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담
신문사의 일년이 다 지나가고, 매번 무겁기만 했던 다빈치 기사도 끝이 났습니다. 연재를 시작할 때 전년도 후일담 기사를 보면서, 내 자신의 후일담은 언제쯤이려나, 까마득했었는데 이제 벌써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타자를 두드리고 있네요.
작년 8월 즈음 신입기자로 들어왔을 때, 제 눈에 가장 잘 들어온 기사가 다빈치였습니다. 내용은 어려웠지만 스터디 기사만큼은 꼭 챙겨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의학과 인문학이라는 흔치 않은 조합과 그 소재를 맛깔스럽게 풀어내셨던 이현석 기자님의 솜씨에 ‘혹’한 나머지 이 스터디, 꼭 한번 맡아보고 싶다, 마음먹었었는데 2009년 겨울 어느 뒤풀이에서 뜻하지 않게 덜컥 연재를 받아들었고, 그렇게 2010년 다빈치가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을 주제로, 어떤 방향으로 스터디를 해야 하나’ 였습니다. 저와 스터디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너무 어려워하지 않되, 시시콜콜한 사고의 틀을 넘어서는 책을 선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작년 학교에서 수강했던 의료인문학 강의서 추천받은 책들을 참고한 결과,『의학의 역사』,『어느 의사의 고백』,『페스트』,『한의학 탐사여행』,『통섭』이 선정되었습니다. 첫 번째 스터디에서는 의학의 각 분과별 발전양상을 알고서 현대의학이 절대적인 것이 아닌, 어떤 특정한 경로를 통해 형성된 것임을 알고자 했습니다. 다소 어려웠던 두 번째 스터디는 니체와 레비나스를 바탕으로 의료행위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하려는 시도를 살펴봤고요. 세 번째 『페스트』는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스터디였습니다. 페스트라는 작품 안에서 ‘의학’을 어떻게 잡아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었거든요. 전인적인 인간성을 기르는 데 있어 문학의 역할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인데, 굳이 의사에게 강조될 이유, 혹은 그것을 의학적인 맥락에서 바라보는 것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쓰나,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못 쓰게 되었지요. 저에겐 의료인문학에 대해 모종의 회의감을 가지게 된 계기였습니다. 또 기자분들이 가장 많이 와주셨었는데 본의 아닌 기사불발로 인해 여러모로 죄송했던 스터디이고요. 네 번째 스터디 주제는 한의학과 의학으로, 의학이 한의학에 요구하는 ‘과학성’의 의미를 재고함으로써 두 의학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의료인문학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어렵지 않고 여러 사람이 접할 수 있는 현실적인 소재이기에 기자분들이 많이 오셨으면 했는데 그렇지 못했었네요. 마지막 책인 ‘통섭’은 페스트 다음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스터디였습니다. 본래 목적은 의료인문학이 통섭된 학문의 한 갈래로써 의의가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그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개념에 비추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윌슨이 ‘통섭이 무엇이다’라는 정의나 그 통섭의 방법론을 직접 서술하기보다 주로 예시를 통해 빙 둘러 설명하고 있어 통섭개념이 모호하게 드러나 있었고, 통섭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 의견이 많아 논의의 중심이 통섭개념 자체에 집중되었습니다. 또한 (비록 거칠게 드러나 있긴 하지만) 윌슨의 통섭개념의 성격상, 의료인문학을 직접 연관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스터디 기사가 통섭과 그에 대한 윌슨의 시선을 서술하는데 그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스터디였는데 무언가 완결되지 않은 느낌이 들어 스스로 섭섭하더군요. 이외에도 여러 기자분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던 점, 대중성이 부족한 것도 아쉬웠습니다. 글의 일관성을 잃지 않으면서 다채로운 생각을 녹여내거나, 적극적인 대외홍보(?)를 하는 재주가 없는 저 자신을 탓해봅니다.
쓰다보니 온통 아쉽다, 아쉽다 뿐이네요. 내심 ‘이걸 해냈다’는 뿌듯함은 가지고 있지만 글로 표현하긴 뭣해서 속으로만 재워두렵니다. 비록 의료인문학이 어떤 학문인지 틀을 잡아내고 싶었던 제 바람이 이뤄지진 못했지만, 그 부분 부분을 곱씹어 스스로 소화해보려고 노력했던 것에 의의를 두려고요. 참여하셨던 모든 기자분들도 조금이나마 얻어간 것, 변화된 것이 있기를 빌어요. 내년에도 스터디가 지속될지는 확신이 서질 않지만 - 후속편 기대해 보렵니다. 우리네 의대생의 삶에 더 가깝고, 팍팍한 생활에 부담없이, 더 많은 기자분들이 참여하는 스터디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 혹시나 이 머리 아픈 두 살짜리 기사 세 살배기로 키우고 싶으신 분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밥 여섯 번 사드립니다.
김정화 기자/한림
<eudaimonia89@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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