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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독자에게

78호(2010.12.14)/오피니언 2011. 1. 18. 01:03 Posted by mednews

고슴도치의 소통

한창 감수성이 풍부했던 고등학교 시절, 저는 제 스스로를 고슴도치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온 몸에 가시가 돋쳐서 남들에게 다가가거나, 남들이 다가오면 상처를 주는 그런 존재. 정제되지 못하고 직설적인 말과 행동,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아집은 남들에게 상처를 주기 충분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는 ‘소통’하는 것을 어려워했습니다. 가시들도 문제였지만, 내성적인 성격도 한 몫 했습니다. 가시가 돋아나기 전 어릴 적에도 남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내거나 처음 보는 친구에게 말을 건내는 데는 서툰 내성적인 아이였습니다.
그런 성격 덕분에 친구는 좁고 깊게 사귀는 편이었습니다. 저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아이들은 대부분 스폰지 같은 친구들이어서, 제 가시에 상처를 잘 받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그 중에 몇몇은 현명하게도, 저에게 가시의 존재를 말해주고 그 것을 고쳐야 할 거라고 귀띔해주기도 했습니다.
제 몸의 가시들을 인식하게 된 후부터는 그 가시를 갈아내고자 부단히 애썼습니다. 몸속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버릇들을 갈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노력할수록 주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 확실히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가시는 조금만 방심해도 다시 자라나곤 했습니다. 잠시만 신경을 못 써도 날카롭게 자라나서는 나도 모르게 남에게 상처를 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서면, 반대로 저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소통하는 방법을 잘 배우지 못했던 저는 일종의 방어기제처럼 어느 집단에서든 대표의 자리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대표가 되어서 그 구성원들과 인위적으로라도 소통을 하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습니다.
신문사의 편집장을 맡은 것이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분명히 그런 이유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더 많은 기자들과 더 많이 소통하는 쉬운 방법이 그것이었습니다. 원했던 대로 많은 기자들과 소통을 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인위적인 관계가 진정한 소통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쉬운 길 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을요.
반면 편집장이 되면서 새로운 종류의 소통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만든 신문을 읽고 이것저것 얘기해 주는 동기들과 선후배들, 회의 때 마다 들려오는 각 학교의 반응들, 적지만 꾸준히 올라오는 독자의 목소리와 트윗들, 신문사 메일함에 차 있는 메일들. 내가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 나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들려오는 반응은 신문이라는 매체를 통해 수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소통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 더 알게 되면서 또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저만이 고슴도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선천적으로 타고난 가시의 모양새는 다르더라도, 가시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각자가 부지런히 갈아내서 남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일 뿐, 사람은 누구나 다 고슴도치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남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다 자신의 가시를 갈아야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요. 
아직도 저는 소통에 있어서는 걸음마 단계입니다. 남들이 초등학교 때 배우던 것을 저는 지금 깨닫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 씩 걸음마를 떼다 보면 언젠가는 고슴도치도 세상과,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믿으면서 또 한 걸음을 내 딛으려 합니다.

편집장 김민재/순천향
<editor@e-mednews.com>