면 첫 번째인 대학이었지. 당시 경성제대는 법문학부, 의학부, 이공학부 3개의 캠퍼스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당시의 의학부는 지금도 서울대 의대 캠퍼스로 이용되고 있어. 오호, 운 좋게도 검은 망토의 남자는 의학부 학생이었어. 그는 내가 현대로 돌아갈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 그럼 이 남자를 따라 의학부 캠퍼스로 이동해볼까?
맙소사, 의대 학생 중 조선인은 열에 세 명 정도야. 조선인들은 이렇듯 입학 시에도 차별을 받았지만 졸업 이후에도 대학병원에 근무하지 못하고 대부분 자의반 타의반 개업을 택하는 불이익을 받아야했지. 하지만 의학부 학생들은 다른 학부에 비해 집안이 여유로운 편이었어. 부형이 공무원인 경우가 법문학부는 열에 셋인데 반해 의학부는 열에 넷이나 되었지. 부형의 직업으로 공무원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농업, 상업이었어. 농사를 짓는 인구가 전 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어. 띠리링~ 종이 울려. 내 배가 꼬르륵 거리는 걸 보니 점심시간인가 봐. 학생들 대부분은 도시락을 꺼내어서 먹고 있어.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학생은 다섯에 한명 밖에 안 돼. 점심을 먹고 나니 다들 삼삼 오오 모여서 담배를 피는군. 의과대학 학생이지만 절반은 담배를 피워. 오히려 안 피우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야. 우리 병원 교수님들이 보았으면 혀를 찼을 광경이군. "장차 의사가 될 사람들이 담배를 피다니!"하고 말이야. 수업시간 종이 울리자 학생들은 천천히 교실로 돌아가. 이땐 피피티 같은 건 꿈도 못 꿀 일이지. 그런데 말이야, 원서로 이용하는 책이 너무 얇아. 벽돌 같은 해리슨 원서는 어디로 간 거야? 해리슨 책 두께의 반 만한데다 vol 1,2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군. 단권으로 커버 가능 했던거야. 수업이 끝나자 학생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 의대생은 수업이 끝나면 바로 도서관으로 가야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들이 하루에 강의시간 외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은 단 3시간이야.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이들의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반 정도였다는 거지. 8시간 이상 자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어. 이때는 컴퓨터나 다른 놀이기구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강의와 공부이외에 몰두하는 일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거나 친구들과 바둑을 두거나 홀로 독서를 즐기는 일이었어. 
이렇듯 1930년대 의대의 모습은 지금과 사뭇 다르다. 편의상 경성제대 의대생들의 일반적인 모습을 소개했지만 일제시대 공립 의료인 양성기관이 경성의전과 경성제대 의학부밖에 없었으니, 경성제대 의학부가 일제시대 의대의 모습을 대표하기에 무리는 아닐 듯하다. 그렇다면 현대 의대생들의 모습은 어떨까?

 

2012년, 담배의 해로움에 대한 관념은 제대로 잡혀있다

의대생의 흡연율은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제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제 70-80년대 의사 학회에 참석하면 학회장이 담배연기로 자욱할 정도였다고 하니 의사들 사이에서도 흡연의 유해성에 대한 인식이 바로 잡혀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공공장소 흡연규제 정책, 흡연 및 간접흡연의 해로움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효과로 90년대 후반부터 사회 전체적인 흡연율이 감소하면서 의대생의 흡연율도 급감했다. 의대생의 흡연율이 감소한데에는 여학생 비율 증가도 한 몫을 했다.
2003년 대구시, 경주시, 부산시, 진주시 소재 4개 의과대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남학생의 흡연율이 920명 중 31.5%, 여학생이 447명 중 2.2%로서 총 21.9%였다. 4년 뒤 2007년 서울대 학생 151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흡연학생은 10.7%로 모두 남학생이었다. 의대생들의 흡연율은 일반 성인 흡연율인 45%보다 훨씬 낮은 수치이지만, 미국 의대생의 흡연율인 2.5%에 비해서는 아직도 높은 편이다. 의사가 담배를 피우면 이상하게 여긴다는 외국의 사례와, 의대 내 학년이 올라갈수록 흡연율이 높아진다는 점, 흡연자의 건강행태가 비흡연자보다 좋지 않다는 결과 때문에 최근 들어, 의대 내 금연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역시, 졸업은 일찍 해야 된다

의과대학에 오면 흔히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졸업은 일찍 해야 한다.” 해마다 늘어만 가는 의학 지식들,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교육과정을 바라보면, 하루라도 일찍 의대에 들어온 것을 기뻐하게 된다.
의대생의 삶이 대부분 다 비슷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면,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학생들의 수면 시간은 ‘문화 충격’으로 다가온다. 1938년에는 8시간 이상 자는 학생들이 무려 72.8%에 달했으며,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 24분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는 2009년의 통계에서는 5시간 57분, 2012년에는 5시간 23분으로 6시간 이상 자기 힘든 오늘날 의대생의 수면 시간과 거리가 있다.
옛날 의대생의 학습 시간을 보면 괴리감이 더 느껴진다. 1938년 의대생의 공부 시간은 강의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평균 2.95시간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이 정도로만 공부한다면 유급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때는 해리슨이 한 권이었다.’는 모 노교수님의 회고를 떠올려 보면, 수면량의 감소와 학습량의 증가는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언젠가 세 권이 될 해리슨을 생각하면, 암의 특성을 6가지가 아닌 10가지로 외워야 할 후배들을 생각하면 오늘날 우리는 인간다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박민정 기자/성균관
<cindy@e-mednews.com>
허기영 기자/서울
<zealot648@e-mednews.org>

 

※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서울대학교 의학과 학생 대상 표본 추출
※ 1938년 : 『식민권력과 근대지식 : 경성제국대학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09년 : 서울대병원 수면의학센터 정도언 교수팀 자료,
 2012년 : 직접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