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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의대생, 따뜻하게 살기

중앙대 신경외과 김영백 교수님 인터뷰

 

신경외과. 단어부터 차갑다. 해부학 시간 수많은 신경의 주행경로를 외워봤다면, <브레인>을 시청했다면, 지루하게 이어지는 수술참관을 해봤다면, 신경외과 의사는 항상 신경이 곤두서있고,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사람일 것 같다. 하지만 차가운 금속성의 포셉마저 따뜻하게 보이게 하는 신경외과 교수님도 계시다는 사실. 중앙대학교 신경외과 김영백 교수님을 만나보았다.

복도 끝에 있던 교수님의 방에서는 TED강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교수님을 마주한 책상은 차가운 유리가 아닌 부드러운 나무로 된 것이었다.
“아, 이 책상도 제가 만든거에요. 저 컴퓨터책상도, 저 옷걸이도. 저 옷걸이는 향나무를 깎아서 만들었고, 나무가 있으니까 또 달이 필요할 것 같아서 벽에는 달도 그려놨어요.” 게다가 나무로 만든 앙증맞은 의자, 책꽂이에는 다양한 예술에 관련된 책과 수필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따뜻한 교수실이었다.

 

Q. 교수님의 학생시절은 어땠나요? 그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원래부터 미술보다도 음악, 특히 건축에 관심이 있어서 공대를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원서를 전기는 의대, 후기는 공대를 사오신 거에요. 의대를 떨어지면 공대를 가는 거죠. 그런데 어쩌다보니 의대에 붙어서… 오게 된 거죠.
학생 때도 음악이나 미술이 하고는 싶었죠. 그런데 잘 알다시피 시간이 없으니까. 학생 때도 레지던트 때도 거의 못하고 마음만 갖고 있었죠. 레지던트 마치고 나서야 하고 싶은 걸 했어요. 음악이 하고 싶어서 오보에를 배웠고, 미술 책이나 저널을 읽고 그랬죠.”

 

Q. 목공으로 작품을 만들어 전시회를 하신 적도 있으신 걸로 아는데, 흔히 ‘미술’하면 떠오르는 회화가 아닌 목공을 하시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왜 나무가 좋았는지를 말하기는 어려워요. 처음부터 나무를 좋아했어. 나무는 같은 부분이 없고 하나하나가 달라서 좋았죠. 내가 신경외과를 하면서 척추를 맡게 되니까 하는 일하고도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목공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외과의사는 실수하면 끝이잖아. 그런데 이건 실수를 해도 되요. 그게 사람을 기쁘게 만들어요. 농담 같지만 여기에 진리가 있어. 의사로서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반복되는 일, 이런 것들이 사실은 스트레스가 되거든. 취미활동을 하면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 그 자체가 스트레스를 풀어줄 수 있죠. 디자인을 미리 그리기보다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본능에 따라서 하는 편인데, 그러면 실패하지. 실패하면 어때, 괜찮거든. 다시 또 해보고… 일상에서는 할 수 없는 거니까, 기쁘지.”
 
Q. 미술과 의학, 이들이 만나지 않는 평행선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데요. 둘의 접점은 어디일까요? 
“개인적 관심이 있는 부분이고 기획을 해보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요. 어떤 사물이든지 미술이 될 소지가 있는데 의사들은 자신의 기구를 더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특별한 것을 하나 더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좀 더 개발하면 좋겠는데 핑계일진 모르겠지만 여유가 아직은 없네요.”

 

Q. 의대생들이 바쁘다고 해도 예술을 꼭 알아야 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의사가 다른 직업하고 같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 이상의 뭔가가 있어야 되죠. 아무리 노력해도 환자의 힘듦 자체를 다 해결해주지 못해요. 그 부분은 의학으로 해결이 안되요. 대부분 의사는 과학을 다룬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과학은 30이고 나머지 70은 인문적, 사회적인 면이 차지한다고 생각해요. 환자와 대화를 통해 정서적인 괴로움을 풀어주려면 과학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다는 거에요. 인문 사회적인 지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게 좋겠죠. 또 의사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야 하고. 바쁘다, 바쁘다 하는데 정말 내가 바쁜지 자문을 해 볼 필요가 있지. 물론 교육과정이 빡빡하지만 책을 못 읽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Q. 마무리하며, 학생들에게 조언 부탁드려요.
“일단 여유를 가지도록 노력하세요. 지나고 보면 어느 순간도 바빠서 아무것도 못하겠다 그런 순간은 없어요. 의사들, 특히 수술하는 사람들은 즐겁고 기쁜 일이 있는데도 ‘너무 좋아할 때가 아니다, 가라앉혀야지.’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아냐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생각하는거야. 감정의 진폭이 없이 항상 제어하는 거지. 좋을 땐 기뻐서 소리도 질러보고 슬픈 땐 울고 감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생활이 지루해지는 것 같아요. 풀어지고 싶을 때 풀어지려면 필요한 게 여유에요.
또 정말 중요한 건 학생 때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자기 것을 찾아야 한다는 거에요. 의대생으로서 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정말 고민을 해봐야 해. 난 인턴 때 받은 돈으로 파이오니어 오디오를 사고, 너무 기뻐서 계속 레코드판 사모으고  레지던트때는 더 비싼 오디오를 샀어. 이렇게 살면 인생이 재밌어. ‘달라이 라마’ 읽으면서 행복을 찾지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인생의 재미와 행복을 찾으세요.”

 

문지현 기자/중앙
<jeehyunm@e-mednews.com>

▲ “이건 신경외과에서 쓰는 수술도구인 포셉이에요. 몇 년 전에 교수님이 퇴임하실 때 선물로 드리려고 만든건데. 허리가 구부정한 사람 같은 느낌이죠? 구부정하지만 슬픈 게 아니라 뭔가 당당한 뒷모습이에요. 은퇴하시는 뒷모습을 슬프게 보지 않고 굉장히 희망적이고 다음사람들에게 뭔가를 넘겨주는 느낌으로. 양현모씨가 찍어준 건데, 그분도 굉장히 좋아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