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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보다는 펜, A+보다는 B-의 포텐셜을 믿는 의학기자 홍혜걸

 

‘의학박사’, ‘국내 의사출신 의학전문기자 1호’, ‘중앙일보 최연소 논설위원’ - 모두 한 사람, 의학전문기자 홍혜걸에게 붙는 수식어들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92년부터 근 15년간 중앙일보 기자 및 논설위원을 지냈던 그는 현재 다양한 의학정보를 전달하는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이같은 탄탄대로를 달려온 홍혜걸은 어떤 사람일까. 그의 진짜 이야기가 궁금해 직접 도곡동 사무실을 찾았다.

20평 남짓한 공간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카메라를 비롯한 각종 촬영기구들. 사무실 한 켠의 소파에는 노란 점퍼를 입은 홍혜걸씨가 앉아있었다. 예상했던 반듯한 엄친아가 아닌, 왠지 모를 ‘자유분방함’과 ‘거침없음’이 배어나왔다.

 

▲ 프리랜서로 일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하시는 일이 궁금합니다.

중앙일보를 2006년도에 나왔어요. 그 이후로는 프리랜서죠. 이제 의학기자 일을 하지만 매체에 소속되지 않고 신문이나 방송에 자유롭게 출연해서 글을 기고하거나 방송출연도 하고 있습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예전에는 신문사나 방송국이 제왕적인 권력을 구가했지요. 그래서 정보가 왜곡이 되고 과장된 언론보도가 나갔는데 지금은 통신의 발달로 그 카르텔이 깨진 겁니다. ‘나꼼수’가 대표적이죠? 1인 미디어. 그런데 이제 의학도 이런 게 필요한 시대가 됐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최고의 통신망을 갖추고 있고, 의료 면에서 비용대비 최고의 인력을 갖고 있는 나라에요. 이 두 가지를 접목해서 의료정보 분야에 훌륭한 미디어를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비온뒤’* 라는 걸 통해서 전문가들의 인터뷰나 시술하는 장면을 누구나 볼 수 있게 하는 거죠. 지금까지의 의학정보는 활자 위주였지만 우리는 동영상으로 직접 보여주는 겁니다. 원하는 정보를 디테일하게 지원하는 동영상의학백과사전, 또는 의학방송국 - 이런 역할을 하는 거죠. 인터넷만 되면 어디서든 볼 수 있게요.


▲ ‘비온뒤’는 메디컬 포털의 초석쯤이 되겠군요. 전망이 좋다고 보십니까.

지금은 몇 군데 안 되는데 앞으로 많이 생길 거예요. 진입장벽이 낮거든요. 왜냐면 봐봐. 우리 사무실에 카메라에 뭐 별거 없죠? 개인이든 병원이든 관심만 있으면 찍어서 동영상 올리는 거 어렵지 않아요. 문제는 이걸로 어떻게 머니메이킹을 하느냐지.


▲ 사실 그 부분이 궁금합니다.

 지금 돈 버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길게 보고 투자를 하는 거지. 아마 광고는 가능할 것 같아요. 메디컬포탈이 되면 사람들이 많이 와서 트래픽이 많이 걸리고, 동영상 시청이 올라가면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나 인터넷사이트가 우리 쪽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 것들은 나중에 생각하고, 결국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의학기자인데 좋은 일 좀 해보자는 취집니다.


▲ 결국 취지는 어려운 의학지식을 일반인들한테 쉽게 알리려는 거군요.

그렇죠. 아직 덜 알려졌지만, 컨텐츠는 지금 300개 정도 만들었거든요. 앞으론 수만 개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들어와서 더 많이 볼 수 있게 할 겁니다. 그리고 꼭 일반인에게만 메리트가 있는 건 아닙니다. 의사들을 위한 사업이기도 해요. 의사들은 자기가 하는 수술이나 약물이나 진단에 철학이 있는데, 막상 병원에 오는 환자에겐 똑같은 얘기를 해야 합니다. 대학교수나 개업의들은 그것에 대한 불만이 있어요. 우리가 그걸 해결해주는 거지. 그 다양한 철학을 위한 마당을 열어드리겠다는 겁니다. 양심과 실력 이 두 가지만 겸비가 되면, 누구나 와서 무료로 찍을 수 있고 또 우리 국민들은 그걸 다 보는 거죠. 선생님들도 와서 많이 봐봐(웃음). 포탈을 확대하면 의대생들을 위한 강연도 많이 만들고 싶어요. 의과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하고 싶어 하는 교수님들도 많아서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결국 ‘비온뒤’는 의학기자 홍혜걸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칼보다 펜을 선택하고, 보통의 의사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 그가 어떻게 ‘의사’와 ‘기자’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을까.


▲ 남들과는 상당히 다른 길을 걸어오셨는데, 학생시절도 그러셨나요?

나는 별명이 골동품이었어요. 학교에선 아주 케케묵게 그냥 조용히 살았지. 본과 2학년 때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학생을 만났는데 잘 진행이 안됐어요. 그래서 어린마음에 많이 상처 받던 기억이 나고. 그럴 때 괜히 분풀이를 하잖아요. 그냥 의사가 되지 말고 엄청나게 멋있는 모습으로 금의환향해서 나타나서 복수(?)하려고 했죠. 어떤 생각을 했냐면 우리나라 최초로 사법시험까지 합격하는 그런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을 해요.


▲ 그 시절엔 그런 의사가 없었나요?

없는 줄 알았지. 그래서 법학책 사서 실제로 공부를 했어요. 사시 준비를 했다고. 그런데 마음대로 안 되죠. 인턴 갔다가 군의관가가지고. 군의관 때도 계속 법학공부는 했는데 내가 허리를 좀 심하게 다쳤어요. 결국 1년 만에 의병제대하고 나왔는데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요. 실연당한데다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는지.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는데 마침 중앙일보에서 의학전문기자를 처음으로 뽑는다고 공고가 났어요.


▲ 그게 국내 최초였나요?

의사출신 기자는 나보다 15년 전에 한명 더 있었어요. 의학전문기자 타이틀은 내가 최초야.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했어요. 그런데 하다보니까 재미있고 보람도 있고... 내가 술 마시고 사람만나고 글 쓰는 걸 좋아해요. 너무 적성에 맞아. 그렇게 시작한 게 계속 이어진거에요. 92년부터 2006년까지니까 거의 한 15년 정도 한 거지. 요약하면, 특별한 사명감이 있어서 한 건 아니고 우연히 중앙일보에서 의학전문기자 공고를 보고 시작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학교 다닐 때 한번 호되게 차였는데 열받아서 더 멋있는 모습으로 변신하기 위한 엉뚱한 행동이 동기가 됐다 -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네.


▲ 의외네요. 쉽지 않은 커리어인데, 우연히 입사하셔서 남부럽지 않게 쌓으셨네요.

내가 신문사 들어와서 거의 10년 다 돼서 방송 나오기 시작했죠. 반향이 좋았지. 시청률도 잘 나와서 여기저기 불려 다녔지. 한때 KBS, MBC, SBS 등등 다섯 개 채널에 짤막한 라디오, TV까지 합치면 11개를 방송을 한 적도 있어요.
사람들은 의사로 기자 들어가면 누구나 대접받고 TV 광고도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10년 동안 맨땅에 헤딩한 걸 몰라요. 그 과정이 있었다는 걸 알아야 돼요. 나는 수습도 똑같이 다 했어요. 사회부 동기기자들이랑 새벽4시에 경찰서, 병원 돌아다니고 그랬죠. 차별 없이 한 10년 치열하게 하니까 신문사가 나를 믿어준 거고. 그래서 나도 후배들에게 너도 신문사 들어오면 의사 프리미엄을 벗고, 똑같은 한 사람의 기자로서 적어도 몇 년 동안 너의 위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들어왔다고 바로 폼 잡고 다니지 말라고 했죠.


▲ ‘의학전문기자’에 대한 수요가 꽤 컸군요.

그때 사실은 다른 분야의 전문기자도 많이 뽑았어요. 법률, 외교, 음악, 철학, 또는 경제 등 다양한 분야로 박사급을 뽑았는데, 지금 다 사라지고 의학기자만 살아남았죠. 지금 보건의료비가 GDP의 6%정도 될 거예요. 미국은 한 15%정도 돼요.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이 자동차나 집보다 보건의료에 관심이 높아지니까 그 수요는 계속 증가할 거라고 봐요.

지금 의학전문기자가 없는 매체가 없습니다. MBC, KBS, SBS도 다 있고 한겨레도 있고. 매일경제도 있고. 이건 나의 공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언론사에 의사출신 기자가 한명쯤은 필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건 나의 큰 자부심입니다. 다만 끝까지 언론사에 남지 못하고  뛰쳐나와 후배들을 못 챙겨준 게 미안하죠. 황우석 사건 때 하도 데여가지고. 지금 현업에 있는 의학기자들도 많잖아요. 그 사람들도 내가 잘 챙겨야줘야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걸 만회하기 위해서 ‘비온뒤’를 하는 것도 있어요.



그가 걸어왔던 길이 역동적이니만큼, 바라보는 세상 역시 역동적이다. 의학은 보수적인 학문이지만 의학과 사회가 만나는 접점은 꽤나 유연하다. 그 경계에서 소통을 시도해온 홍혜걸이 의사와 의대생들에게 하고픈 말은 무엇일까.



▲ 지금 주력하고 계시는 일반인과 의학의 ‘소통’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의사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우리 의사들은 의대와 수련생활 10여 년 동안 의학에 대한 숲을 배웁니다. 반면에 일반인들은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의, 상당히 지엽적인 지식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의사들이 할 역할은 여전히 많습니다. 미디어가 협조자라고 생각해야 돼요. 의사들이 미디어에 올바른 정보를 주고, 함께 힘을 합치는 거죠. 그리고 파이를 키워야 합니다. 의사들끼리 작은 파이를 놓고 아귀다툼하는 건 매우 잘못된 겁니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미디어, 인더스트리, 리서치 등등도 있고 다양해요. 화이자, MSD 이런 제약회사들이 시가총액이나 시장규모가 어마어마한데 디렉터들이 다 의사에요. 이지함 피부과라고 들어봤어요? 이 사람들이 레이저 같은 미용피부를 도입한 겁니다. 처음에는 의사들이 심하게 비난했어요. 돈밖에 모른다고, 질병을 치료하지 않고 이런 걸 하느냐 욕했죠. 그런데 요즘 피부과의사들 중에 미용 안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결국 그 사람들로 인해서 파이가 커진 거예요. 의사들이 자기 전문적인 영역에서 바운더리를 넓혀 가야지 이 작은걸 나눠먹겠다고 하는 건 잘못됐다는 겁니다.


▲ 시야를 넓히라는 거군요.

5년의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꼭 밟을 이유는 없어요. 여러분도 그냥 개업의가 되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항상 눈을 더 높이 뜨고 재밌게, 더 오래할 수 있는 일이 또 뭐가 있나, 의학과 접목할 수 있는 분야가 뭔지 고민을 많이 해봐요. 지금까지는 플랫폼의 시대였죠. 플랫폼을 근사하게 만들고 포탈이든 통신회사든 그걸 장악하려고 피터지게 싸웠는데 이제는 플랫폼은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은 ‘진짜 컨텐츠’의 시대고, 여기에 가장 어울리는 분야가 바로 의학이야. 발전분야가 무궁무진한 게 의학입니다. 포텐셜이 크잖아요. 여기는 앞으로 노다지에요.


▲ 보통 학생들은 학교에서 임상 공부를 하며 당연히 임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또 다른 길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접할 창구가 많지 않아 보입니다.

물론 한 사람의 임상의사도 지역사회에 충분히 의미가 있어요. 하지만 모두가 다 그렇게 되는 건 아니라고 봐요. 의과대학 공부 졸업을 하고 나오면 의사면허를 따지. 일단 그건 하세요. 면허가 주는 안정감이 있으니까. 기본으로 영어는 잘 배워두고, 그 외에 컴퓨터와 관련된 오퍼레이션을 잘 다루도록 노력하고. 그 다음부터 이제 눈을 좀 돌려보세요. 여러분들한테 나도 구체적인 얘기를 못하겠습니다만, 분명한 건 우르르 몰리는 데로 가면 n분의 1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해마다 의사가 5천 명이 나옵니다. 임상의사만이 답이 아니고, 다른 분야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제약회사로 들어간 친구도 있고, 방송작가가 된 후배도 있어요. ‘외과의사 봉달희’도 그 후배가 쓴 겁니다. 또 연구하러 미국에 가거나 대체의학 한다고 하는 친구도 있어요.


▲ 결국 학창 시절에는 ‘기본적인 능력’을 키우라는 말씀이신가요.

중요한 건 ‘포텐셜’입니다.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항상 포텐셜을 중시하는 학창생활을 보내라는 겁니다. 퍼포먼스를 중시해선 안돼요. 지금 당장 시험을 잘보고, 학점을 잘 받고, 인기 있는 과에 들어가고 ? 이런 게 퍼포먼스 베이스 라이프에요. 퍼포먼스는 학생들이 취할 자세가 아니야. 학생은 무조건 포텐셜이에요. 지금은 더디지만 미래의 저력을 쌓는데 도움이 되는 것, 그런 걸 하세요. 그래야만 나중에 큰 열매를 얻습니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면을 잘 들여다보고, 많이 어슬렁거리고 기웃거려보세요.


▲ 마지막으로 당부해 주실 말씀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태도가 냉소적이에요. 조금만 이익이 되면 매달리고, 안되면 관심 없고. 그런데 그게 참 보기 안 좋습니다. 내 지론은 A+ 대신 B- 받으면서 포텐셜을 가진 학생이 되라는 겁니다. A+ 받으려고 시달리면서 완전히 고갈시켜버린 학생보다, B-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면서 안목을 키우고 진짜 실력을 키우는 학생이 성공한다고 믿거든요. 공부든 연애든 학생답게 낭만적이고 순수하고 착한, 나이브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야만 소신 있게 창의적인 길을 갈 수 있어요. 손해 본다 생각하지 말고 우직하게. 그게 스티브 잡스의 이론 아니에요. Stay foolish, Stay hungry.

 

김정화 기자/한림
<eudaimonia89@e-mednews.com>
장진기 기자/울산
<showbu@e-mednews.com>

 

※ 비온뒤 (http://www.aftertherain.kr/) : 홍혜걸씨가 직접 운영하는 홈페이지로 각종 생활의학정보에 대한 기사, 강연, 동영상 등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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