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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시 공부가 비싸진다

 

국시 문제집 가격 갑자기 큰 폭으로 인상


의대협 ‘합리적인 가격의 국시문제집 제작 계획 중’

 

매년 신학기가 되면 의대생들은 새 책을 구매하기 바쁘다. 해리슨 등의 원서도 필요하고 퍼시픽 매뉴얼같은 책도 필요하다. 하지만 국시를 앞둔 본과4학년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책은 국가고시 대비 문제집. 대한민국 의과대학 학생이라면 국시를 위해서 누구나 살 수 밖에 없는 책이다. 많은 문제집들 중 학생들이 가장 많이 보는 책은 P사의 KMLE 예상문제풀이.
그런데 그 책의 가격이 올랐다. 올라도 너무 많이 올랐다. 학생들의 반발도 많고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문제집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다.

 

3.5% 대 38%

 

KMLE 문제집 시장에서 가장 많은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문제집은 P출판사에서 나오는 KMLE 예상문제풀이. 이 문제집의 2010년판 전권 세트 정가는 21만 7000원이었다. 2011년에는 세트의 정가가 23만6000원으로 전년대비 인상률로 봤을 때 9%정도 인상된 가격이었다. 인상률이 그리 낮은 편은 아니지만 그 전년도보다 2만 원 정도 비싸진 것으로 학생들이 크게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올해 2012년 세트의 정가는 32만5000원. 9만 원 정도 인상된 가격이며 인상률로 봤을 때는 대략 38%, 즉 40% 가까이 오른 가격이다. 당장 여기저기서 학생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왜 이렇게 갑자기 많이 오른 것일까? 먼저 주요 원인이 원자재 및 인건비 상승이라고 생각해보자. 실제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거나 제작하는데 인건비가 추가되면 출판사 입장에서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2012년 1월 생산자물가상승률은 전년동월대비 3.4%, 그리고 2월 생산자물가상승률은 전년동월대비 3.5%. 물론 한국은행에서 발표하는 자료가 실제와 차이가 있고 소비자물가상승률과도 차이는 있다. 하지만 38%에 맞추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수준이다. 게다가 전년도 문제집 가격상승률이 9%라는 것에 비춰봤을 때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덤핑은 끝내고 수익 창출?

 

또 다른 이유는 타 출판사와의 취재를 통해 유추할 수 있었다. 경쟁출판사 중 하나인 K출판사는 확인 결과 KMLE 문제집 가격이 2008년에는 정가 기준으로 37만 원, 2009년부터는 40만 원 선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P출판사의 문제집에 비해서는 상당히 비싼 편. K출판사의 한 관계자는 이 사항에 대해 “문제집이 비싼 이유는 전권 올 컬러 출력이고 P출판사의 문제집에 비해 페이지수도 많다. 그리고 P출판사는 문제집의 점유율이 낮았던 당시에 덤핑 전략으로 점유율을 높여갔다.”고 말했다. 덤핑이란 이윤 창출보다 과잉생산 상품의 처분, 특정시장의 확보, 타인 시장의 탈취 등의 이유로 손실을 감수하면서 판매하는 것을 뜻한다. 즉 신생 출판사였던 P출판사에서 어느 정도 국시 문제집 시장을 확보했으니 지금까지의 손실을 메우고 앞으로의 이윤 창출을 위해 현재의 가격으로 올렸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경우에는 서서히 가격을 올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P출판사의 문제집은 국시의 기본서라 할 정도로 점유율이 상당히 높아졌고 학생들의 의존도도 높아 이렇게 큰 폭으로 가격을 올려도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또 다른 의혹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하 국시원)은 2010년에 치러진 제74회 의사국시 문제를 복원해서 출판사에 제공한 8명과 제공받은 문제로 문제집을 만든 3개 출판사를 저작권 침해 및 업무 방해로 고소했다. 이전부터 국시원은 문제집을 제작하는 출판사들에 경고문을 보냈지만 출판사들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문제집을 발간해왔다. 결국 지난 1월 19일 서울동부지방법원은 기소된 3개 출판사에 각 100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시장의 특성상 출판사들의 고객층이 그리 두텁지 않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이 벌금형은 출판사들에 큰 타격을 주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 벌금형으로 인해 국시 문제집의 가격이 오르지 않았을까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의대생신문에서는 P출판사에 문제집 가격 상승에 대한 취재를 요청했지만 출판사 측에서 거부 의사를 밝혀 벌금형과 문제집 가격 상승 사이의 관계는 물론 문제집 가격 상승의 다른 이유도 확인할 수 없었다.

 

의대협 “의대협 차원에서 문제집 만들겠다.”

 

국시 문제 유출로 인해 학생들이 법원에 기소되는 일이 일어났고 국시 문제집의 가격이 뚜렷한 이유 없이 크게 오른 가운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이하 의대협)은 자체적으로 국시 기출문제집을 만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대협 남기훈 의장은 “학생들이 고발당한 것과 국시 문제집 가격이 오른 것은 다른 문제가 아니라 같은 문제”라며 “의대협 차원에서 기획하고 있는 기출문제집으로 이 두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해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또한 남 의장은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의 도움도 받을 예정이며 문제집에 들어갈 문제는 공개된 문제, 기출 문제, 그리고 그 문제들을 변형한 문제를 추가로 싣는 방안을 고려중이다.”라고 했다. 문제집의 형식에 대해서는 이미 의대협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여기서 의대협에서 해결해야 할 점은 문제의 저작권과 문제집의 가격이다. 이 두 가지 문제가 현재 출판사들의 문제이자 의대협에서 국시 문제집을 기획하게 된 계기이다. 이에 대해 남 의장은 “기출문제의 사용 권한에 대해서는 국시원과 충분한 협의와 대화를 통해 해결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문제집의 가격에 대해서는 “가격 면에서의 이윤은 집필진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 등을 위해 단순히 ‘인쇄비’만을 받을 수는 없겠다. 하지만 최근 일부 출판사에서와 같은 터무니없는 가격의 상승 등을 견제하기 위해 문제집을 기획하고 있는 만큼 이윤 추구가 아닌 실비에 가까운 가격을 책정할 것이며 퀄리티 면에서도 현 국가고시 문제집보다 더 높은 퀄리티의 문제집을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상품의 가격이 적정가격 이상으로 올라가면 그 수요가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시장논리. 하지만 현재 국시문제집 시장과 같은 독과점 시장에서는 이 논리가 적용되기 어렵다.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물론 기업은 수익을 만들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학생들의 지갑은 출판사의 가격정책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봤을 때 의대협의 국시 문제집 제작이 앞으로 국시 문제집 시장 판도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장진기 기자/울산
<showbu@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