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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적이지 않은’ 음악‘치료’ 이야기

황준성 씨와 채 민 부부를 통해 듣는 그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방법

 

나는 계명대 의대 합창단원이다. 합창을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던 경험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음악치료가 의학적인 관점에서 중요한 치료법의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대구광역시 달서구에 위치한 한국재활음악치료학회(예술치료센터). 그 자그마한 공간으로 들어서는 골목은 좁았고,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낡았다. 아직 피아노 학원이었던 예전 간판 그대로인 건물로 들어서자 창문 틈으로 느껴지는 따뜻한 바람, 그 바람결에 실려오는 노랫소리.

“꽃은 참 예쁘다. 풀꽃도 예쁘다. 이꽃 저꽃 저꽃 이꽃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몇 번이고 테이프를 돌려 들으며 경호는 인터뷰 내내 어눌한 발음으로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절대음감 피아니스트 발달장애 소녀’로 SBS 스타킹에 출연해 이루마와의 협연으로 큰 감동을 주었던 채란이가 낯선 손님은 아는 체도 않고 뭔가 열심히 쓰고 있다.

그 곳에서 한국재활음악치료학회장 황준성씨와 예술치료센터 원장 채 민 부부의 음악과 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Q.  일단 음악‘치료’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치료’라면 의료행위인가요?
한 마디로 음악이라는 수단을 통한 궁극적인 ‘심리’치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게 수동적(듣기), 능동적(음악활동) 치료가 있는데요. 음악을 듣기만 해도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음악의 수동적 치료효과에 해당하는데 멜로디나 화음이라는 요소가 우리 신체에 안정감을 주거나 특정 부분을 자극하는 것이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능동적 치료라 할 수 있는데 특히 가사는 자기 심리를 표현하는 언어적 도구나 회상의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죠. 음악치료는 이렇게 음악의 요소가 신체나 정신발달에 영향을 주는 것이 전체적으로 치료효과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음악치료를 포함한 모든 예술치료는 의료행위 자체가 아니기 때문에 올해부터 의사협회에서 ‘치료, 치료사’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고 결정했고 대신 음악 상담사, 음악 전문가로 불러야 합니다. 의학적으로 병명을 진단하는 것은 불가하지만, 공식적인 척도로 IQ테스트를 비롯한 사회 심리적인 임상적 진단을 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음악발달, 음악심리, 관계형성, 음악활동 등의 척도를 통해 이 아이가 지금은 어느 정도이고 어느 정도까지 회복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특수 아동들은 완전한 치료에는 한계가 있어요. 호전되면 다행이지만 보통은 퇴행되지 않게 유지하는 정도에요. 단지 사회생활과 관계유지를 위한 의사표현 등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훈련하는 과정이죠. 그러니 약물치료를 당연히 병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지적인 한계가 있는 발달 장애 아동들이 대상이기 때문에 치료상황을 판단하기 애매한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사회성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이용하는데 자기주장, 자기억제, 협력 등의 카테고리를 통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죠.

 

Q.  그럼 재활음악치료라는 것은요?
음악치료에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인 세 영역이 있는데, 재활치료는 거기다 경제적, 직업적 부분까지 포함한 것입니다. 채란이의 경우를 예로 들면, 발달지연 장애를 앓고 있던 채란이는 절대음감을 가진 최 교수를 만나고 음악적 능력을 발견해서 피아노를 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사회지능은 지금 거의 정상수준에 도달했거든요. 그런데 재활치료에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채란이가 피아니스트라는 직업을 갖게 하는 것이 목표인 것이죠. 혼자 독립할 수 있도록.
이렇게 사회에 나가서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도와주는 것이 ‘재활’ 음악치료의 목적입니다.

 

Q.  기관 소개도 부탁드려요. 그리고 이런 기관은 많이 있나요?
20명 정도의 아동,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고, 주 1회 성인합창단도 채 민 선생님이 지휘를 맡고 있습니다. 주로 발달 장애나 학교 생활하는 특수 장애 아동 등을 대상으로 합니다. 저희 기관이 우리 아이들 덕분에 TV출연을 몇 번 해서 부모님들의 연락이 많이 오긴 하지만, 언어치료, 미술치료, 음악치료 등 다른 시설도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Q.  현재 정신과에 연계가 안 되어 있는 걸로 아는데... 상황이 어떤가요?
정신과는 일반상담 및 진단, 처방을 하는 의사, 적절한 주사 및 처치를 하는 간호사와 사회보건(복지)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회복지팀은 입원 병동 안에서 집단 활동을 통한 사회 예행 연습하는 부분을 담당하는데, 현재 음악치료사들은 여기에 자원봉사 정도로 참여하고 있어요. 환자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프로그램은 엄두도 못내고 있고, 40분간 잠깐의 무료함을 달래는 레크리에이션 강사라고 보시면 돼요.
제가 실제로 실습을 나갔을 때도 병원 측이나 의사 선생님들은 예술(치료)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물론 자격증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치료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경계해야 하지만, 심리 치료가 중요한 요즘 이 분야를 진단적, 과학적으로 증명해 더 발전시켜야 하지만 시스템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은 현실입니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therapist가 진단까지 가능하고 음악치료를 정식치료의 한 부분으로 인정해 줍니다. 우리나라도 기관 수도 늘고 학회도 많이 생겼을 뿐 아니라 정부 지원 자체도 늘어나는 추세에 있어요. 지원이 발달장애에 국한되어 있었는데 학습장애, 노인들에게도 이제 바우처 사업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기관에 바우처를 주는 것에 그치고 병원과의 연계가 부족한 것이 문제죠. 그러니까 병원에서 직원을 뽑고 요청을 하지 않으면 도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음악치료사 보건복지부 바우처 자격증은 전문대졸 이상이면 교육 후 임상실습, 시험 통과를 거쳐 주어지는데, 이외의 민간 자격증이 많아 확실한 하나의 시스템 하에 있지 않고 중구난방 식인 것도 문제입니다.
시스템적인 문제 외에도 치료사들 내에서도 서로를 오픈하지 않고 배타적으로 ‘자신의 학회가 최고’라고 치켜세우는 태도나 분위기도 개선해 나가야할 점인 것 같구요.

 

Q.  (도중에 재혁이 등장) 아, 그럼 여기 있는 아이들 소개 좀 부탁드려요.
아까부터 계속 얘기했던 아이 이름이 박채란(10)이구요. 2009년부터 저희 기관에 오기 시작해서 벌써 4년째입니다. 악보도 볼 줄 모르는 아이가 쇼팽을 한 번 듣고 외워 칠만큼 천부적 재능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발달장애 2급인 조재혁(17)이란 친구는 일반고에 진학해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악보를 보고 연습을 많이 해요. 그 때만큼은 집중력도 높아지고요. 또 아까부터 마이크를 들고 있는 아이는 김경호(10)인데요. 지적 3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10m도 안 되는 문에서부터 피아노까지 가는 데에 40분이 걸렸는데, 4년의 시간동안 노력한 결과 얼마 전 작은 무대에서 ‘뻐꾹뻐꾹 뻐꾹새’ 노래를 부르는데 와, 그 때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아,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자면 재혁이는 스타킹에 나온 채란이의 모습을 보고 동기부여가 되어 이 기관에 와서 더 열심히 연습하게 되었다고 하고, 도경이라는 아이는 재혁 학생을 보고 감동받아 피아노를 시작했답니다. 이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몸으로 직접 느끼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이렇게 사랑은 퍼져나간다는 것이죠.

 

Q.  채란이 같은 음악적 재능이 없더라도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치료 첫 단계에서 바로 효과가 나타나긴 힘든 게 사실입니다. 치료자와 대상자 간의 라뽀가 형성되고 피아노, 바이올린, 난타, 드럼 등을 다양하게 시도하면서 개개인의 상황과 증상에 맞는 음악 및 악기 찾는 데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죠.

그리고, 가장 명심해야 될 것이 어떤 거창한 결과물을 내는 것이 아니라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라는 겁니다. 모든 아이들이 채란이처럼 쇼팽을 치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죠. 자꾸 채란이를 예로 들게 되는데(웃음) 채란이의 경우도 쇼팽을 치게 된 것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연습과정에서 선생님과의 약속을 통해 의사소통을 배우고 처음에는 하지 못했던 자기표현 등을 하게 된 것이 중요한 변화입니다.
경호도 무대 위에서 ‘뻐꾸기’ 노래 한 곡 부르는데 4년이 걸렸는데, 결과로만 보면 최고로 못하지만 그 과정에서 경호의 변화는 어떻게 보면 채란이보다 더 컸다고 할 수 있는 거죠. 사랑은 기다림인 거 같아요.

황준성, 채 민 부부는 사비를 들여서 1년에 한두 번 비정기적으로 ‘천사들의 합창’이라는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처음에는 기관에 있는 아이들의 발표회 형식으로 시작했다가 7회째를 맞은 지난 공연에서는 일반인 공연도 함께 해 아이들의 교육효과도 높이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통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공연을 매 회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서 더 큰 감동을 얻고 있는 터라 돈이 많이 들어도 그만둘 수가 없단다.
‘꽃은 예쁘다’고 노래를 부르던, 꽃보다 더 예쁜 경호의 손을 잡고 배웅까지 나온 부부는 “의사가 될 우리 학생들은 음악치료를 비롯한 예술치료의 필요성을 인지해서 제 2의 채란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수평’의 관계로 응해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말을 거듭 반복했다.


하진경 기자/계명
<jinkyeong@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