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친구의 삶 들여다보기

의대생, 공대생을 만나다

구름이 엷게 깔린 토요일 오전, 낙성대역. 찬바람이 매섭게 불던 지난밤과는 달리, 포근하다. 윤 군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이내 근처의 한 까페로 들어가 어물어물 자리를 잡는다. 손님은 많지 않다. 중학교 시절부터 꽤 친하게 지내오던 사이. 하지만 다른 길을 걷게 되면서 최근까지는 일 년에 얼굴 한 번 보기가 힘들었다.
윤 군은 이듬해 봄부터 시작될 대학원을 준비하며 비교적 여유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던 터였다. 2006년 S대에 입학, 전기공학을 전공한 뒤 지난 학기를 끝으로 학부를 졸업하고는 대학원 개강까지 몇 달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말 어느 연구실로 갈지 결정되고 지금은 그저 한가하게 지내고 있어.” 그가 곧 말을 잇는다. “다들 이렇진 않아. 보통은 학부 마치고 바로 다음 학기로 들어가거든.”
- 학부 생활은 할만 했니. 힘들다며.
“3학년이 제일 힘들었어. 전공 4개 정도 듣고 교양 두 개 더해서 18학점. 그러면 일주일에 18시간 수업이지.”

- 수업시수로만 치면 많지 않구나. 비는 시간에는?
“사람마다 달라. 나 같은 경우는 동아리 활동이랑 피아노 같은 취미생활에 집중했던 편이지만, 공부에 파묻혀 지내는 애들도 있고, 정신 못 차린 애들도 있고. 그래도 2학년 때 비해서는 비교적 열심히들 하는 편인 것 같더라. 2학년부터 전공이 시작되긴 하는데, 3학년보단 부담이 좀 덜한 편이라.”

- 말만 들으니까 되게 편했던 거 같다?
“시험기간엔 남는 시간 죄다 끌어서 공부했지. 시험기간 아닌 때는 수업만 잘 듣고 숙제 하는 편이었지만, 다른 애들도 평소에 공부하는 애들만 많지는 않았을 걸. 의대랑은 좀 다른가? 우린 외우는 과목들이 아니라서,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하고 성적의 연관성이 덜하거든. 과목마다 성격의 편차가 크기도 하고.”

- 우린 따로 시험기간이라는 게 없어. 일상이 시험이라. 시험은 한 학기에 보통 얼마나 쳐?
“어떤 과목은 세 번, 어떤 과목은 두 번, 반반 정도 비율로. 그러니까 횟수로 따지면 한 학기에 네 번쯤 시험기간이긴 한데, 분산돼 있으니까 모든 과목의 시험이 몰리는 기말 빼고는 시험기간이라고 막 느껴지는 편은 아니야. 반대로 생각하면 맨날 시험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숙제 좀 몇 번 내고 하다 보면 시험이 있는 거지. 치고 나면 또 다른 과목 숙제 내고, 또 시험 있고. 그러다보면 쭉쭉 기말까지 가는 거지 뭐.”

- 숙제가 많구나?
“시험 이외에는 숙제와 실험이 학교수업에서 받는 로딩의 전부라고 보면 돼. 과목마다 정도가 다르긴 해도 숙제가 안 나오는 과목은 없어. 평균내면 과목당 2주에 하나 정도. 문제 푸는 건데, 숙제 하나당 3~5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아. 실험은 과목당 매주 두 시간씩 들어가 있고 기말 프로젝트를 보통 두세 명이 한 팀이 돼서 하는데, 이게 시간이 많이 걸리지. 평소 때 조금씩 해서 1/3 정도 해두고 기말 치고 이틀쯤 밤새면 결과 나오는 정도랄까. 실험은 한 학기에 한두 과목 정도씩 해. 우린 실험이 많으면 힘들어. 시간이 많이 드니까.”

- 의대는 시간에 쫓기다 보니까 내 시간을 갖기가 힘든 편이야. 그러다보면 자기계발 같은 것도 힘들고.
“우리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은데. 관심 있는 연구실에 미리 가거나 그런 건 있어도, 형식적인 스펙쌓기 같은 건 확실히 없고 인턴쉽 같은 것도 별로 안 해. 외부 동아리 활동 같은 걸 적극적으로 하는 애들도 흔치 않고. 다들 자기계발이니 스펙이니 하니까 우리도 막연한 불안감 같은 건 있지. 하지만 뭔가를 구체적으로 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그렇게 남는 편은 아냐. 너희는 특히 그렇지만 우리도 어느 정도 학교 공부를 따라간 이후에 자기 길을 찾는 거거든. 문과 쪽 애들은 더러 하고 있더라. 거긴 아무래도 우리보단 스스로 진로를 만들어가는 편이겠지.”

- 우린 과생활이 제법 활발한 편이야.
“그런 건 좀 없어. 필요한 전공수업 다 같이 듣는 거 외에는. 1,2학년 때는 MT도 가고 했는데 3학년쯤부턴 없어. 선후배 간에도 끈끈하거나 끈적하거나 그런 것도 없고. 각자 자기 할 일들 하고 지내는 식이니까. 입학할 땐 220 명 뽑지만 그 안에서 과가 갈라지고 또 반으로 갈라지고. 다른 반이면 MT도 안 가고 그러니까 사실 반애들끼리 밖에 모르는 거야. 수업을 같이 듣다가 알게 되는 수는 있겠지만. 결속력 같은 건 없는 거지.”

-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선배님 후배님 해서는 아닌데, 그런 건 있지, 같은 학교 같은 과 출신이니까, 묘한 소속감 같은 거. 학교 자체의 특수성도 있다면 있는 거고.”

- 공대생으로 살면서 스트레스나 고민 같은 건?
“나는 스트레스를 좀 안 받는 스타일이니까 내 이야기를 일반화하긴 그런데. 과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게시판에 간혹 공부 때문에 상담글 같은 게 올라오기도 해.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거지. 서로 돕고 지내긴 하지만 성적까지 도와지지는 않으니까. 공부 자체가 안 맞아서 고생하는 사람도 있고, 성적과는 무관하게 그냥 공부가 힘들어서 지치는 사람도 있고. 이 부분은 의대나 비슷할 것 같은데?”

- 너희한테는 성적이 어떤 의미야?
“유학 가려면 많이 좋아야 되고. 대학원이나 취업에는 그만큼 많이 좋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좋은 게 좋지. 3.0 정도가 기준일 것 같은데, 못 넘는다고 취직 못하는 건 아니지만.”

- 앞으로 뭐할지에 대한 고민들도 많이 해?
“많이들 하지. 공부 마치면 당장 뭐할지 정해야 되니까. 대학원은 유예 기간으로 쓰이는 측면도 있어. 선배들은 연구소, 회사, 다른 대학교 교원, 어디어디 많이 흩어져서 가더라. 취업하는 사람들은 대기업이나 공기업, 가령 삼성이나 한전 이런 쪽을 선호하는 것 같고.”
- 보통 기대하는 연봉 수준 같은 건?
“기대한달 것도 없어. 시장원리가 작동하다 보니까 다들 거기서 거기거든. 결국 기대나 선택 이런 개념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거지. 초봉 3000~3500 정도 받는 것 같더라. 4000 넘어가는 경우는 잘 못 봤어. 맞벌이는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이건 우리 과 다른 친구들도 비슷할 것 같은데.”

-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은 다들 자기 선택에 만족하니?
“사람들마다 다른데, 나 같은 경우엔 다행히 이쪽 공부가 잘 맞아. 올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잘 모르고 온 건데, 사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확신이란 걸 갖기는 힘들잖아, 모르는 게 많으니까. 안 맞아하는 친구들도 있단 소리지. 그냥 분위기에 이끌려서 대학원까지 가는 경우도 있고, 다른 데 취업하기도 하고.”

- 학교를 다니는 중에나 졸업하고 나서 진로를 바꾸는 경우도 있겠네?
“있지. 우리학교에서 법대 아닌 대학 중에 사시 합격생이 제일 많은 데가 전기공학이라고들 하더라, 학생 수가 많은 것도 작용했겠지만. 의학전문대학원 간 사람들도 있었고. 학년마다 좀 다른데, 의대 법대가 제일 많아, 안정적인 쪽으로. 요즘은 점점 진로수정보다는 우리 과 대학원을 많이 가는 추세야.”

- 안정을 찾고 있는 거야?
“글쎄. 예나 지금이나 취업 자체를 걱정을 하진 않았어. 그 뒤를 보는 거지, 안정성의 문제. 벌이의 차이도 있을 테고. 대학원을 가는 이유는 다양해. 진짜 공부를 더 하고 싶은 경우도 있고, 아직 결정을 못 내려서 유예기간을 두는 걸 수도 있고. 군대고 직장이고 아직 해결이 안 됐으니까. 석박사 통합과정에 들어가면 병역특례로 군대 문제가 반쯤 해결되거든.”

- 우리끼리니까 편하게 하는 얘기지만, 우린 전공이 서로 바뀔 수도 있었잖아, 선택가능성에 있어서. 다들 의대를 많이 가는 분위기였는데, 꽤 소신이 있었나봐?
“사람마다 달랐을 텐데, 난 일단 의대 체질이 아닐 것 같았어. 공부로 따지면 달달 외우는 것보단 수학이나 물리를 좋아하니까. 닥치면 하긴 했겠지. 의사라는 직업 자체는 매력적인데, 그렇다고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서 후회는 없는 거지.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거나 충분한 고민이 없었던 사람들은 후회를 할 수 있겠지. 의대든 공대든 어느 쪽이든.”

- 다시 선택한대도?
“반반. 이쪽이 나빠서는 아니야. 의사 자체도 매력적인 직업이니까. 그 일 자체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불행하겠지만.”

- 크게 고민하지 않고 공대를 선택했었잖아?
“옛날엔 비교적 단순하게 공부가 나랑 잘 맞을 지만 생각했었다면, 지금은 다른 것들도 보이게 되니까.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당장의 공부를 떠나서 그 직업을 통해서 내가 이룰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으니까.”

최성욱 기자/울산
<palpitation@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